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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07. 2021

캐나다에 온 지 2년 되는 날

남편이 2년째 준비해주는 이탈리안 풀코스 디너

작년에도 이 날 글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내가 캐나다로 온 지 1년 되는 날, 남편이 그것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이태리식으로 근사하게 차려줬던 날... 그때에는 외식을 할까 하면서 찾아보다가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서 그렇게 집에서 준비하게 되었는데, 올해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남편이 물었다.


어차피 올해에는 외식이 불가하기도 하고, 집에서 차려 먹는 것이 더 좋으니까 집에서 먹겠다 했었고, 어떤 종류의 식사를 차려줄까 물어오길래, 작년처럼 비슷하게 해달라 했다. 남편은 뭔가 더 새로운 것을 해주고 싶어 했지만, 당시에도 이태리식으로 차렸는데 차라리 그걸 전통으로 밀고 나가면 어떨까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그 이후에 남편은 사고를 당했고, 나는 그런 저녁식사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남편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꼭 해주고 싶은 행사였고,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포기한다면 그는 심리적으로 더 속이 상할 것 같았다. 다행히 남편은 빠른 속도로 회복하기 시작했고, 여전히 통증이 있었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밀린 일들을 차근차근 손 대기 시작했다.


결국 사고 후 열흘만에 다시 출근을 했고, 그다음 날이었던 환영 저녁식사도 근사하게 준비해냈다. 작년과 가장 다른 점이라면, 딸이 여기 있어서 함께 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 즉 멤버 추가이다!



미리부터 메뉴를 고민하던 남편은 풀코스 정찬 메뉴판을 준비했다. 자그마치 총 10 코스. 남편은 중요한 식사를 준비할 때 이렇게 메뉴판을 만든다. 정성껏 준비하면서 머릿속으로 식사의 흐름을 느끼고, 무엇이 서로 조화가 되는지 미리 파악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는 진정으로 이 모든 과정을 즐긴다. 


휴일에 하면 좀 한가롭기 때문에 생일도 흔히 미뤄서 차리곤 하는데 이 날 만큼은 미루지 않고 당일에 한다. 그래서 남편은 더욱 바쁘다. 퇴근길에 필요한 것들을 장을 봐가지고 와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준비를 시작한다. 재료를 손질하고, 사용이 편하게 부엌에 진열해 놓는다. 날로 먹을 것, 삶을 것, 오븐에 구울 것, 팬에 구울 것들을 구분해서 재료를 정돈하면서 또한 식전 애피타이저 준비까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테이블을 먼저 세팅한다. 분홍색 식탁보를 깔고, 옆에 메뉴를 놓아주었다. 오늘은 은포크 세트를 사용할 것이다. 여러 차례 식사에 맞춰서 마실 술의 잔은 남편이 아끼는 Rogaska Gallia 크리스털 잔이다. 오늘은 셋이서 식사를 할 것이니 초도 3개를 준비하였다. 


이탈리안 풀코스 식사를 하니, 식전에 식전주(aperitivo)로 시작한다. 준비된 술은 이탈리안 샴페인에 해당되는 탄산 와인 프로셰코(prosecco)다. 두 가지 올리브와 너트를 준비해서, 서서 가볍게 건배를 했다. 딸은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그다음은 본격적 전식(antipasti)이다. 올리브 오일과 케이퍼를 곁들인 훈제연어를 부르스케타 이태리식 빵에 곁들여 먹는다. 훈제연어는 남편이 직접 집에서 양념해서 훈제해서 냉동해둔 것이다. 부드럽고 간이 적당한 게, 빵 위에 얹어서 먹으니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이렇게 먹고 나서는 본식 1차(primi)로 들어간다. 이탈리안 식사를 생각하면 흔히 파스타를 떠올리는데, 사실 이태리식에서는 파스타를 전식처럼 먹고, 본식으로 고기나 생선요리를 먹는 것이 원래 코스이다. 외식할 때에는 보통 패스하곤 했지만, 집에서는 풀코스로 달려본다. 


오늘의 파스타는 크림 파마잔 마늘 새우 파스타이다. 크림소스를 만들면서 파르메지아노 치즈를 갈아서 뿌리고, 그 위에 삶은 파스타를 얹어서 준비한다. 요리는 식간에 이루어지는데, 모든 재료를 완벽하게 준비해놓고, 한 코스가 끝나면 다음 코스를 바로 조리해서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지 않고 미리 다 준비해놓고 차례대로 서빙만 한다면, 다 식은 음식을 먹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술은 화이트 와인인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로 곁들였다. 


