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애 해변 이용법

by 라봇

바다냐 산이냐 굳이 따지자면 나는 언제나 바다였다. 수풀 가득한 깡시골에서 자란 시간이 적지 않은데도 이상하게 녹음 가득한 대자연이 무서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뭐가 어디서 튀어나올 지 모를 대자연의 동물과 벌레가 무서웠던 것인데, 깊은 산 속일수록 그들의 크기가 점점 거대해지는 것도 한 몫 했다. 또 체력이 약해 등산을 버거워했고, 산 속에 오래 있으면 풀독이 올라 종아리 전체가 벌겋게 부어오른 채로 벅벅 긁어댔다. 그에 비해 바다는 힘들게 올라갈 필요도 없고, 벌레도 적은데다 물놀이도 할 수 있으니, 둘 중에 고르라면 대답은 한결같았다. 하지만 굳이 고르라면 바다인 것이지, 바닷가에 살고 싶을 정도로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게는 그냥 1년에 한 두 번 놀러가서 감상해도 충분한 풍경이었다.


그런 내가 다낭에 살면서 해변가 거주의 장점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 다낭살이를 시작했을 때는, 해변가에 가려면 다리 하나를 건너야 했기에 귀찮다는 이유로 자주 찾지 않았다. 이사를 하고 나서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가 되어, 저녁 먹고 산책할 때도, 친구와 만나서도, 일상적으로 바다를 자주 찾게 되었다. 내가 단순히 바다를 자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바다 근처에 사는 게 좋다고 느낀 건 아니다. 해변가가 가깝다는 건, 무료 공간 대여 시설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각 시간대마다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해변가는 다양한 공간으로 변신을 했다. 해 질 녘에는 조용한 명상실이 되기도 하고, 태극권을 연습하는 무술도장이 되기도 하였으며, 낮에는 화실과 도서실로 변모하기도 했다. 공원이 마땅치 않은 다낭에서 해변이 공원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해변 이용법은 바로 요가원이었다.


새벽 6시쯤 미케비치 한 쪽에서는 무료 요가 교실이 열렸다. 수업 주체자는 인도에서 요가 수행을 하다 이제는 전세계를 떠돌며 요가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었다. 베트남에서 요가원을 운영하는 강사와 함께 주말 아침마다 일일 강의를 했다. 준비물은 요가 매트 하나. 요가 매트를 미처 준비하지 못 한 나는 비치 타월 한 장을 가져가 그걸 모래 위에 깔고 요가를 했다. 요가원에서 하는 요가나 해변에서 하는 요가나 둘 다 똑같은 요가고 운동인데 뭐가 특별할까 싶지만, 그게 정말 해보면 다르다.


오히려 해변 요가는 불편하다. 아무리 수건이나 매트를 깔고 한다해도 기본적으로 모래가 들어올 수 밖에 없다. 집에 가면 온 몸에 붙어 있는 모래 털어내기 바쁘다. 바닥이 평평한 것도 아니고, 움직임에 따라 밑에 깔린 모래 형태도 바뀌기 때문에 중심 잡기도 더 어렵다. 그런데도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며 요가 동작을 하고 조용히 호흡하는 그 시간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충만함이 올라온다. 철썩거리는 바다소리와 모래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이는 일출 속에서, 잡생각이 멀어지고 비로소 내가 중심이 되는 걸 느낀다.


일상에서 경험하기 힘들었던 그 만족감이 신비로워, 나를 비롯해 모든 수업 참가자들이 잠도 덜 깬 채 퉁퉁 부운 눈으로 아침 일찍 해변가로 달려 나왔다. 요가 하기에 최고의 환경도 아니고, 요가 동작도 초급자 맞춤용이었는데, 바다라는 배경 자체가 나를 완전히 다른 시간으로 데려다 놓았다.


물론 바다 근처에 산다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태풍이 오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훨씬 타격을 받고, 호텔과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라 시끄럽고 쓰레기도 쉽게 생긴다. 그래서 때로는 바다가 가까운 게 싫을 때도 있었지만, 그 단점보다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더 컸다. 사람들이 집을 얻을 때, 걷기 좋은 공원이 있는 동네를 선호하는 것처럼 해변도 충분히 그런 역할이 가능하다. 물론 동남아처럼 겨울 바닷바람이 그리 매섭지 않은 곳이여야 이용 일수가 올라가겠지만 말이다. 해변 이용법을 알아버린 이상, 나는 앞으로도 어딜가든 바다에서 멀어지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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