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r 30. 2021

한 달이나빨랐던 딸의 생일잔치

밴쿠버에서 한식모듬회상차림으로 최고 럭셔리하게!

딸이 한국으로 다시 간다. 이것이 원래 우리의 계획은 아니었지만, 또 사정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것 역시 코비드 탓이리라. 요새는 모든 일들이 꼬이는 것은 다 코비드 탓이다. 목재 값이 껑충 뛴 것도, 상점들이 문을 일찍 열 수 없는 것도, 가게에 물건 공급이 제대로 안 되는 것도 모두 코비드 탓이다. 그리고 영사관에서 비자 인터뷰를 못하는 일도 말이다.


딸은 올해 미국으로 대학원 공부를 하러 간다. 사실은 작년에 합격해놓았지만, 코비드 때문에 수강 자체가 어려워진 데다가 수많은 학생들이 등록을 포기하면서 학교에서도 많은 학과가 일 년간 쉬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 년이 밀렸고, 올해 드디어 가게 된 것이다. 올해는 정상적으로 수업을 하겠다고 학교에서 발표가 났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 비자를 새로 받아야 하고, 인터뷰도 새로 해야 한다. 그런데 딸아이는 여기의 거주자가 아니고 방문자이기 때문에 인터뷰에서 우선권이 저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코비드 때문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 핑계 이리라. 가능한 것처럼 나와서 인터뷰 신청 서류를 다 작성했는데, 우리 앞에 나온 날짜는 8월이었다. 그때는 이미 학교에 가야 하는 시기인데 말이다. 신청서 쓰는 과정에 이런 질문이 있다.


비자를 하기 위해서 캐나다에 왔는가? (이곳 거주자가 아니면 무조건 Yes라고 답하라)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말장난인가? 차라리, "이곳 거주자인가?"라고 물으면 될 것을, 이렇게 해서 굳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딸내미는 다음 주에 한국으로 간다. 보내는 우리 마음도, 떠나는 딸아이 마음도 좋지 않다. 그리고 4월 하순이 딸아이 생일인데, 처음으로 이곳에서 생일잔치를 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고 나니 속상했다. 그러다가, 그냥 한 달 당겨서 하자고 했다. 


딸아이 생일을 차려주는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대학에 가게 된 이후로, 생일은 늘 타지에서 보냈으니, 2016년 이후로 한 번도 못 해줬구나. 대학에 가서 첫 생일 때에는 너무 바빠서 연락조차 안 되는 딸내미의 생일 때, 혼자서 미역국을 끓여먹으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다. 캐나다 온 이후에는, 남편이 비행기표 사줘서, 생일 전 주에 가서 아이의 발표회에 참여하면서, 미리 생일 축하 식사를 하기도 했지만, 작년에는 코비드 때문에 한국에 가서 혼자 지낸 딸내미의 생일 아침은 참으로 쓸쓸하였다. 한국까지 선물도 보내고 꽃배달도 시켰지만, 마음이 참으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는, 비록 제날짜는 아니지만 제대로 축하를 해주고 싶었다. 새 집에서 맞이하는 첫 생일파티를 말이다. 


우리 집의 생일 파티에는 늘 테마가 있다. 남편은 생일 전에, 당사자에게 어떤 식사를 원하는지 묻는다. 지난번 내 생일은 프렌치 스타일이었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그리스 스타일, 이탈리아식 정찬 등등 다양한 테마가 결정된다. 결혼 후 처음 맞이한 남편의 큰 딸 생일은 한식이었는데, 한국식으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며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콘셉트를 정하면 메뉴를 구성하여 메뉴판을 만들고, 레시피를 만들어 출력하고, 다 같이 그 음식을 차리며 즐기는 것이 생일의 즐거움이다. 


