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단상
정확히 2주 전이다. 매번 지나치다 이날은 부러 시간을 조금 서둘렀더니 나무 밑 카페 야외 의자에 잠시 앉아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앉는 순간 자연스럽게 보이는 게 이 장면이다. 익숙한 건물이지만 이날은 올려보는 순간 오래전 내가 쓰고자 했던 논문 생각이 났다. 근대 의상과 근대 건축에 관계된 것들에 관심이 컸는데 논문 드래프트 풀셋을 만들어 놓고 수료만 하고 학교를 떠났다. 역사이론에 관한 글을 쓰기에는 공부가 많이 부족했고 필요한 이해와 글쓰기가 한없이 부족하다 느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방향을 틀어 다른 형식의 논문을 쓰고 석사과정을 끝내는데 의의를 두라고 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쓰고 싶지 않은 논문을 그런 이유로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건물을 보는데 왜 그게 생각났을까 싶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띄는 건물이므로 약 1천 년 전의 형식을 빌려온 것인데, 이게 근대의 그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라고. (물론 이 건물은 개화기였던 근대에 지어졌다. 양식이 고딕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는 얘기다.) 과거의 일이 생각난 건 아무래도 저기 보이는 외벽의 레이어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인 것 같다.
난데없이 의상과 건축이라고 하니 뭔가 색다른 시각과 시도를 생각한 것인가 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결국 장식과 구축의 문제와 관계가 깊기 때문에 과거 많은 이들이 펼쳐 놓은 것들을 참조하고 그들의 생각에 기대어야 한다. 그럼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과거의 것이지만 내가 사는 동시대에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들의 해답과 혜안이 그 속에 있다 생각했고, 좀 더 개인적으로는 매번 건축에 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이런 관심과 탐구가 지금도 앞으로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왜 지난날 그런 주제에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것도 생각해 봤다. 가난한 재단사였던 아버지 영향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들어진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입는 옷을 옆에서 보기도 했고, 직접 만드신 옷을 아들에게 입히기도 했기 때문이었을까. 아쉽게도 그때 그 옷은 집안 어느 곳에 박제되어 있다시피 해서 관리도 안되고 있다. 지금 와서 굳이 영향이 있었을까 논하는 것은 생각으로나마 생색을 내려는 것 같아 그 자체가 불편하고 아버지께 죄송하다.
그런데도 항상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건 펼쳐 놓은 천 위에 초크로 그어가며 날것의 그것에 옷이 되는 범위를 그려내고 잘라내어 재봉사에게 보내기 전까지 소재를 정하고 옷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최종적으로 그 옷을 실제 입을 사람 핏(fit)에 맞도록 하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 그 과정을 오롯이 내 업으로 가져오고자 했던 것인지, 그게 아니어도 건축이라는 속성이 그렇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중고시절 다른 것들에 비해 역사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과거의 것에서 뭔가를 발견하는 것에 매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두서없이 적어 놓고 키워드를 뽑아보면, 아버지의 일, 건축의 속성, 역사에 대한 관심 정도인데 이 중 어느 것도 오십이 넘은 지금 나에게 온전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살아온 시간과 경험들이 혼재되어 적당한 거리에서 내 주변을 부유하고 있다. 그중 무엇이라도 하나를 정확히 잡아내려는 강박이 있었던 것도 같고, 삶에 필요한 어떤 결과들을 위한 레시피 정도로 생각하고 애써 강박에서 거리를 두려고 한 것도 있는 것 같다.
5분 남짓한 짧은 시간 스치는 생각치곤 꽤 밀도 있는 것들이 머릿속 채우고 있을 즈음 타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급히 자리를 떠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