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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May 18. 2020

등산복에 걸친 재킷

우리 좀, 최선을 다해 곱게 늙어갑시다

멀찍이서 급한 걸음으로 종종 다가오는 저 사람.  엄마가 맞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가까이 다가온 엄마의 옷차림을 확인하곤

나는 참으로 어안이 벙벙했다.

등산용 스포츠 웨어에 체크무늬 재킷을 걸쳤다. 나름 깔맞춤은 한 건지 둘 다 색상은 그레이 톤이지만, 조합은 황당하다.


노환으로 몸져누운 할머니의 치다꺼리를 하느라

늙은 엄마는 하루하루 더욱 늙어간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입고 나오셨나 나는 혀를 끌끌 찬다.

함께 급히 볼일을 해결하고,

나는 엄마를 끌고 마트로 향했다.

아이들의 하원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은 조급했다만 휘휘 돌며 엄마가 맘에 들어할 검정색 티셔츠를 찾아다녔다. 1만 원 대 티셔츠 하나를 사는데도 길이가 길다짧다 목이 넘 파였다 어쩌고저쩌고 말이 너무 많다.

하나를 점찍어 강요에 가깝게 권하고는 훅 결제를 해버렸다. 갈아 입고 가자고 했다.

엄마가 안쓰럽기도 하고 실은 또한 창피하기도 했다. 갈아입고 나오니 비교적 멀쩡한 차림이 되긴 했다만 이번에는 신발 위로 삐죽 올라온 발목양말이 거슬린다. 4개짜리 덧신 묶음을 집어 들어 후다닥 계산했다.

 

집에 옷 있는데 정신이 없었을 뿐이란다.

돈이 없어 못 사는 게 아니라 정신이 없을 뿐이란다. 주변머리가 없어 그렇단다.

그래 그렇겠지. 집에 당연히 다른 옷 있겠지, 저렴한 티 쪼가리도 못 사입을 형편은 아니지, 알지. 그래도...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향한 나는, 누렇게 변색된 베개를 버리자고 꺼내 놓았다. 장롱을 열어 집에 있는데 안 들고 나왔을 뿐이라는 그 가방들도 검열했다.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할머니를 보며,

그 할머니를 돌보느라 절절매는 두 노인(친정부모님)을 보며 나는 어찌할 수 없이 인간의 노년을 그리고 죽음을 자꾸 생각한다.


인생이 살아가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이제는 그 경계가 희미해진다.

나는 오늘 살아가는구나 그리고 동시에 죽어가는구나 생각하며 숨 쉰다.


늙는 것, 그리고 병드는 것을 누가 피해 가겠는가마는,

늙더라도 병이 좀 들더라도

끝까지 깔끔하게 나의 정신을 지키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아직 덜 늙어봐서 덜 병들어봐서 오만한 꿈을 꾸는 거겠지만,

엄마의 차림새를 조금이나마 다듬어주며

나는 우리 최선을 다해 좀 곱게 늙어가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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