평소에는 물건을 구입할 때 가격을 가지고 결정장애를 일으키곤 하지만, 생일 때에는 주인공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서 무엇이든 선뜻 준비한다. 딸아이가 원한 아이템은 회였다. 광어회나 우럭회나 뭐 그런 거 아무거나 좋다고 했다. 사실 한국에서 혼자 횟집에 들어가서 모둠회를 주문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곧 한국에 갈 아이지만, 한참 동안 먹지 못했던 회를 먹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한국에서는 회를 구하는 일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곳에선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가장 흔한 방법은, 한인 마트에 주문해서 받아오는 것인데,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알아보니 광어 한 마리 잡아서 썰어주는데 $90이란다. 흠! 그래서 결국 한인 포럼에 구조요청을 했다. 픽업이 가능한 식당 소개도 있었는데, 회를 손질하되 자르지 않고 포장해서 공동구매 형식으로 살 수 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광어는 물론이거니와 도다리, 숭어, 아나고 등등 다양한 아이템이 있었고, 활전복과 활멍게까지 있어서 정말 선택의 폭이 넓었다. 물론 가격은 한국보다 훨씬 비싸지만, 한국에서 직접 가져오는 것이고, 여기서는 구할 수 조차 없는 것들이니 생일 아이템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광어, 우럭, 참돔이 함께 들어있는 모둠회 세트에 전복과 멍게를 얹어서 주문을 했다.


그리고 메뉴를 만들었다. 한국에 살 때에도 모둠회를 집에서 제대로 차려서 먹어 본 적은 없는 같다. 가끔 주문해서 먹어도, 그냥 주는 대로 펼쳐놓고 먹은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대체 뭘 준비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식당에서 회를 주문하면 따라오는 반찬들을 생각해봤다. 생굴과 멍게, 전복을 주문해도, 거기에 곁들여 튀김이 있을 테고, 샐러드가 있을 테고, 구워 나오는 치즈 옥수수도 있구나. 그리고 파채와 쌈채소들이 필요하고, 소스도 세 가지는 기본이다. 물론 마지막에는 밥과 매운탕이 나오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렇게 먹으면 매운탕은 분명히 끓여놓고 손도 못 댈 것이다. 그래서 밥은 데마끼 롤 하나씩만 말아서 먹기로 했다. 그리고 케이크는 딸아이의 희망에 따라 진한 초콜릿 케이크로 결정했다.



남편과 정성스레 메뉴판을 만들었다. 두 언어가 어울리는 폰트 고르는 것부터, 색상 선택, 종이 선택까지 고민이 이어졌지만, 결국 생일로 정해진 날 이전에 완성되었다. 남편은 전전날 밤에 이 메뉴판을 딸아이 방 밑으로 밀어 넣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메뉴판을 들고 와서는, 이렇게 많은 음식을 셋이서 어떻게 다 먹느냐고 했다. 이렇게까지 말한 것은 아니었는데...라고 하면서 말이다. 


생일상은 그렇게 차리는 게 아니야. 

생일 전날 리스트를 뽑아서 장을 보러 나갔다. 생선 공동구매도 픽업해야 했기에 동선을, 일반 슈퍼마켓 - 한인 슈퍼마켓 - 생선픽업으로 잡았다. 빠른 시간에 해결하려고 목록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문제는 한인 슈퍼마켓에서 발생했다. 한 군데서 해결하려 했는데, 원하는 물건이 거의 없었다. 결국 두 군데의 중국 마트와 세 군데의 한인마트를 섭렵하여, 냉동 오징어, 깻잎, 파, 날치알, 무순, 곶감을 모두 각각 다른 가게에서 구입해야 했다. 다행히 아이스박스와 얼음을 챙겨서 나갔기에, 그 중간에 픽업한 생선을 무사히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장을 보는 과정에서, 가격 대비로 굳이 이것을 구매해야 할까? 라든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니 생략할까? 같은 나의 반응에 남편은 단호히 말했다. "생일상은 그렇게 차리는 게 아니야." 생일상 자체가 선물인 것이니만큼, 상을 받고 기뻐서 입이 떡 벌어지게 해주는 것이 그 목표라는 것이다. 남편은 모든 것을 꼼꼼히 챙겼고, 나는 감동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장 본 것들을 정리한 후, 케이크는 생일 전날 밤에 미리 구웠는데, 밀가루 못 먹는 남편을 생각해서 다른 재료로 했더니, 원하던 브라우니가 너무 볼품없게 나와버렸다. 하나도 부풀지 않은 것이다. 단단한 브라우니였고 풍미는 좋았지만, 이 케이크에 장식을 하면 너무 초라해질 것이다. 그래서 결국 다른 레시피를 이용해서 하나를 더 구웠다. 두 번째 것은 만족할 만큼 풍부하게 나왔다. 그 시간 사이사이에, 내일 장식할 때 사용할 가나슈 크림도 만들어놓고, 쌈장이랑 초고추장도 만들고, 수정과에 곁들일 곶감이랑 대추도 말아놓았다. 그러느라 시간이 상당히 늦어졌는데, 남편은 계속 뭔가 도우면서 함께 남아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생일잔칫날. 온 식구는 늦잠을 잤지만, 느지막이 일어나서도 아이에게 "Happy Birthday!"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냥 오늘을 생일이라고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식사는 아점으로 해서 미역국을 끓여서 충무김밥 재료 남은 오징어와 섞박지로 아주 간단히 먹었다. 사진도 안 찍었다. 점심을 최소로 간단히 먹어야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저녁식사 준비에 돌입했다. 


