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오래전에 책 읽고 영화 보면서 썼던 글을 올립니다.
과격하거나 지나친 표현이 있을 수, 있음을 용서하시길...
지금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삶이 쌓여 유연해졌습니다만...
오늘도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통한 여자의 소유는 간접적 효과밖에 없다. 배우자는 뭍 남성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에로틱한 대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조르주 바타유, <에로티즘의 역사> 중에서)
바타유의 이 한 문장에서 단상은 시작된다.
장 자크 베네의 <베티 블루>는 두 남녀의 에로틱한 관계를 보여주지만, 에로스의 파국이 더 어울리는 표현일 듯 하다. 이야기는 남자의 아이를 가지려는 여자의 절박성에 의해, 이미 예정되어 있는 종말의 과정을 따라간다.
터질듯한 육감적인 몸매 하지만 천진난만한 순진성이 함께 하는 야릇한 이질성의 한 여자. 소극적이며 일상에 안주하는 글쓰기의 재능을 약간 가진 한 남자. 그들의 숨막힐 듯한 격렬한 에로스의 흘러넘침은 이야기의 파국적 진행을 숨기면서 진행된다.
베티가 가지고 있는 순진한 육감성은 화학적인 물질의 배출이 없어도, 성적 기관을 직접적으로 자극하지 않아도, 남성들에게 매력적인 그리고 완벽한 여성성으로 상상된다. 에로스는생식적 기능 혹은 번식의 욕구를 담당하는 동물적 기관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무한한 상상적 이미지로 작동한다. 남성들이 베티에게서 느끼는 에로틱함이란 터질듯함, 풍만함, 부드러움, 흘러넘침의 기호들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조르그와 베티의 에로틱한 관계는 그녀의 상상임신과 절망감에 빠진 자해를 통해서 점점 예상치 못한 길로 치닫고 있었다. 그녀에게 아이는 에로스의 결과물이겠지만, 이는 생물학적 번식 욕구의 충족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간학적으로 아이라는 존재는, 비록 그들의 결합방식이 동거의 형태를 띠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적 통과의례와 다름없는 가족의 탄생을 의미한다. 아이는 평형적이고 평면적인 두 남녀 사이에 새롭게 끼여든 존재이면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입체화 시키는 존재이다. 아이의 생산은 가족의 탄생이며, 동시에 제도에 노출되며 포획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베티가 보지 못했던 점은 바로 이것이며, 임신은 끝없이 연기되고 급기야 상상적임이 밝혀지는 순간 그녀는 마치 이러한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기라도 하듯이 자해를 하고 만다.
조르그에게 있어 아이의 탄생은 곧 제도화에 노출․포획되어 감을 의미했기에, 아이보다도 그녀를 지키려고 했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공식화된 짝짓기”이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 에로틱한 관계와는 달리 결혼은 “어둠 속에서의 짝짓기이다.” (바타유) 낮에는 일상적 삶을 영위하는 각자의 노동에 의해서 채워지고, 밤에는 짝짓기라는 생식을 위한 이코노미한 인간학적 삶의 유형이다.
밤의 짝짓기라는 제도화된 범위에서 여자는 더 이상 에로틱한 기호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 비록 여자이지만 아내라는 존재는 결혼제도 안에서 배우자와 “ 한 덩어리가 된 dans son ensemble 공동 생활”(바타유)을 영위하는 존재로 위치지어지기 때문이다.
베티는 조르그가 습작해두었던 원고뭉치를 출판사에 보내면서 삶과 생활에 악착같이 집착한다. 조르그에게 있어 이제 베티는 야릇한 광선을 뿜어내는 기호가 아니다. 생생하게 실존하는 현실인 것이다. 아이-가족과 같은 이코노미한 삶의 형태로 관계를 전환시키려는 베티와 에로틱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조르그의 갈등은 해소될 수 없는 비극적 침전물이다.
이 상황에서 조르그의 선택은 간단하다. 베티와 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병원 침대에 묶인 베티를 살해하면서 그녀와 관계를 마감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홀로, 하지만 자유로운-홀가분한 조르그가 글을 쓰는 장면으로 장식된다.
엔딩 장면에서 그의 행위가 지닌 상징적이고 초월적인 의미 부여는 여러 각도에서 가능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그곳에 있지 않다. “아내를(가) 죽였(었)다 ! ” 그것이 중요하다 !
살인자의 술 Le Vin De L'Assassin
-보들레르-
아내가 죽어 난 자유다!
그러니 나는 실컷 마실 수 있다.
돈 한 푼 없이 집에 돌아오면
그녀의 고함 소리 내 가슴을 찢었지.
왕 못지않게 행복하구나.
공기는 맑고 하늘은 기막히다…
내가 아내에게 반했을 때도
이런 여름이었지!
나를 쥐어뜯는 이 끔찍한 갈증
풀어주자면 필요할 것다,
아내의 무덤을 채울 만큼의 술이
-아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닌데,
아내를 우물 깊은 곳에 던져버리고
그녀 위에 샘 가의 돌멩이들을
모조리 집어넣기까지 했지.
-이런 일은 할 수 만 있다면 잊고 싶다!
아무것도 우리 사이 떼어놓을 수 없다고
맹세한 사랑의 이름을 내세워,
우리 사랑의 절정의 행복한 시절처럼
서로 화해하자고,
어느 날 저녁 아내에게 애원하여,
으슥한 거리로 불러냈었지.
아내는 나타났지 뭐야!-정신 나간 계집 같으니라고!
하긴 우리 모두 좀 정신이 나갔지만!
비록 몹시 지치기는 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어여뻤다!
나는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지! 그래서
삶을 끝내! 하고 난 말했다.
아무도 이런 내 마음 모르리.
어리석은 주정뱅이들 중
누구인들 그 병적인 밤
술로 수의를 만들 생각을 했으랴?
쇠로 만든 기계처럼
끄떡없는 주정뱅이 따위는
여름이건 겨울이건 한 번도
진정한 사랑 해보지 못했지.
검은 마력과 그 지옥 같은
공포의 행렬, 독약병과 눈물,
그리고 쇠사슬과 뼈다귀
소리가 따르는 진정한 사랑을!
-------나는 이제 자유롭고 홀아비이다!
이 밤 죽도록 마시고 취해.
두려움도 후회도 모르는 채,
땅바닥 위에 아무렇게 드러누워,
개처럼 잠들리라!
돌이며 진흙 가득 실은
수레바퀴의 무거운 짐마차가
또는 미처 날뛰는 화물차가
죄 많은 내 머리를 박살을 내건,
내 몸뚱이를 두 동강이 내건,
'신'이고 '악마'고 영성체대고
아무것도 겁날 것 없다!
(윤영애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