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리VS매켄로(2018)
테니스는 인생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테니스 경기는 우리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 <보리 vs 매켄로>는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안드레 애거시가 남긴 말로 시작한다. 어찌 보면 이러한 표현은 축구선수가 '축구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권투 선수가 '권투는 곧 우리의 삶과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진부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시간이 넘는 영화를 끝까지 숨죽이며 보고난 후에는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영화의 첫 시작이 곧 스포일러였으며, 그 스포일러가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1980년, 비외른 보리(스베리르 구드나손)는 테니스 역사상 처음으로 윔블던 5연패를 달성에 도전한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냉정한 판단력을 잃지 않는 테니스의 황제에게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열광한다. 하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있는 그는 한없이 불안하다. 그래서 보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의 난간을 붙잡고 위태롭게 푸시업을 한다. 난간 밖으로 몸을 내민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푸쉬업을 하는 그에게 난간은 곧 결승선이었으며, 그 결승선을 넘기 위해 끊임없이 안으로 고통을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보리가 이렇게 우승을 위해 고뇌하고 있는 동안, 존 매켄로(샤이아 라보프)는 보리의 자리를 위협할 신성으로 떠오른다. 테니스가 가지고 있는 신사적인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슈퍼루키는 마치 활화산처럼 매 경기마다 자신의 감정을 터뜨린다. 하지만 이러한 도발적인 모습 뒤에서 매켄로 또한 보리처럼 우승에 대한 열망과 그로부터 나오는 압박감을 이겨내려 치열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보리와 매켄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투쟁하며 윔블던 결승을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는 테니스의 황제는 지나치게 징크스에 집착하기도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코트 위의 문제아 또한 모난 성격 때문에 친구에게 버림받고, 늘 불안에 시달리며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 이처럼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또 괴로워했던 이들은 윔블던의 푸른 코트 위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하지만 이 두 '경쟁자'가 경기 전에 라커룸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둘 사이에 흐르는 미세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묘한 유대감은 경기가 진행되면서 보다 선명해진다. 아마도 네트 너머로 공을 주고받는 동안 보리가 '미래의 매켄로'이고, 매켄로는 '과거의 보리'라는 사실을 두 선수가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감정을 감추는 훈련을 기계적으로 해왔던 보리는 매켄로를 보며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고, 매켄로 또한 자신이 꿈꾸는 본인의 모습이 곧 네트 너머에 있는 보리임을 직감한다. 그 순간 두 선수의 경기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한 단계 진화하고, 그렇게 그들의 승부는 전설로 남는다.
보리와 매켄로에게 테니스는 곧 그들의 삶이었다. 우승에 실패하는 것은 곧 인생의 실패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니스 코트는 그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의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 기회를 통해 보리와 매켄로는 하나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었고, 저마다의 인생 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그들이 테니스를 통해 알게된 것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는 지금의 '나'가 한데 모여 서로 따뜻한 포옹을 나눌 때 우리 모두의 인생이 더욱 풍부해진다는 사실이 아니었을까. ⓒ라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