내가 케이크를 장식하는 동안, 남편은 모든 야채 손질과 밑준비를 다 해줬다. 나는 이 케이크가 뭐라고 여기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지...



전날 망쳤다고 생각했던 케이크와 성공한 케이크를 모두 하나의 케이크에 쌓아 넣기로 했다. 진한 브라우니는 가운데 칸에 넣고, 초코 스펀지케이크는 둘로 나눠서 위아래로 샌드위치처럼 넣었다. 딸의 아이디어였다. 중간에는 딸기를 작게 썰어서 초코크림과 함께 버무려 넣었다. 그렇게 쌓은 이후에 가나슈 크림을 가장자리에 발랐다. 돌림판도 없고, 옆면을 깎아내는 도구도 없어서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서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상차림을 준비했다. 별로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것 저것 할 것이 많았다. 그리고 막판에 전복과 멍게까지 자르느라 정신이 없다 보니, 음식의 과정 샷은 하나도 못 건졌다. 남편은 나의 주문에 따라, 생전 먹어보지도 못했던 콘치즈까지 잘 만들어냈다.


옥수수 씻고, 야채 잘라 살짝 절이고, 팬에 볶다가 마요 섞어서 치즈 얹어 준비 완료.
마지막으로 멍게 손질


회를 주문한 날 먹지 않고, 하루 더 있다가 먹느라, 혹시 전복이랑 멍게가 죽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손질하면서 보니 아직 살아있었다. 전복은 손질하다 보면 꼭 손을 베이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찌나 악착같이 달라붙어있던지... 그리고 멍게는 물을 뿜느라 정신이 없어서 싱크대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손질이 끝나고 일단 생일잔치 시작! 


본식인 회로 들어가기 전에 일명 스끼다시, 곁들임 요리부터 시작했다.


이게 전식이면 본식을 어떻게 먹느냐고! 하하!



전복은 사실, 한국에서도 비싼데 여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존재감이 참으로 크지 않은가? 남편은 전복회를 처음 먹어보았는데, 생각보다 딱딱하다며 깜짝 놀랐다. 사실상 해산물 회 종류는 굴처럼 물컹거릴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아서 놀란 듯했다. 참기름 소금장을 냈는데, 찍어 먹으니 고급진 맛이 났다. 이 얼마 만에 먹어보는 전복인가!



해산물 상차림에 굴이 빠지면 서운하므로 딱 세 마리만 샀다. 그냥 정말 입맛만 다시는 용도로... 굴은 남편이 손질 전문이니 역시 척척 해놓았다. 개수는 적어도 손바닥만해서 역시 큼직하게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가 메뉴판을 만들어서 남편의 자식들에게 보냈을 때, 멍게(sea squirt)가 뭐냐는 질문이 왔다. 사진과 더불어 멍게 손질하는 동영상을 보내줬더니 그 이후로 답이 없었다. 너무 놀라워 보였을 것 같다. 사실 처음 멍게를 먹을 때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고, 생기긴 무지하게 징그럽게 생겨서 호감이 들지 않는 게 보통이지 않은가. 나도 그랬었다.


그런데 한 번 맛을 보고 나면 이상하게 그 맛이 종종 생각나고 더 먹고 싶어 져서, 다음에도 회를 먹을 기회가 있으면 이 멍게를 곁들이게 되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그런 맛이라고 우리 어머니는 주장하셨고, 나도 정말 그랬다. 그리고 딸도 그랬다.


