한국과 베트남은 4시간 거리라, 한국에서 지인들이 놀러 오는 일은 많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다르다. 무려 독일에서 방문한 친구가 있었다. 한국어를 전공해서 서울에서 교환학생을 하다 만난 ‘스테이시’는 멀리 살아 자주 볼 수는 없어도 종종 연락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친구와 동남아 투어를 하고 있었다. 주로 태국과 베트남 쪽에서 하는 장기 배낭여행이었다. 본래 그녀의 베트남 일정은 하노이와 호찌민 이 굵직한 두 도시만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내가 ‘다낭’도 오라고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더니 결국 방향을 틀어 다낭 공항에 착륙했다.
짐 좀 풀고 한숨 돌린 후에 만나면 좋을 것 같아, 오후 느지막이 저녁을 먹기 위해 만났다. 스테이시는 흑인이고, 그녀의 동행인 친구는 백인이라 동남아를 다니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외국인 외모다. 그래서인지 동남아에 오자마자 바가지 씌움의 대상이 되었다. 공항 근처에 숙소를 예약해 걸어가다가, 너무 더워 도저히 움직일 수 없어 지나가던 택시를 탔는데, 정확히 200m 움직였다고 했다고 한다. 더위에 지쳐 몰랐지만 호텔 코 앞까지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택시가 요구한 금액은 2만 원이었다. 본래 20~30분을 타도 많이 나와야 7천 원인 택시비가 그들 앞에서 순식간에 200m에 2만 원으로 치솟은 것이다. 분명 이게 부풀려진 가격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택시 기사와 싸울 힘도 없었던 그들은 그 돈을 고스란히 지불했다.
예약한 숙소도 시세보다 비싼 돈을 냈지만 에어컨이 안 나오고 방 상태가 엉망진창이었는데, 숙소 주인은 바꿔준다고 말만 하고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베트남에 오자마자 연이은 바가지 행렬에 시무룩해진 그들을 위해, 저녁을 사 주겠다며 점심은 뭘 먹었는지 물어봤다. 스테이시가 먹은 점심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베트남에서 삼겹살? 해외여행을 가면 첫 끼는 무조건 현지식으로 먹는 게 일명 ‘국룰’, 보편적인 규칙인 줄 알았던 내게 오자마자 삼겹살은 뜻밖이었다. 그래서 저녁은 뭘 먹고 싶냐 하니 이번에도 예상 밖에 답변이 나왔다. 떡볶이와 김밥이 먹고 싶다는 것이다.
스테이시는 한국에서 교환 학생을 해 본 적이 있으니, 한국 음식에 대해 꽤 알고 있는 편이다. 독일로 돌아가서도, 김밥이 그립다는 말은 여러 번 했는데 그렇다고 베트남에 와서 한국 분식을 찾을 줄이야. 없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마침 우리 집 앞에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분식집이 있었다. 꽤 먹을 만한 집이었기에 거기로 데리고 갔다.
나도 어디 가서 먹는 양으로 뒤처지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스테이시와 그녀의 친구는 위가 세 개는 되는지 좀처럼 배부르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주문한 분식을 싹 다 비우고서도, 아직 출출하다며 다음은 자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여기가 지금 베트남인 줄은 알고 얘기하는 건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메뉴는 전부 한국 음식이었다.
그래도 재미있는 건 검색하니 전부 그 메뉴들이 다낭에 있다는 것이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이곳에 사는 나 같은 한국인도 많으니, 꽤 괜찮은 한식당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다만, 베트남에서 먹더라도 한식 가격은 한국에서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가격이라 그동안 갈 생각을 안 했는데, 마침 스테이시가 한식만 찾으니 친구 핑계를 대고 가 볼 수 있게 되었다. 거너까지 합세에 네 명이서 자장면 네 그릇과 탕수육 대짜를 시켰다. 더 먹을 수 있다고 호기롭게 외쳤던 것과 달리, 이미 분식을 잔뜩 먹은 탓에 나는 자장면을 반도 못 비우고 말았다. 그에 반해 스테이시와 그 동행인은 나와 같은 것을 먹고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자장면을 비우고 탕수육까지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었다.
두 번째 저녁을 먹고 나서 내게 한 첫마디는 “후식으로 빙수 먹으러 가자”였다. 아쉽게도 다낭에 빙수집은 없어 숙소로 돌려보냈지만, 대체 이럴 거면 한국이 아니라 왜 동남아 여행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여행 식단이었다. 관광은 동남아에서 하고 싶었으나, 밥은 한식이 당겼다나 뭐래나… 한식으로 배를 잔뜩 채우고 나니, 바가지로 돈 뜯겼던 불쾌함이 싹 사라졌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다낭 일정은 겨우 2박 3일로, 일정도 짧지만 이른 비행시간 때문에 다낭에서 머무는 실질적인 시간이 얼마 안 됐는데, 놀랍게도 다음 비행기를 타기까지 그녀들은 한식만 고집했다. 다낭에 한식당이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한식의 위력이 이 정도였나 놀라우면서도, 그들에게 다음에는 인천행 직항 티켓을 사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