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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Jul 01. 2020

기념일이 특별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매일이 기념일'

얼마 전 아들의 생일이자 우리의 결혼기념일인 날을 지났다. 특별한 두 개의 기념일이 겹친 그 좋은 날, 나는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리고 남편과는 우리가 휴일을 보내는 방식으로 평범하게 카페에 갔다. 우리가 카페 시간을 보내는 보통의 방식으로 그날도 보냈다. 각자 책을 읽고 생각을 하며 간간이 대화를 나누었다. 뭐 좀 특별한 식사를 해 주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잠시 고민했으나, 결국 내가 택한 건 근처에 있는 버거킹의 1+1 와퍼. 우리는 그 특별한 날에 와퍼 하나씩과 콜라 한 잔씩을 즐거이 먹었다. 생일이라고 설레 하는 아들을 위해 촛불을 밝혀주긴 했다만, 한 뼘 크기의 작은 초코케이크였을 뿐, 커다란 케이크로 법석을 떨어주지는 못했다/않았다.




 너무 무심했나, 아들에게도 너무 인색했나. 나는 문득 '기념일'을 이토록 쿨하게(?) 보내는 내가 정서적으로 뭔가 건강하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참는 것에 익숙하고 자기 억압에 능숙한 내가, 결혼기념일에 남편에게 꽃과 선물과 분위기와 서프라이즈를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는 것도 혹시 억압은 아닐까.

아이는 작은 케이크로 충분했을까. 아이에게 어떤 결핍이 되지는 않았을까. 

충분히 즐겁고 충분히 평화롭던 나의 내면은 금세 뒤흔들렸다.


컨셉진 80호, 당신은 기념일을 챙기고 있나요?



'나답게' 살기를 권하는 시대지만, 정말 '나답게' 살기 힘든 시대구나 구시렁대며 나는 타인의 눈치를 살핀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며 불안해하거나 혹은 안도하기도 하는, 나의 허술한 중심.




빠듯한 생활이지만

사고 싶은 것과 누리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을 지나치게 제어하며 살지는 않았다.

지난한 일상이지만

달달한 베이커리든, 진~한 커피든

넷플릭스의 좋아하는 다큐 한 편이든

그렇게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의 범위 안에서

나름 충분히 누리며 살았다.

일상을 방치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모으며

습관적인 억압으로부터 놓이기 위해

내가 원하는 소소한 것들에 대해 자주 묻곤 했다.

그 시간들이 쌓이는 동안

기념일의 특별함에 대해 나는 어느새 자유로워져 있었다.

한 때는, 기념일에 대해 긴장했고, 특별하지 않은 기념일을 두려워했었다.




기념일이 특별해야 하나요?


아니요,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일상은 특별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요.

기념일보다 일상이 더 많은 날을 차지하니까요. 일상을 특별하게, 기념일은 더 특별하게?!


컨셉진을 통해 알게 된 카페의 이름은 ,

'매일이 기념일'.

권태가 스며드는 평범한 날에 찾아가자며 

리스트에 올려놓는다.

컨셉진 80호,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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