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관심이 있는 레프 셰스토프의 저작은 1905년에 러시아에서 출간되었고, 1920년에 D. H. Lawrence가 서문을 실은 영역판 『All things are possible」이다.
이 저작은 두 가지 이유로 내게 흥미로웠다. 하나는 예술 철학과 형이상학이 혼재한 과도적 성격이다. 모호하고 혼돈스러운 사유. 한 단계가 다른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고민의 깊이와 도약의 열정 등. 다른 하나는 그러한 고민, 혼돈, 열정을 담기 위해 선택한 단상과 아포리아 형식.
1부는 하이네의 시 구절 "세계와 인생은 조각일 뿐이다"(『노래의 책」)를 제사(題詞)로 쓰면서 시작한다. 120 개의 단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2부는 46개의 단상이 수록되어 있다.
루카치는 에세이를 근원을 향한 동경의 형식이라고 했다. 이러한 정의를 빌리자면, 이 저작은 삶의 근원을 향한 내적 충동(형이상학)의 형식(예술)을 입고 있다.
발췌 초역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고, 주석 작업을 향후 보완할 계획이다.
[1]
삶의 어두운 골목길들은 중심 대로가 제공하는 편의를 갖추고 있지 않다. 전기가 없고, 가스등도 없으며, 심지어 등유 램프 거치대조차 없다. 인도는 없으며, 길을 가는 이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나아가야 한다. 불빛이 필요하다면 번개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원시적 방식으로 돌에서 불꽃을 튀겨내야 한다. 잠깐 동안 낯선 윤곽들이 모습을 드러날 것이고, 그가 포착한 것을—그 인상이 맞든 틀리든—기억하려 애써야 한다. 왜냐하면 다시 빛을 얻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벽에 머리를 들이받아 그 충격으로 불꽃이 튀는 방식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조건에서 불행한 보행자 traveller through outskirts 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의 호기심이(그 호기심이 매우 강하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를 삶의 변두리를 더듬게 만들었다면, 그에게서 어떻게 명료한 설명 clear account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빛나는 대로를 여행한 사람들의 기록과 왜 이를 비교하려 하는가?
[2]
자연 현상의 ‘연속성 법칙law of sequence’은 너무도 그럴듯하고, 너무도 자명해 보여서, 사람들은 그 기원을 실제 삶의 현실에서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충동 속에서 찾고 싶어 한다. 이 연속성 법칙은 자연법칙들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법칙이다. 어째서 이토록 많은 질서가 존재하는가? 왜 혼돈과 무질서가 아닌가? 사실, 연속성 가설이 인간 지성에 이처럼 노골적인 이점blatant advantages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그것을 영원하고 논박 불가능한 진리의 반열로 격상시키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기회를 보았다. 이 웅대한 가설 덕분에 사람은 미리 경고받고, 미리 무장한다. 이 ‘주요 열쇠master-key’ 덕분에 미래는 그의 손 안에 놓인다. 그는 ‘알기 위해서 미리 알기’를 원한다—savoir pour prévoir(알기 위해 예측하기). 이 하나의 궁극적 가정 덕분에, 이제 인간은 자연 전체의 독재자처럼 군림하게 되었다.
철학자들은 언제나 성공 앞에 무릎을 꿇어왔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 발명된 자연의 연속성 법칙 앞에서도 무릎을 꿇고, 그것을 영원한 진리라 칭송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충분치 않은 듯했다. L’appétit vient en mangeant—식욕은 먹을수록 더 커지는 법이다. 황금 물고기 이야기golden fish tale 속 늙은 여인처럼, 그들은 이제 물고기가 자기들의 심부름까지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국 극소수의 사람들은 이 뻔뻔함을 견디지 못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3]
안락하고 안정된 사람comfortable settled man은 이렇게 말한다. “내일을 확신하지 못하고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지붕도 없이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불행은 그를 집과 삶의 터전에서 몰아낸다turn out of house and home. 그는 어쩔 수 없이 생울타리 아래에서 잠을 자야 한다. 그는 편히 쉴 수 없고, 온갖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야생 짐승이 있을지도, 동료 부랑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는 이에 익숙해진다. 그는 스스로를 우연에 맡기고trust himself to chance, 부랑자처럼 살며, 도랑에서 그의 잠을 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