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재미나게, 아니면 둥글둥글 맛있게
크리스마스 때면 언제나 딸과 함께 굽던 진저브레드맨 쿠키. 어릴 때에는 굳이 틀로 찍어서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서 구웠고, 크면서부터는 초코칩을 넣어서 맛에 집중하고 모양은 그저 둥글게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기도 했었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차츰 잊혀져 간 이 쿠키를 밀가루 없는 버전으로 해서 다시 구워보았다.
이 쿠키의 시작은, 아이 어릴 때 읽어주던 동화책에서 시작되었다. 서구권 동화책에서 흔히 등장하는 진저브레드 쿠키는, 다 굽고 나면 벌떡 일어나서 도망가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 책을 읽고 나면 아이들은 누구나 진저브레드 쿠키를 굽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아이도 책에 나온 진저브래드맨 쿠키에 매료되었고, 크리스마스트리용 장식을 이 쿠키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다.
사실 처음에는 쿠키에 생강 및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을 수 있다는 생각이 참 생소했다. 음식 반찬도 아니고 그런 향신료들을 넣으면 아이들이 좋아할까 싶기도 했지만, 막상 집에서 구워 본 진저브레드 쿠키는 정말로 맛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우리 집 단골 쿠키가 되었다. 그래서 특히나 크리스마스 때면 의례 구워야 하는 쿠키였고, 딱 하나의 쿠키를 선택해서 구워야 할 때에도 역시 이 쿠키가 당첨되곤 했다.
아이 유치원 때에는 진저브레드맨 스토리를 읽는다는데, 당시에는 한국에 정말 알려지지 않은 쿠키였기에 일부러 이 쿠키를 구워서 가져다주고 나눠먹으며 수업하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일반적으로 두배 반죽으로 해서 듬뿍 만들고, 때로는 반죽을 냉동했다가 나중에 구워 먹기도 했을 만큼 좋아했는데...
이 쿠키를 그만 굽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보다도 밀가루를 끊으면서 였다. 남편이 밀가루를 못 먹는 체질이기도 하거니와 나와 딸도 역시 밀가루 소화가 쉽지 않고, 몸에도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밀가루는 우리와 멀어져 갔고, 많은 레시피들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저탄고지를 시작하면서 설탕도 완전히 끊고, 특히나 이 쿠키에 들어가는 당밀 같은 것은 전혀 손댈 일이 없어졌으니 쿠키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밀가루 대신 아몬드가루와 코코넛 가루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많은 종류의 베이킹이 가능해지기 시작했고 이 쿠키에 도전하고 싶어 진 것이다.
우선은 쉽게 하고 싶어서 구글 레시피 검색을 했는데, 재료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밀가루의 글루텐이 반죽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이 사실은 많은 알레르기의 원인이다 보니 글루텐 없이 다른 재료를 사용해서 그 질감을 내주는 것이 글루텐프리의 난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첨가물로 흔히 잔탄검(Xanthan Gum)을 사용하는데, 이름만 들어도 썩 내키지 않는 재료이므로, 나름 머리를 굴려 차전자피 가루를 조금 넣었더니 쓸만하게 뭉쳤다. 레시피는 예전에 실험했던 아몬드 초코 쿠키를 기반으로 해서, 향신료들을 적당량 추가하였고, 당밀이나 흑설탕을 넣는 대신 코코아 가루로 색을 내었더니 그럴듯했다. 완전 딱딱하지 않아서 질감이 더 좋다. 단단하고 파삭한 쿠키가 좋다면 좀 더 오래 구워도 될 것이다.
진저브레드 쿠키는 신선한 생강을 갈아서 넣기도 하지만, 그 밖에도 넛맥, 클로브, 계피 등등 한국에서 생소한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다. 내가 원래 사용하던 넛맥은 병에 담겨있는 가루였는데, 결혼해서 보니 남편은 마른 넛맥을 두고 그때그때 갈아서 먹더라. 어찌나 신기하던지. 하지만 저런 거 없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가루로 구입해도 충분히 잘 된다.
제과제빵을 할 때에는 흔히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는데, 마른 재료와 젖은 재료는 각각 섞어준다는 것이다. 즉, 가루는 가루들끼리 따로 섞어서 준비해놓는다. 일부 가루들은 보관 과정에서 수분이 들어가서 뭉쳐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에는 굵은 체에 한번 내려주면 쉽게 해결된다. 아몬드가루 입자가 커서 잘 안 내려가면 그냥 손으로라도 뭉친 부분을 미리 풀어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대부분의 젖은 재료를 실온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용법이다. 경우에 따라서 아닌 경우도 있지만, 별 말이 없다면 버터나 달걀 등은 실온에다 미리 꺼내놓는 것이 좋다. 쿠키 만들 때는 버터를 크림화 하는데, 실온에 두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왼쪽 같이 생겼던 버터가 오른쪽 사진처럼 크림화 되면서 뽀얗게 될 때까지 핸드 믹서기로 돌려준다.
또 다른 주의점은 그다음에 실온의 달걀을 넣어서 다시 믹싱 해주는데, 달걀을 여러 개 넣을 때에도 반드시 한 개씩 넣고 완전히 크림화 한 후에 다시 하나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본 레시피에서는 한 개만 넣음) 위의 사진을 보면, 오른쪽의 믹스가 아직 완전히 유화되지 않은 것이 보인다. 미끄덩 거리는 느낌이 든다. 이럴 경우 놀라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섞어주면, 다시 크림 같은 상태가 된다.
