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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Apr 20. 2020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면 더 외롭다

자기 속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과 겉도는 대화를 했다, 열심히.

"너는 혼자 심심할 때 뭐해?"


"응?... 나는 심심할 때 없는데..."


고등학생 시절,

절친의 질문에 대한 나의 솔직한 대답이었다. 대답을 해 놓고는 나도 좀 놀랐다.

진짜 나는 심심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다. 참으로 사회적이지 못한 인간이로다.


혼자 있는 것이 좋다.

혼자 있을 때 편하고 즐겁다 나는.

그러나 나도 결국은

사회적 동물의 굴레를 벗어나진 못한다.

겨우 인간일 뿐이니 관계에 목마름을 느낀다. 나이를 먹어가니 더욱 그런 것도 같고,

아이들을 키우며 고립된 생활이 깊어지니

더욱 그렇다.



사람이 그리워 사람을 만났다.

코로나로 시기가 예민하니

여러 번 고민 끝에 만난 사람이다.



어쨌든  설레는 마음으로 만났다.

함께 실컷 먹었고

좀처럼 끊어지지 않고 대화도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계속 뭔가 불편했다.

계속 뭔가 마음이 허했다.


내 지인이 아닌 남편의 지인이어서 그런 걸까, 아이들의 방해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걸까.

혹시 내가 이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말이나

질문을 한 건 아닌가.

에너지는 엉뚱한 방향으로 소모되고 소진되었다.


그녀를 떠나보내며 생각했다.

또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또 만나게 될까.


서로를 기억하고 가끔 연락하고

선뜻 선물도 주고받는다.

서로를 향해 호의와 매너가 충분한,

멀쩡한 듯 보이는 이 관계에는

어떤 알맹이가 있는 걸까.


정작 그녀는 속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자기 얘기보다 타인의 얘기가 주를 이루었고,

자기 얘기는 겉돌았다.

그녀가 말하듯 그녀는 정말 행복하기만 한 사람일까. 그녀가 말하듯 그녀는 정말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 하는 사람일까. 모든 것이 완벽한 그녀 앞에서 나는 무슨 이야기로 진정성 있는 대화를 이루어 나가야 할까.


만나왔던 시간이 더 짧은 이웃집 엄마와는

대화의 죽이 잘 맞는다.

사심 없이 딱히 부끄럼도 없이

그리고 어떤 두려움도 없이

덤덤하게 자기 얘기를 툭툭 던지는 사람 앞에서는 나도 무장해제가 되어

나의 이야기를 톡톡 내뱉는다.

마주치고 소리가 나는 대화다.

겉돌지 않고 서로의 삶으로 속으로 타고 내려간다. 다음에 또 만나고 싶은 사람,

맛있는 커피를 홀로 마실 때면 생각이 나는 사람. 이게 관계인 것 같다.


배고프다고 아무 음식이나 욱여넣지 않는 것처럼, 관계가 목마르다고 아무 사람이나 만나고 싶지는 않아졌다.

이 만남을 위해 나도 그녀도

꽤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의 대가를 치렀지만,

결국 내게 남은 건 허전한 마음과

'찐이다'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한 고민뿐이다.

자처하여 한 시간 길을 달려온 그녀는 과연 즐거웠을까 만족했을까. 미안하고 찜찜하다.


그리고 돌아본다.

내게 '진심'을 원했는데

진짜 만남과 진짜 교제를 원했는데

내가 외면한 관계는 없었는지.

내 겉만 후룩 한 번 보여주고

속마음은 걸어둔 채, 밀어낸 사람은 없었는지.


관계의 빠른 진전을 두려워하는

내성적인 성향이기에,

이유 없는 선의를 경계하는

소심하고 자신 없는 나이기에,

금세 한 사람이 떠오른다. 더 생각이 날 것 같다.  



 

진실되기 위해  벌거벗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드러내야 관계도 아니다.

그러나 관계의 성립 요건은 '진심'이다.

나의 진심을 들여다본다.

나부터 시원하게 가면을 벗어 내고,

진짜 나로 관계하기로 한다.

진짜 나로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진짜 나로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해졌다.


여섯 살 아들이 '진심'으로 '친구'라 부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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