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r 20. 2020

가족이란...


요즘 세계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전쟁이 따로 없다. 사방에서 국경을 봉쇄하는데, 과연 그게 제일 좋은 정책일까? 그게 제일 안전한 방법일까?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심만 심어주고 혼란을 야기시키는 것은 아닐까?

나는 외국에 살고 있으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창밖에서 들여다보듯이 지켜보았다. 수많은 확진자가 발생하는 와중에도 뭔가 큰 보호의 흐름이 보였다. 나라 문부터 일찌감치 닫기 시작한 이탈리아와 달리 정작 국민에게 필요한 것이 뭔가를 빠르게 찾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현장에 있던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패닉이었지만, 나라에서 최대한 투명하고 안전하게 진행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 비하면 서양 국가들은 밖에서 바이러스가 돌고 번져가고 있는 동안, 그저 손이나 잘 씻으라며 테스트도 관리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모두를 패닉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마트에서 화장지가 동 나고, 세제가 동 나고, 음식이 동 나고...  그런 스스로를 보호하겠다고 줄을 서서 총기를 구입하는 나라들... 그리고 국가가 셧다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가족을 먼저 생각한다. 사실 웬만한 일이 일어나도 가족과 함께면 이겨낼 용기가 생긴다. 지켜야 할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가족이 뿔뿔이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지금이 참으로 난감한 시기이다. 나 같은 경우, 어머니는 한국에 계신다. 그래도 여동생이 어머니 곁에 있으니 다행이고, 남동생네는 미국 동부에 살고 있다. 나는 남편과 캐나다에 있는데 딸은 혼자 엘에이에 있다. 그러나 내가 딸에게 가면 다시 남편이 혼자가 된다. 나는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모여서 이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차분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지난 월요일, 순식간에 캐나다 국경이 봉쇄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딸이 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건강도 안 좋은데 한 두 달만 좀 더 버텨보자고 했었건만 희망이 순식간에 끊긴 기분이었다. 딸은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진정 고립된 기분이 들게 되었다. 차도 없어 장보기도 아마존 홀푸드 배달에 의지해왔는데 미국의 현 상황에서는 배달도 끊겼다는 딸의 목소리는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캐나다에서 치자면 멀지않은 먼 곳, 미국...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결국 미국 국경까지 막히기 전에 내가 가기로 급격히 계획을 변경했다. 남편 혼자 두고 가기 마음에 걸렸는데, 그는 아빠 마음으로 날더러 어서 가라고 했다. 일단 가고, 추후에 데려올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고 하였다. 현재로는 시민권자의 가족은 입국이 가능한데 남편은 친아빠가 아니고, 나는 영주권자여서 권한이 없는 상태이다. 


밤중에 급히 티켓을 구매하고 공항에 왔는데 에어캐나다 직원이 보딩패스를 못 주겠단다. 이건 무슨 날벼락인가! 미국 영주권자가 아니고 캐나다 영주권자는 못 간다며 우기면서, 지금 상황은 예전 상황과 다르다며 버텼다.


우리는, 그건 캐나다 규정이라고... 아직 뉴스에서 미국이 그런 결정 내린 거 못 봤다고... 그렇게 십여분을 우겼고, 남편은 속이 타서, 그러면 캐나다 시민권자는 갈 수 있는 것이냐며 물었다. 당장 자기라도 티켓을 사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결국 그 직원이 옆자리 다른 직원에게 물어봤다. 나이 지긋한 그 양반이 미국에서는 아직 그런 기준이 없고 입국 가능성은 어차피 보더에서 체크할 거니까  esta 있으면 보내라 해서 간신히 보딩 티켓을 받았다. 


남편과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남편은 내가 보더 통과할 때까지 공항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세관심사에 임했으나, 막상 미국 보더에서는 언제 오느냐는 간단한 질문만 던진 채 바로 통과를 시켜줬다. 에효! (밴쿠버에서 미국 갈 때에는 국경심사를 밴쿠버에서 아예 하고 미국 국내선을 타고 간다) 애틋한 작별도 이렇게 끝나고, 남편은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공항은 한가했다. 지나며 입국 심사장을 내려다보니, 그곳도 한가했다. 캐나다는 입국 공항을 4개로 줄인 상태였는데, 급히 귀국할 사람들은 이미 다 들어온 듯했다. 


게이트 앞에 와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앉아 화창한 창밖을 보니, 아름다운 날씨에 서글픈 전쟁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이게 진짜 전쟁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떨어진 가족으로 얼마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비행기 안도 한산했다. 내가 좌석을 선택할 때만 해도 제법 많은 좌석이 선택되어있었지만, 막상 타보니 한 줄에 한 명 정도씩만 앉아있는 수준이었다. 비행기에서는 너무 피곤하니 자야겠다 했지만, 막상 잠이 안 와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 용서와 포용에 관한 영화였다. 미국에서 워낙 인기 있었던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 Mr. Rogers를 탐 행크스가 했는데, 이럴 때 보기에 딱 좋았다.


L.A. 공항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날씨가 쌀쌀했다. 공항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늘 북적이던 곳이 참으로 한산했다. 우버를 탔더니, 기사가 자기 두 시간째 공항에서 기다렸다고 했다. 모든 경제가 마비되고 있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려면 긴 줄을 서야 한다고 하면서 한탄을 했다.


아이 아파트 앞에 도착하니 아이가 달려 나왔다. 껴안지도 못하게 하고, 일단 들어가서 옷을 벗고, 씻었다. 다 씻고 나서 그제야 안아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와도 인간적 교류를 할 수 없는 곳에서 생활하니 외로움이 얼마나 클지...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지고 나면 스트레스 지수는 한 없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직장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아침에 일어나기는 하지만, 수면장애는 정말 오래되었고, 쉬어도 쉬어지지 않는 삶의 연속이었기에 얼굴은 창백했다.


엄마가 왔다는 사실만으로 아이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품에 안겼다. 그리고 아이는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밤새 깨지 않고 잤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소식은... 캐나다와 미국도 서로 합의하에 국경을 닫기로 했단다. 위중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도 국경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하루만 늦었어도 나는 여기에 못 왔을 것이다.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우리는 이것을 전쟁이라 부를 것이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더 이상 한국에 살지 않는 엄마는, 자신이 사는 나라로 아이를 데려가지 못한다. 하지만 방법을 찾을 것이다. 자가격리 중이어도 어쨌든 가족이 만났으니 길을 찾으리라. 남편도 아이도 나도, 우리는 함께 이 시간을 잘 넘기리라 믿는다.


다음 이야기 : 


매거진의 이전글 꽃이 핀 목도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