그러고 나서 미리 섞어둔 가루를 넣은 다음에는 더 이상 핸드믹서를 사용하지 않고, 주걱으로 재빠르게 섞어주는 것이 정석이다. 즉, 날가루가 보이지 않을 만큼만 섞어주면 된다. 너무 열심히 섞으면 부풀지 않아 딱딱하게 되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이번 레시피에서는 밀가루가 안 들어가니 그리 딱딱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부드러워서 레시피를 좀 바꿀까 고민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다음 과정은 숙성이다. 특히나 밀가루나 쌀가루 등의 경우, 마른 가루가 수분을 먹는 시간이 필요하다. 숙성을 거치면 쿠키의 풍미가 훨씬 깊어진다. 따라서 반죽을 뭉쳐서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한다. 최소 30분 이상, 하루 정도까지 괜찮다. 더 오래 두고 싶으면 냉동했다가 하루 전날 냉장실로 옮겨서 사용해도 된다.
냉장고에서 나온 반죽은 밀대로 밀어준다. 노밀가루 반죽은 밀대에 들러붙기 쉽기 때문에 유산지를 양쪽에 두고 밀면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다. 진저브레드맨 모양의 틀을 사용해도 좋고, 아무 틀이나 취향에 맞는 것을 사용하면 된다. 남은 반죽은 다시 뭉쳐서 또 밀어주면 된다.
재미는 왼쪽처럼 틀에 찍는 것이고, 맛은 아무래도 초코칩과 견과가 들어간 것이 좋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반반으로 한다. 짬짜면처럼, 치킨 반반처럼!
둥근 쿠키 26개 분량, 오븐 온도 180°C (350°F)
계량컵은 미국식 (240ml) 기준
재료:
아몬드 가루 2 1/4 컵
코코넛 가루 1 큰술
타피오카 전분 1 작은술 (없으면 다른 전분 2작은술로 대체)
무가당 코코아 가루 4 큰술,
생강가루 2 작은술
계피가루 1 작은술
정향가루(cloves) 1/2 작은술
넛맥가루(nutmeg) 1/2 작은술
베이킹파우더 1작은술,
차전자피 가루(고운 것) 1 작은술
버터 8 큰술(120g, 1 스틱, 1/2컵) - 실온
갈은 생강 (진짜 생강) 1 큰술
자일리톨 2큰술~4큰술
달걀(실온) 1 개
소금 1/4 작은술(가염버터 사용 시 생략)
바닐라 1작은술 (가루나 액체 상관없음)
초콜릿 칩 (무설탕 베이킹을 하려면 베이킹용 100% 초콜릿을 사용한다) - 틀에 찍을 것이면 생략
잘게 썰은 견과류 - 역시 둥근 쿠키일 때만 가능
만들기 :
1. 마른 재료를 먼저 볼에다가 잘 섞어준다. (위 재료 목록의 차전자피 가루까지)
만일 재료들이 너무 뭉쳐있다면 체에 내려주고, 적당히 덩이가 있으면 손으로 대충 풀어줄 것.
2. 실온의 버터에 갈은 생강을 넣고 핸드믹서로 힘차게 섞어준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뽀얗게 부푼다.
자일리톨과 다진 생강을 넣고 다시 잘 섞어준다.
3. 달걀을 넣고, 바닐라도 넣고 다시 완전히 잘 섞이게 핸드믹서를 돌린다. 크림 같은 느낌이 된다.
4. 처음에 준비한 마른 재료를 넣고 주걱으로 섞일 만큼만 저어준다. 틀로 찍을 것이면 여기서 멈추고
초코칩과 견과류를 넣을 것이면 지금 넣어서 한번 저 섞어준다.
5. 반죽이 숙성되도록 비닐봉지에 담아서 잠시 냉장한다. 시간이 없어도 30분 정도는 넣어둔다.
(이러면 반죽이 숙성되고, 가루가 액체를 먹고, 또 다루기 쉬워짐)
시간 없으면 이 단계는 건너뛰어도 좋으나 이때 설거지와 정리를 하면 좋음
6. 오븐을 섭씨 180도 (화씨 350도)로 예열한다
7. 초코칩을 넣었으면 한 숟가락씩 떠서 살짝 둥글게 빚어 유산지 두른 쿠킹 시트에 올려준다..
8. 틀로 찍을 것이면, 종이호일을 양쪽에 놓고 반죽을 밀대로 준다.
너무 얇게 밀지 말고, 쿠키가 되고 싶은 만큼 민다. (5mm 정도 두께)
틀이 없으면 그냥 칼로 네모나게 썰어도 된다.
8. 적당히 배치시키고 12~15분 정도 굽는다. 많이 부풀지 않으므로 조금씩만 떼어 놓아도 된다.
냄새가 폴폴 올라오면 5분 정도 더 굽는 것이 바로, 냄새로 굽는 방법이다.
상태를 봐서 좀 덜 된 것 같다 싶으면 한 3분 정도 추가하며 관찰한다.
식힘망에 올려서 약간 굳혀주면 더욱 단단하게 모양이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