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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r 02. 2021

소 혀 요리를 해주는 남편

놀랍게 맛있는 만찬이 되었다.

가끔 그런 얘기를 듣는다. 라슈에뜨님의 남편분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 봐요. 어쩌면 이렇게 맛있는 것을 많이 하시나요? 하지만, 사실 우리 집에서 요리는 나만의 분야가 아니다. 나 또한 전생에 나라를 구한 듯 남편의 음식을 얻어먹는다.


남편은 요리를 좋아한다. 아니, 좋은 음식을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는 그 누구보다도 음식을 음미하며 먹는다. 그래서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요리는 필수인 것이다. 좋은 재료로 된 요리가 좋고, 정성껏 만들어진 음식이 좋다. 


양질의 재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여러 나라의 특별한 음식을 좋아한다. 제대로 된 한식은 나를 통해서 처음 접했지만, 기본적으로 음식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그 맛을 음미하면서 제대로 즐긴다. 한식은 여러 가지 재료를 하나로 넣어서 만드는 음식이 많아서, 한 입 물면 그 안에서 다양한 풍미가 나온다는 것이 남편의 평이다. 대표 잔치음식인 잡채도 좋아하지만, 가장 밑반찬에 해당되는 숙주나물이나 멸치볶음도 좋아하고, 향이 강한 깻잎이나 달래장도 즐기고, 더 나아가 된장찌개나 청국장찌개까지 즐긴다. 분식집 메뉴인 순대도, 술안주 메뉴인 마른오징어도 환영이다. 한식뿐 아니라, 이태리 음식이나 그리스 음식도 즐기고, 인도음식이나 중국음식, 일본음식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다.


서양사람답게 고기를 무척 좋아하지만, 또한 야채도 좋아해서 며칠 안 먹으면 몹시 먹고 싶어 한다. 샐러드도 좋고 볶은 야채도 좋다. 그리고 생굴이나 관자, 새우 등등의 해산물도 즐긴다. 그런 그가 즐기는 또 다른 종류의 음식이 있으니, 육류의 부속들이다. 


사실 부속물을 먹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이렇게 먹으면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는 완전식품(Whole food)이 되기 때문이다. 매년 소를 반마리 사다가 냉동실에 쟁일 때, 부속물도 가능하면 꼭 함께 챙긴다. 소의 간이나 심장뿐만 아니라 혀도 먹는다. 간은 몇 번 해 먹었었는데 소 혀 요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의 요리를 믿으니 그냥 맡겨두었다.


한국에서 소 혀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검색해보니, 일본에서 인기가 좋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소 혀는 판매가 되고 있었다. 검색하니 여러 쇼핑 채널에 많이 올라온다.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서 소 혀 요리를 해 먹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일 것 같다.




남편은 아침에 혀를 냉동실에서 꺼내서 해동을 기다리더니, 낮에 열심히 손질 중이었다. 점심 먹고 산책 나가자 했더니, 이거 불에 올려놓고 끓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럴 때는 영락없는 주부다. 요리의 과정을 다 꿰고 있다. 


내가 다른 일들로 바쁜 사이에, 혀를 깨끗이 씻어서 당근과 양파 등등을 넣고 물에 넣어서 삶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없어서 과정 샷도 하나도 못 찍었다. 남편이 요리할 때에는 나한테 뭘 하라고 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 나는 늘 과정샷을 놓친다. 


산책을 다녀왔는데 혀는 계속 뭉근히 끓고 있었다. 3~4시간 정도 끓여야 한다고 해서 슈퍼에 가서 필요한 장도 봐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서 혀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소가 크니 혀도 상당히 컸다. 이렇게 통으로 된 모습을 보니 어쩐지 약간 무섭기도 한데, 그렇게 따지자면, 돼지 머리도 무섭고, 닭발도 무섭고, 순대도 무섭다. 또 통으로 손질하는 오징어나 생선도 무섭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눈을 동그라게 뜨고 쳐다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으니 말이다.



