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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Apr 14. 2020

'잘' 먹은 한 끼의 연쇄상승효과

해물누룽지탕 한 뚝배기

한 끼를

야무지게 자알 먹었다.


제대로 하루를,

제대로 한 삶을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가 닿는, 해물누룽지탕 한 뚝배기의 놀라운 연쇄 상승 효과.




식사 준비에 지쳐 맥 없이 먹었던 한 끼. 

요리하는 동안 냄새에 질려 아예 손도 대지 않았던 고기반찬들. 

발라주고 잘라주고 아이들 챙기느라 정작 내 입에는 뭐가 들어갔는지 알 수 없던 여러 날들. 밥상머리에서만큼은 화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편식 때문에 투정 때문에 열불이 나고 중간에 밥수저를 내려 놓고 말았던 수많은 한 끼들.

 

그렇게

제대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시간들이 별로 없었다. 결국 허술한 식사를 하게 된다.

배는 덜 차고 기분은 안 좋으니 자질구레한 간식들을 끊임 없이 입에 넣으려 한다.

체력이 달리고 스트레스는 제때 해소하지 못하니 더 짜고 더 맵고 더 달달한 것들을 욱여 넣는다. 담백하고 건강한 음식들은 자꾸만 나중으로 다음으로 밀려 난다.


해물누룽지탕을 먹으러 갔다.

고기보다 좋아하는 해물을 보니 아이들은 뒷전이다. 큰 아이는 아빠한테 맡겨 놓은 채, 작은 아이에게는 몇 개 먹을 것들을 쥐여준 채,

나는 정성스레 몰입하여 식사를 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얼마나 먹고 있는지 보려하고

식감과 맛을 누리려 흩어진 오감도 모아 본다.


쫄깃한 해물 맛에 구수하고 부드러운 누룽지. 담백한 듯 슴슴하면서도

한 번씩 간간하게 입맛을 돋워주는

딱 적절한 간의 농도가

내 속을 타고 들어 곯은 배를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누룽지 한 숟갈을 딸에게

작은 쭈꾸미 다리 세 개를 아들에게 준 것 빼고는

한 뚝배기를 싹싹 긁어 다~먹었다!


건강해진 느낌. 아니 그건 둘째치고

그냥 한 끼를 잘 먹은 기분 좋은 포만감과

제대로 먹은 만족함에 행복해졌다.


자기 직전까지 자꾸 뭔가를 먹어대느라 양치도 스물스물 미루던  나이지만 오늘은 간식이 당기지 않는다. 깔끔하게 만족스러웠던 식사에 다른 것을 더하고 싶지 않다. 제대로 한 끼를 먹는 것이 군더더기 간식을 욱여넣는 일상을 이토록 쉽게 제어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갑다.


제대로 하루를,

제대로 한 삶을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가 닿는, 해물누룽지탕 한 뚝배기의 놀라운 연쇄 상승 효과를 맛 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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