남편도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신기하다는 듯 집어 먹었고, 굴과 비슷한 질감에, 바다향이 진하게 난다는 반응을 보였다. 딸아이는 너무나 좋아했다. 한국에서 먹는 맛이라고...


그리고 콘치즈. 사실 상당히 불량스러운 식품이라서, 인스턴트 음식을 안 먹는 우리 식구가 즐기는 메뉴는 아니지만, 그래도 횟집 메뉴라면 이게 빠지면 서운해서 넣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통조림 옥수수캔에 마요네즈라는 조합에 계속 놀라는 남편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남편은 기대 이상으로 참으로 맛있고 자꾸 손이 간다며 신기해했다.

 


그리고 쌈채소도 구색을 갖춰서 색색가지로 맞췄고, 별거 아닌 브로콜리도 찬조 출연해서 횟집의 분위기를 더욱 돋워줬다.  쌈장과 초장과 와사비를 준비했고, 지난번에 먹고 남은 막걸리를 가라앉혀서 청주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곁들이니 딱 좋았다.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먹는 전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고, 이게 전초전임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배가 불러와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얼른 멈춰서 다음 코스를 준비했다.


나는 전식에 오징어와 새우튀김을 넣고 싶었는데 시간이 모자라 튀기지 못했기에 회와 함께 내려고 튀김을 준비하고 있었고, 남편은 구매해온 횟감을 썰었다. 평생 처음 썰어보는 모둠회라니! 유튜브를 돌려보긴 했지만, 먹어본 적도 없는 광어와 우럭, 참돔을 자르느라 진땀을 뺐다. 


그리고 남편이 진작에 채 썰어놓은 무채 위에, 딸내미가 회를 얌전히 올렸다. 이 모든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어야 했는데, 내가 튀김을 하느라 모든 과정샷을 놓치고 말았다. 



회는 연어회와 참치회만 알던 남편이 광어회를 처음 먹어보고, 그 부드러운 맛에 깜짝 놀랐다. 우리 세 식구는 회를 정말로 흡입했다. 우리가 주문한 광어, 우럭, 참돔 이외에도 남편이 미리 준비해둔 연어와 참치까지 더해서, 회는 총 다섯 가지니 확실한 모둠회 맞다. 



아이가 정말 이렇게 많이 준비했느냐며 눈이 휘둥그레 지고, 또 감탄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보람찬 생일상이었다. 사실 비용이 많이 들긴 했지만, 몇 년 만에 차리는 생일상이니 그래도 되지 않겠는가. 아쉬운 점이라면, 남편의 자식들까지 모두 모여서 먹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우리끼리만 먹으니 그게 제일 서운했다. 


먹고, 웃고, 또 먹고... 그러다 보니 배가 너무 불렀다. 우리, 생일 케이크도 먹어야 하는데! 그랬더니, 막간을 이용해서 선물 개봉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아하, 그렇지!


선물은 멀리 동부 노바스코샤에 있는 시누님이 보낸 것이랑, 내가 준비한 것, 남편이 준비한 것이 있었다. 



멀리 있는 새고모에게서 온 것은 다정한 카드와 고양이 시집이었다. 귀엽게 생긴 시집의 표지 안에는 시크한 시들이 들어있었다. 일부는 영어였고, 일부는 불어였다. 역시 멋쟁이 마가렛이야!


내가 준비한 것은, 아이가 갖고 싶다고 주문한 편지봉투 따개(letter opener)였다. 편지봉투를 우아하게 열 수 있는 이 칼을 고르느라 여러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고 다녔고, 적당한 크기, 적당한 날카로움을 지닌 것을 찾았다. 그러나 케이스가 없었다. 결국 나는 남편의 헌 청바지를 이용해서 케이스를 만들었고, 예상했던 대로 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비장의 무기는 마지막에 있었다. 도대체 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박스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이가 카드를 집어 들자 내가 말했다. "You must be puzzled." 무엇이 들었는지 어리둥절할 거야...라는 의미의 문장이지만, 어리둥절하다는 단어 puzzle를 일부러 사용해서, 카드가 퍼즐로 된 것이라는 장난스러운 힌트를 준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열었더니 그 안에 진짜 퍼즐이 들어있었고, 아이는 깔깔 웃었다. 아이의 나날이 그저 많이 많이 웃을 수 있는 날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드디어 마지막 상자를 열었다. 브레드 버켓(bread bucket)! 깜짝 놀라는 아이를 보고 우리 부부는 무척이나 흐뭇했다. 이게 뭐냐 하면, 빵을 만드는 골동품 도구이다. (https://brunch.co.kr/@lachouette/163 참조)



