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인 Jun 24. 2020

남은 콜라를 버릴 수 있는 사람

no more!

목이 마르다며 차를 세우더니

 그녀는 콜라를 샀다.

 캐나다 휴게소에서 산 콜라의 크기는 라지 이상, 점보는 되어 보였다. 

그녀는 콜라를 시원하게 몇 모금 들이켜더니 이내

버려 버렸다. 반 이상은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내 돈 주고 산 내 콜라도 아니면서 나는 콜라가 아깝게 느껴졌다. 좀 더 시든지 아니면 그냥 차에 들고 타든지 하지 왜 아깝게 콜라를 버리는 걸까. 돈이 많나? 나는 한 번도 저렇게 쿨하게 꽤 많이 남은 음료를 버려본 적이 없었다. 당황스럽고 그녀에게 외국인으로서 느꼈던 그 이상의 이질감을 느꼈다.

 

너 왜 콜라를 버려? 안 아까워? 나는 물었다.

자기는 더 이상 목마르지 않단다.

목이 말라서 콜라를 샀고

몇 모금을 마신 후 해갈이 충분히 되었으니,

자신이 지불한 돈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식의 대답이었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나는 아까운데 너는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구나.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공감은 할 수 없었던, 꽤나 오래된 그녀와의 대화가 문득 생각이 난다.

남편이 조금 늦게 출근해도 된다길래, 나는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 급히 책 한 권을 들고 카페로 달려갔다.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었으니 커피를 시킬 수는 없고, 어쨌든 허겁지겁 걸었으니 목은 좀 말랐다. 가장 값싼 아이스티를 한 잔 주문하고 주어진 짧은 시간을 책을 보며 불태웠다. 그 시간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로 지불한 2,500원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목은 이미 충분히 축였는데도 꾸역꾸역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는 나를 보았다.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어쩌나... 열심히 걸어온 것도 좋고 열심히 책을 본 것도 좋은데, 왜 열심히 아이스티까지 마셔야 하는지 나는 문득 내가 가련해졌다. 그래 나도 한 번 쿨하게 (내겐) 멋지게, 남겨보자. 얼음이 녹기 전 가장 시원하고 달콤했던 그 몇 모금으로 이미 난 충분했다. no more를 속으로 크게 외치며 반이나 남은 음료를 픽업대로 가져갔다. 이게 뭐라고, 주도권을 움켜진 듯한 승리자의 기분으로 승승장구하며 걸어 나왔다.


아까워서 혹은 습관적으로 생각 없이 내 속에 욱여넣은 것들이 이미 내 몸을 많이 상하게 했다는 것을 안다. 먹는 것이 즐거워서 먹을 것이 아까워서 그렇게 계속 먹고 있는 나는, 수시로 역류성 식도염 등의 위장 장애로 고생을 하면서도 그 악습관을 끊어내지를 못한다.


필요 이상의 콜라를 아깝다는 이유로 입 속으로 위장으로 후루룩 흘려보내지 않았던 그녀의 결단이  오늘은 삶의 주체성과 주도권으로 재해석된다. 이제는 콜라 대신 물을 선택해야 하는 너덜너덜한 치아 상태와 위장을 가진 나는, 비로소 그녀의 선택에 동의를 보낸다. 

작가의 이전글 가져볼만큼 가져본 자들의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