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주고 산 내 콜라도 아니면서 나는 콜라가 아깝게 느껴졌다. 좀 더 마시든지 아니면 그냥 차에 들고 타든지 하지 왜 아깝게 콜라를 버리는 걸까. 돈이 많나? 나는 한 번도 저렇게 쿨하게 꽤 많이 남은 음료를 버려본 적이 없었다. 당황스럽고 그녀에게 외국인으로서 느꼈던 그 이상의 이질감을 느꼈다.
너 왜 콜라를 버려? 안 아까워? 나는 물었다.
자기는 더 이상 목마르지 않단다.
목이 말라서 콜라를 샀고
몇 모금을 마신 후 해갈이 충분히 되었으니,
자신이 지불한 돈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식의 대답이었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나는 아까운데 너는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구나.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공감은 할 수 없었던, 꽤나 오래된 그녀와의 대화가 문득 생각이 난다.
남편이 조금 늦게 출근해도 된다길래, 나는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 급히 책 한 권을 들고 카페로 달려갔다.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었으니 커피를 시킬 수는 없고, 어쨌든 허겁지겁 걸었으니 목은 좀 말랐다. 가장 값싼 아이스티를 한 잔 주문하고 주어진 짧은 시간을 책을 보며 불태웠다. 그 시간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로 지불한 2,500원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목은 이미 충분히 축였는데도 꾸역꾸역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는 나를 보았다.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어쩌나... 열심히 걸어온 것도 좋고 열심히 책을 본 것도 좋은데, 왜 열심히 아이스티까지 마셔야 하는지 나는 문득 내가 가련해졌다. 그래 나도 한 번 쿨하게 (내겐) 멋지게, 남겨보자. 얼음이 녹기 전 가장 시원하고 달콤했던 그 몇 모금으로 이미 난 충분했다. no more를 속으로 크게 외치며 반이나 남은 음료를 픽업대로 가져갔다. 이게 뭐라고, 주도권을 움켜진 듯한 승리자의 기분으로 승승장구하며 걸어 나왔다.
아까워서 혹은 습관적으로 생각 없이 내 속에 욱여넣은 것들이 이미 내 몸을 많이 상하게 했다는 것을 안다. 먹는 것이 즐거워서 먹을 것이 아까워서 그렇게 계속 먹고 있는 나는, 수시로 역류성 식도염 등의 위장 장애로 고생을 하면서도 그 악습관을 끊어내지를 못한다.
필요 이상의 콜라를 아깝다는 이유로 입 속으로 위장으로 후루룩 흘려보내지 않았던 그녀의 결단이 오늘은 삶의 주체성과 주도권으로 재해석된다. 이제는 콜라 대신 물을 선택해야 하는 너덜너덜한 치아 상태와 위장을 가진 나는, 비로소 그녀의 선택에 동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