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베트남은 오로지 하나의 계절만 있는 나라였다. 1년 365일 여름이고, 그중에 반은 건기, 나머지 반은 우기로 나눌 수 있는 단순 명료한 계절이라 인식했다. 한국 관광을 하고 싶다 말하는 베트남 사람들도, 전부 단풍을 볼 수 있는 가을이나 눈을 볼 수 있는 겨울을 희망했다. 중부지방에서만 쭉 생활해 온 사람들은 단풍과 눈이 미디어로만 접할 수 있는 자연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베트남으로 향하는 이민 가방을 쌀 때도 오로지 여름옷과 샌들, 슬리퍼만 챙겨 넣었다. 내 키만큼 긴 롱패딩을 가져가지 않아도 됨에 감사했다.
그런데 어느 날, 스웨터를 입은 마네킹을 전시해 두는 옷가게들을 발견했다. 11월쯤이었다. 도대체 여름밖에 없는 나라에서 왜 필요도 없는 옷을 걸어 두는 건지, 그냥 춥다는 기분만 내자는 것 같았다. 베트남에서 성탄절이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기분 내려고 트리 장식을 해 두는 것처럼. 하지만 마네킹이 입고 있던 스웨터를 직접 입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생겼고, 더 나아가 털 달린 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까지 있었다. 나는 여전히 반팔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데 말이다.
그들은 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 춥냐고 물어봤다. 안 추우니까 이렇게 입고 다니는 거 아닐까? 한 여름보다야 기온이 내려갔지만 그래봤자 20도가 넘었다. 제일 추울 때가 18도였으니 말 다한 거 아닌가. 추위를 넘어 뼈가 아리고 호흡도 거칠어지는 한국의 겨울에 익숙한 내게, 다낭의 겨울 온도는 그저 숨쉬기 편한 최상의 온도였다. 물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스치는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내게는 그저 아주 더운 여름이냐, 덜 더운 여름이냐 차이였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안 춥다고 말해도, 보는 사람마다 나를 동정했다. 특히 20도 날씨에 털 패딩을 입고도 덜덜 떠는 현지인은 무슨 나를 귀신 보듯 봤다. 어떻게 이 추위에 팔다리를 온전히 내놓고 다닐 수 있냐는 눈빛이었다. 맨날 베트남 시장에서 산 냉장고 바지만 입는 나를 보고, 온도 변화에도 둔감하고 옷도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당연히 나는 왜 여름 날씨에 털 패딩을 입냐는 리액션으로 되돌려줬지만 말이다.
그런데 꿋꿋이 여름옷을 고수할 줄 알았던 내가 겨울 옷을 구걸하는 때가 왔다. 갖고 있는 옷으로도 1년 내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게 되고, 재채기에 코도 훌쩍거렸다. 무엇보다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전과 다름없이 밖을 거니는데 그대로 드러난 맨살이 추워서 닭살이 되었고, 양손으로 팔뚝을 열심히 문질러대며 떠는 나를 발견했다.
더 이상 갖고 있는 여름옷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옷가게를 둘러봤지만, 취향이 다른지라 마음에 드는 옷 찾기도 힘들었고, 내가 ‘춥다’고 느끼는 시기가 얼마나 갈지 몰라 옷을 사는 데 주저하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내 학원 어시스트가 가을 스웨터 두 벌을 종이백에 넣어 들고 왔다. 계절에 맞는 옷이 없어 맨날 여름옷만 입고 다니는 게 안쓰러웠다며, 추위가 좀 가실 때까지 옷을 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불쌍해 보인 것인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자기 옷을 선뜻 입으라고 빌려주는 그녀의 호의가 감격스러웠다. 그녀는 잘 입고 돌려달라며, 베트남에 여름만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동남아라고 여름만 있는 나라라 생각한 것도 미안했고, 평생 추위 따위는 안 타는 사람처럼 굴다가 결국에는 빌려주는 옷을 넙죽 받아 입는 것도 민망했다. 역시 살아보지 않으면,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너무 많은 법이다. 다행히 스웨터는 한 달 정도 입고 돌려줄 정도로 내가 느끼는 추위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비록 눈도, 단풍도 없는 곳이지만 이 안에서 사람들은 계절을 나누고 또 그 변화를 느끼며 살아간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는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