완성된 혀를 솥에서 건져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삶은 당근과 양파 등 건더기도 모두 꺼내 제거했다. 남은 물은 육수로 사용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그대로 떠먹어도 정말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 육수에 새로 당근과 감자, 양파를 넣어서 익혀준다. 이 야채들은 혀와 함께 먹을 것이다. 그리고 남는 육수는 얼려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요리할 때나 수프 끓일 때 사용할 예정이다.


브러셀 꼬마 양배추는 따로 쪄서 곁들였고, 혀는 로우스트처럼 썰었다. 그리고 뷔페처럼 각자 원하는 만큼 접시에 담아 먹도록 준비되었다.



나는 곁들임용으로 주키니 호박을 버터에 볶아서 준비했다. 원래 버섯볶음을 하고 싶었는데, 버섯 사다 놓고 잊어버린 채 냉장고에 오래 뒀더니 상태가 안 좋아서 버리게 되었다. 호박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 껍질 다 까 내고 버섯과 같은 방식으로 브라운 하며 볶았는데, 맛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버섯볶음 레시피 참조: https://brunch.co.kr/@lachouette/224)



이제 우리는 각자 접시를 들고 원하는 것들을 담아서 식탁으로 향했다. 접시에 담긴 소 혀 요리는, 고급 레스토랑의 특별 메뉴 같았다. 하긴 소 혀라니, 생각만 해도 얼마 안 되는 부위이고, 식당에서 사 먹는다면 얼마나 비쌀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예전엔 소 혀가 별로 인기 없는 흔한 부위였으나, 이제는 인기를 끌어서 쉽게 마트에서 구하기도 힘들며, 가격도 많이 비싸졌다고 했다.



맛은 깜짝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거의 씹을 필요가 없이 입안에서 살살 녹으면서 풍미가 가득하게 번져나가는 고급진 맛이었다. 소의 어느 부위도 이와 비슷한 맛을 내는 부위는 없다고 보인다. 거슬리는 맛이 전혀 없이 깔끔했다. 먹으면서 "음~"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남편의 말로는, 어렸을 때, 이 소 혀를 납작하게 눌러서 (cold pressed tongue) 차가운 채로 샌드위치에 넣어서 먹어도 정말 맛있다고 했다. 눌린 머리 고기 같은 느낌일까? 쫄깃할까? 사실 워낙 부드러워서, 눌러도 여전히 아주 부드럽다고 했다. 그것도 한 번 먹어보고 싶다. 


음, 이 정도면 나도 전생에 나를 구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소 혀 (Beef Tongue)

4인분


소혀 익히는 재료:

소 혀 한 마리 분

월계수 잎 2장

마늘 성큼성큼 잘라서 4쪽

통후추 12개 정도 

당근 1개, 성큼 잘라서

양파 1개 4등분

샐러리 1줄기 대강 잘라서 (옵션)


곁들이는 야채 (이대로 할 필요 없이 취향껏 준비한다) :

당근 중 2

양파 2개

감자 2개 껍질 까서 준비

브러셀 스프라우트 1봉 (옵션)

기타 취향에 맞는 야채 또는 양송이 버섯 등


만들기:

1. 소 혀를 가볍게 씻어주고, 큼직한 솥에 넣고, 푹 잠기게 물을 부어준다.

2. 월계수 잎과, 마늘, 통후추, 당근, 샐러리 줄기를 넣고, 중약불로 뭉근하게 3~4시간 끓여준다.

3. 포크로 찔러서 부드럽게 들어갈 때까지 익힌다. 

4. 소 혀가 완성되면 꺼내 두고, 육수 안의 건더기를 모두 제거한다.

5. 육수 안에 곁들임 야채들을 서빙하기 적당한 크기로 넣고 삶아준다. 

6. 그동안 혀의 껍질을 벗기고, 야채가 거의 다 익을 즈음해서 다시 혀를 끓는 육수에 담가 데워준다.

    이때는 오래 끓이지 말고, 데우는 개념으로 끓여야 한다.

7. 꺼내서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플레이팅하고 야채들과 함께 서빙한다.

8. 혀가 남으면 접시에 얹고, 무거운 접시를 위에 얹어서 눌러뒀다가 샌드위치에 끼워 먹어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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