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디션이 저조할 때면 어김 없이 따라오는 속병, 역류성 식도염도 도지려는지 증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혹시 코로나는 아닌가
혹시 뭔가 죽을병은 아닌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혹시 행여 만약, 죽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을 찢는 것은 어찌할 도리 없이 아이들이다. 남편이다.
나의 자유를 속박하는 존재.
나의 삶을 온전하게 살 수 없는 이유였던 내 삶의 굴레가 내가 살아야 하는 유일한이유였다니.
뭔가 좀 멋쩍다.
하루 이틀 앓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회복능력은 현저히 쇠퇴하여
나는 한 주를 넘게 골골댄 후에야 겨우 살아났다.
그리곤 난
항복하기로 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 삶의 기본값만 살아내자는 결심을 했다.
삶의 기본값은
죽음 시나리오 속에서 나의 가슴을 찢어 놓던
나의 이 두 자식과 남편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기 위해 필요한 나의 체력. 그 이상은 바라지 말자는 겸손한 마음으로 나의 욕망과 야망을 내려놓았다. 욕심부렸던 삶을 회개하는 기도도 하고, 내 안에 참으로 떨쳐지지 않던 삶에 대한 비장함도 애써 내려놓았다. 설렁설렁 살자고, 그게 진정으로 겸손한 삶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며칠은 결심한 대로 그렇게 설렁설렁 살아냈다. 애써 새벽 기상도 하지 않고 애써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도 않았다. 사부작사부작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향해 남편을 향해 내 존재의 각을 좀 더 맞추었다.
그렇게 며칠을 살아낸 후.
몸은 조금 회복이 되었지만,
마음과 영혼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남편을 무사히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무사히 등원시킨 후에도 나는 쉬지를 못하고 깊이 허망해했다. 슬펐고 어두웠다.
열심히는 말고 슬렁슬렁 써보자며 그 허망함을 일기장에 기록해나가는 동안, 나는 조금씩 기운이 났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설렁설렁 살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뭔가 비장할 때 그 비장한 각오와 절대로 지켜낼 수 없는 허황된 계획들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활력과 생명력이 내겐 비장함을 타고온다.
논문 학기를 시작하며 매일 관련 논문 한 권씩을 읽어내겠다고 목록을 차르르 작성해서 친구에게 보여준 기억이 난다. 친구는 혀를 내둘렀고(좀 질려했던 것 같다) 나는 실제로 그 비장한 계획의 10분의 1도 지켜내지 못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논문을 써내기는 했다. 비장했던 각오와 열정과 지켜낼 수 없던 빡빡한 계획들이 어쩌면 이만큼이나마 나를 걸어올 수 있게 해 준 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체력의 한계를 몸의 한계를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가치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아픈 시간을 지나고 있다. 이것이 마흔 앓이인가도 생각한다. 마흔 앓이라면, 제대로 앓고 싶어 진다. 호되게 앓고 난 후 개운하게 마흔 나이에 들어서고 싶다. '어쩌다 마흔'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서른'을 회피 없이 유보 없이 맞닥뜨려 보자고 다시 결국 나는 비장해졌다. 불혹이라는 나이가 그 어느 것보다 강렬하게 나를 유혹한다. 유혹이 없다니 그 얼마나 유혹적인가!
설렁설렁은 못 살겠더라. 내가 그냥 없는 것 같더라. 설렁설렁 살기는 글렀으니 비장하게 살 수 있도록 '마녀 체력' 프로젝트부터 계획할 일이다. 비장하게 말이다.
설렁설렁 사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사람이 있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전업주부'라는 본업 외에도 하나 더 '부업'을 이중직으로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희망으로 회귀한다. 아니더라도 못하더라도 그 희망이 또 전업주부로서의 나의 삶에 활력은 될 거다. 담담하게 살며 매일 더 단단해지며, 비로소 '전업주부'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오늘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