남편은 어머니께 물려받은 것을 사용하고 있는데, 지금도 너무나 빵을 잘 만들어내는 신통한 물건이다. 딸이 탐내자, 나중에 물려받는 리스트에 적으라고 했더니, 그러면 그때까지는 어디다가 만들어 먹느냐고 하며 웃고 지나갔다. 그 이후로 우리는 이 골동품을 물색했다.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에 올라온 것이 있었으나 사이즈가 너무 컸고, 다른 중고 물품들도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완전히 녹이 슬었거나, 일부가 없었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멀리서 뚜껑 없는 것을 찾았고, 상태가 너무 좋길래 그거라도 일단 감지덕지 구입을 했다. 뚜껑은 내가 퀼트로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다시 다른 것을 찾았다. 상태는 덜 좋지만, 뚜껑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다시 하나 구입했다. 사실, 남편의 골동품은 너무 써서 양동이 한쪽이 구멍 나기 직전이었으니, 만일을 대비해서, 가능할 때 구입해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것이 남편의 의견이었다.


딸은 그때 그 마켓플레이스에서 사라진 이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는 이 물건을 갖지 못할까 봐 안타까워했었는데, 이 물건이 눈앞에 떡 놓이니 이렇게 흐뭇할 수가! 이거 들고 기숙사 가고 싶다고 해서 웃었다. 딸이 가져갈 수 있을 때까지 우리 집에 모셔두더라도, 이것은 진짜 그럴듯한 생일 선물이 되었다. 



실컷 웃었으니 다시 먹어야지! 그래서 오늘 식사의 마지막 정리인 밥 등장했다. 한식 메뉴는 아니지만, 입가심 마무리 밥으로는 적은 양에 이만큼 만족도 올리기는 쉽지 않으므로, 알밥을 할까 고민하다가 이쪽으로 돌렸는데, 정말 딱 적당한 양으로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기에 넣을 무순을 찾느라 가게 다섯 군데를 돌았으나 화룡점정으로 예쁜 모양새를 만들어줘서 보람 있었다. 


그리고, 이제 케이크와 수정과로 마무리를 할 차례. 아이의 이니셜이 들어있는 초를 꽂고 다이닝룸으로 들어갔다.



브라우니를 스펀지케이크 가운데에 끼워 넣은 것이, 커팅 후 단면을 더욱 예쁘게 했다. 진한 초콜릿 맛과 부드러운 스펀지케이크가 함께 어우러진 조화였다. 부드럽고 리치한 가나슈크림은 입안에서 살살 녹았고, 딸기와 초콜릿은 언제나 환상 궁합이므로,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초콜릿 케이크였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수정과와 잘 어울렸다.  이래서 또 우리는 눈을 지그시 감고 신음하며 우리의 마지막 코스를 즐겨야 했다.


이렇게 생일잔치가 끝난 시각은 밤 11시. 배는 한가득 부르고, 마음도 한가득 불렀다. 딸의 얼굴엔 감사의 미소가 들어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었고, 아이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아낌없이 주고 싶어 하는 부모 마음을, 털끝만큼도 생색의 느낌 없이, 그저 풍요롭게 전달하고 싶었다. 받으면서 전혀 미안하지 않고, 그저 고맙고, 행복하고 가득한 느낌... 집에서 아이의 생일을 차려줄 수 있어서 좋았고, 유쾌하게 아낌없이 지원해준 남편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덤으로 얻은 것은, 가득한 뒷정리! 하하! 부른 배를 꺼트리기에 이만한 것도 없을 듯. 그래서 우리는 수다를 떨며 이 부엌을 함께 치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또 다른 덤은, 남은 음식들이었다. 다음 날의 메뉴는 회덮밥과 케이크가 또다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웃음은 생일로 끝나지 않았고, 계속 그 여운으로 웃어가는 날들을 추가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클럽하우스 입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