오늘의 플레이팅은 은테 두른 깔끔한 흰색 본 차이나, 서빙을 기다리고 있다
파스타에 레몬과 파슬리가 곁들여져 서빙되니 색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파스타 식사가 끝나면 곧바로 진짜 본식(secondi)으로 들어간다. 오늘의 메인은 팬에 구운 연어를 갈릭 레몬 버터 소스에 적셔 준비되었고, 곁들여 먹는 코스(contorni)로는 구운 호박, 삼색 감자, 그리고 아스파라거스가 함께 서빙되었다. 모든 음식은 계획된 대로 차곡차곡 이미 준비되고 있었고, 남편의 마지막 손질을 마치고는 얌전히 접시로 올라앉았다. 


남편은 능숙한 솜씨로 플레이팅 하였고, 나와 딸은 옆에서 파슬리를 뿌리거나 접시를 날랐다.



곁들이는 화이트 와인은 샤도네(Chardonnay)로 낙점되었다. 평소에는 구할 수 없는 사진들이, 맞은편에 앉아있는 딸 덕분에 모두 가능했다. 딸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즐거운 눈으로 쳐다보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모든 식사의 분량은 정말 조금씩 담아서 모든 코스를 다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였지만, 그래도 먹을 것은 참으로 많았다. 


본식을 끝낸 후에도 아직 여러 코스가 남아있었다. 이번엔 샐러드(Insalata) 차례였다.  올리브유와 앤쵸비를 넣어 유화한 풍미로운 소스에, 회향과 적양파, 과일을 곁들이고 파르마잔 치즈를 얹어서 풍미를 높여주었다.
 

나는 아직도 남은 코스가 있는지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이제 오늘의 식사는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제 치즈 코스(formaggie e frutta)이다. 가운데에 치즈 전용 서빙 도마를 준비하고, 여러 가지 치즈를 얹어 다양하게 맛을 보게 하는데, 이때 달콤한 과일이 잘 어울리므로 포도와 망고, 멜론, 딸기가 함께 서빙되었다. 함께 한 술은 화이트 와인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었다. 이렇게 오늘 식사에 지금까지 나온 와인이 총 4가지였다.


각자 먹을 만큼 덜어간다...


그리고 마무리는 디저트(Dolce)인데, 이것은 작년에도 내가 했던 품목이어서, 이번엔 딸과 함께 만들었다. 신혼여행 때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바로 그 티라미슈의 맛을 살려서 만들었다. 코코아 가루를 너무 진하게 뿌려서 휘핑크림을 짜는 붙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마음같이 이쁘게 안 되니 어찌나 속상하던지! 그래도 꿋꿋하게 짜서 위에 에스프레소 소스까지 뿌렸다.


밑의 레이디 핑거까지 푹 젖어야 제맛이다!


Marsala wine과 커피를 곁들여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인 술 DigestivoGrappa라는 독한 술로 준비되었는데, 먹고 또 먹은 우리는 그만 마지막 사진은 찍지 못했다! 하하!


파티는 이렇게 끝났다. 구구절절 우리가 먹은 메뉴를 나열한 이유는, 우리도 늘상 이렇게 먹는 것이 물론 아니므로, 내 브런치에 오시는 독자분들도 우리와 함께 드신 듯 즐기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는 다 비슷하다. 하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양념은 다들 다를 것이다. 다른 모양으로 사랑하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다른 것들을 즐기고, 다른 음식을 먹고... 그래서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삶을 즐기는가,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바라보는 일은 나로서는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나 또한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언제나 정성을 다하는 남편이 고마운 저녁이었고, 늘 떨어져 있어서 내 마음을 안타깝게 하던 딸이 함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또한, 남편의 사고 이후, 다시 그의 귀환을 확인하는 자리여서 기쁨은 훨씬 컸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처음 캐나다로 이렇게 용감무쌍하게 오면서 내심 두려움도 있었고 설렘도 있었는데, 그렇게 2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왔다는 사실을 축복할 수 있으니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딸이 찍어준 기념사진과, 또한 그 사진사의 모습을 함께 담아본다. 브런치에 글 쓴 지 오래되어서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애먹었다. 이것이 지난 12월 18일의 일이니, 그 사이에 밀린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리고 그전에 밀려둔 것들도 있다. 올해에는 차근차근 이야기들을 담아보련다. 


* 작년의 디너가 궁금하시다면 : https://brunch.co.kr/@lachouette/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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