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한 달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오늘 드디어 출발이다.
작년 이맘때에는 생각도 못했던 신혼여행. 그 사이에 이 남자를 만나고 결혼하기까지, 정말 아무것도 계획과 연결된 것은 없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8년이나 되었는데, 단연코 한 번도 그와 결혼을 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고.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티브이에서 본 연예인 같은 호감이었지, 이렇게 어느새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이제 신혼여행을 간다니, 준비 과정 내내 믿기지 않았던 일이 오늘로 다가왔다. 밤에도 괜스레 이것저것 하느라 늦게 잤는데 아침에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짐들을 다시 점검하고, 집도 다시 점검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심히 비웠어도 결국 남아버린 달걀과 베이컨, 양파를 챙겨 들고 그의 막내아들 집으로 향했다. 아들이 우리를 태워다 주고 한 달간 우리 차를 관리해준 후 다시 우리를 마중 나올 것이다.
서둘러 준비하고 빠진 것 없나 챙기기 바빠서 비행기 확인을 안 했는데 (어찌 이런 실수를! 하하!) 비행기가 한 시간 연착이란다. 우리 안 그래도 넉넉히 나왔는데... 공항에서 4시간을 보내게 되었네!
원래 비즈니스나 프리미엄 이코노미 타면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어서, 가서 점심이나 먹자 했건만, 우리가 예약한 항공사는 라운지가 없었다! 홈페이지에는 있는 것처럼 광고했었는데 밴쿠버에는 없다고 판명되었다. 남편이 원래 에어캐나다 멤버여서 그쪽도 확인했는데 에어캐나다 안 타면 할 수 없단다 흠! 돈 내고라도 쓸까 했는데 안 된다 하고, 가능한 다른 라운지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허접한 뷔페 간식인데 1인당 1시간에 50불이라고! 헉!
그래서 그냥 식당에 가기로 하고 가까운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음식도 그냥 그랬고, 의자도 그다지 편하지 않았지만, 간다는 이유만으로 들떠있았다.
식사를 마치고 거기 앉아서 더 놀아도 되었지만 그게 별로 나을 거 같지 않아서 그냥 게이트 앞에 와서 노닥노닥 시간을 보냈다. 준비가 여전히 부족했기에 아예 노트북 꺼내서 본격적 검색도 하고, 화장실도 여유롭게 다녀오고...
파리에 도착해서 시내까지 들어가고 생 라자르 역에서 르아브르 가는 기차를 타야 하는데 우리 비행기가 연착이니 갑자기 시간이 줄어든 기분이다. 기차표를 여유 있게 사긴 했지만, 그래도 좀 불안하니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가는 길에 들러서 점심 먹으려고 생각했던 식당도 좀 다시 알아보고, 화장실도 천천히 다녀오고...
사실 여기까지 적고 나서 브런치 발행 버튼을 눌렀다. 비행기 타기 전까지 적당히 노닥거리다가 여유롭게 타겠다는 생각이었고, 뭐 여기까지 와서 무슨 다른 변수가 생기겠느냐 말이다. 그러나!
갑자기 폰에 delayed 알람이 왔다. 시간이 다시 두 시간 미뤄진 것이다. 비행기 바퀴에 결함이 있어서 고치느라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는데, 거의 보딩 시간 다 되어서 다시 delayed가 떴다. 이제는 파리 도착 후 노르망디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기차 시간은 2:48, 파리 도착 예정시간은 1:50. 짐 찾아서 기차역까지 가는 것은 도저히 꿈도 꿀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그러면 이 기차표가 변경 가능한가? 그것을 먼저 체크하고, 온라인에 접속했다. 날짜가 가까워져서 비행기표는 가격이 상당히 올라갔지만, 아직 표는 있어 보였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몇 시에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열차표 바꿔놨는데, 또 연착이 뜬다면 그때는 열차표를 바꾸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난번 이탈리아 기차표 예약할 때에는 한 번밖에 교환이 안되었기 때문에 교환을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에어비앤비에도 메시지를 보냈다. 그곳 시각이 아직 새벽 2시이므로 대답할 리는 없지만, 우리가 항공에 떠있을 때 알릴 수는 없으므로, 우리가 많이 늦어질 수 있음을 알려놓았다. 그래도 숙소를 다시 확인한 결과, 주인이 문을 열어주는 시스템이 아니고 셀프체크인 타입으로 들어가는 집이었다. 열쇠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우리가 알아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니 주인만 오케이 한다면 늦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르아브르 도착해서 그다음 날 렌터카 예약도 해 놓았는데, 머릿속이 막 복잡해져 왔다. 작년에도 파리 간다고 했다가 공항 파업으로 못 가고 손해를 엄청 봤는데, 이번에는 그 징크스를 꼭 깨고 싶다.
연결 편이 있는 사람들이 화가 나서 항의를 하고,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와서 한 번씩 방송을 하는데, 그에게 물어봐도,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오늘 가긴 가는 거냐고 물었더니, 오늘 분명히 갈 거라는 대답을 해주긴 했다. 출발이 늦어지니 물과 감자칩을 제공하고, 공항 분위기는 지쳐갔다. 그렇게 6시 반쯤 되었는데, 드디어 고장 난 부분이 어딘지 찾아냈고, 부속품이 없지만 지금 배달 오고 있는 중이라고, 7:30이면 떠날 수 있을 거 같다는 방송이 다시 나왔다. 일단 한 시름 놓고, 좀 더 기다려보기로...
여행 준비가 분주한 와중에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면서, 그간 급하게 준비했던 것들을 허겁지겁 정리하느라 글이 매끄럽지 않아서 마음이 좋지 않지만, 만일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아마 흐지부지 되어서 아무 기록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다소 뻔뻔스럽게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사실 이번 여행이 신혼여행이다 보니 둘이서만 계속 붙어있어야 해서 과연 얼마나 글 쓸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편 혼자 놀라고 하고 나는 앉아서 글을 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가능한 한 사진도 열심히 찍을 것이고, 매번 올리지 못해도 메모를 차곡차곡해서, 완성되지 못한 부분들은 9월에 돌아와서라도 마무리를 할 예정이다.
개인적인 감성도 담고, 여행의 정보도 담고 두 토끼를 잡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성공할지 모르지만, 내가 적는 이 글이, 노년에 사랑에 빠지고, 노년에 여행사 없이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