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Poster Movement
대학원 들어서 처음으로 학회 발표를 위한 포스터를 만들 때가 생각난다. 파워 포인트에 꽉 차게 욱여넣은 내용들을 학교의 상징색이나 내 발표주제와 맞는 이미지들을 골라서 커다란 종이에 프린트에 화통에 담아 어깨에 메고 다녔던 기억 말이다.
포닥을 시작하면서도 많이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의 현수막 컬러 프린트가 보편화되면서 해외학회 갈 때 더 이상 화통이 필요하지 않던 것과 달리, 연구소에서는 커다란 종이에만 프린트해주었었다. (한국 현수막 기술 1등 인정!) 최근 4-5년부터 해외학회 포스터는 천에 인쇄하는 걸 허가해주어서 포스터 사이즈 별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외부에 외주는 주는 형식으로 변화되었다 (국내 학회 포스터는 여전히 화통에 담아 가야 한다).
내년 초 연구소 내 ‘혁신적 연구’에 대한 포스터 전시전을 기획하고 있는데, 참가하는 이들에게 이메일이 한 통 왔다.
“지금까지 이런 포스터는 없었다. 포스터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라는 말로 운을 띄우는 이메일에는 내가 대학원 때부터 고수해왔던 많은 이들이 정석이라고 생각했던 꽉 차게 욱여넣은 포스터는 보는 이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참 진실’을 언급하며, 빠른 시간에 포스터를 스캔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디자인을 추천하고 있다.
#BetterPoster 운동을 시작한 미시간대 심리학 전공 대학원생인 Mike Morrison 은 정보만 나열되어있고, 디자인이 보는 이에게 눈에 띄지 않는 포스터는 ‘실패’한 포스터라고 이야기한다. 작은 글씨를 다 읽을 수도 없고, 눈에 띄는 그래프나 사진들을 위주로 제목과 함께 쓱 스캔하고 지나가는 게 포스터 발표를 보는 이들 대부분의 모습이다. 그는 새로운 디자인의 포스터 템플릿을 공유하면서 포스터의 3가지 핵심 요소를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Main Finding (폰트를 크게 하고 정확한 언어를 사용할 것), 두 번째는 “Ammo bar” (탄약 봉이란 의미) 학회 참석자들이 포스터 앞에 섰을 때 그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데이터, 세 번
세 번째는 “Silent presenter” bar로 연구의 개요, 방법, 결과를 간단하게 bullet point를 써서 설명을 듣지 않고도 포스터에 대해서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섹션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인 점이 있다면 QR 코드를 Main finding 섹션에 넣으라는 것이다. 포스터 발표장을 가보면 정보수집 차원에서 포스터를 사진 찍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QR 코드를 넣어서 포스터를 사진 찍는 행위에 대한 친절함을 제공하라고 이야기한다.
모리스는 과학 학술 포스터는 “낮게 매달린 과일”이라고 표현한다. 학술지에 연구가 발표되기 위한 2년이 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것은 과학은 대중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에 반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웹사이트를 디자인할 때 이미지나 문자가 로드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클릭 손실을 가져오는 것처럼, 과학에서는 지난한 과정은 삶과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가 빨리 공유되면 암을 빨리 정복하는 것, 질병을 빨리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주에 더 빨리 나갈 수 있고, 기아와 빈곤을 빨리 해결할 수 있는 Stake (지분)과 기회라고 주장한다. 과학계 내에서의 병목현상을 포스터 디자인의 작은 변화를 통해 향상할 수 있다면 과학계 전반에 걸쳐 큰 파급효과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의 #BetterPoster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정보 없이 학회장에서 그의 템플릿을 마주쳤다면 경악을 했을지 모르겠으나, 참가자를 끌어들이는 사용자 위주의 디자인과 과학은 공유되었을 때 발전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이 운동에 많은 이들을 참여하게 만들고 있다.
자, 나는 예전에 만들어 놓았던 포스터는 재활용할 수가 없고, 그의 포스터 3요소에 맞추어 다시 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포스터가 될 수 있을지… 살짝 기대해본다.
*더 많은 자료는 Mike Morrison 의 블로그와 Center for Open Science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http://betterposters.blogspot.com/2019/04/critique-morrison-billboard-poste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