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y 07. 2021

떠날 때도 아름답게...

여운을 남기는 뒷모습이 좋다

아름답게 피었던 벚꽃이 거의 다 져 간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눈꽃처럼 흩날리며 손을 흔든다. 나는 만개한 벚꽃도 좋지만, 지금 이 때도 참 좋다. 꽃이 활짝 폈을 때에는 분홍으로만 가득 차는데, 꽃이 질 때는, 녹색 잎도 나오고, 그리고 꽃이 진 자리에 진분홍 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써 놓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사는 것이 뭐가 그리 바쁜지 늘 종종거리는데 결과물은 그리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브런치의 작가 서랍에 쓰다만 글들이 수북한데, 아마 나는 참 효율이 떨어지는 굼뜬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벚꽃은 다 졌고, 이제는 푸른 잎이 하나 가득이지만, 그리고 올해에는 가지치기를 심하게 할 계획이지만, 다 잘려나가기 전에 추억을 회상하고 싶어서, 쓰다만 글을 꺼내 들었다.


나는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많은 색을 보고 자라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집안의 벽이 아버지의 그림으로 늘 가득했으니까 나는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미술 감상을 하며 자랐다. 아버지를 따라 다른 작가들의 전시회 구경도 다녔고, 그렇게 그림은 내 생활의 일부였다.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아버지의 그늘로 들어가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고 싶다는 어린 자존심 때문에 미술을 전공하라는 말씀을 거부했고,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결국 나는 계속 미술과 관련된 일들과 연결되곤 하며 살았다. 사진 찍기를 좋아했고, 뭔가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리고 퀼트로 전시회를 하며 작가처럼 살았다.


퀼트를 본업처럼 하면서 천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했고, 어릴 때부터 친숙했던 색들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 머릿속에 색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 것이 그때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역시 나처럼 색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서 살고 있다. 남편의 상차림은 언제나 색의 조화가 아름답다.



가드닝을 하면서, 꽃들의 색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 벚꽃이 다른 꽃나무들에 비해서 인기가 많은 이유는 다른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먼저 피어나서일 것이며, 잎이 올라오기 전에 꽃부터 피어서 풍성한 분홍색으로 마음을 황홀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약간 시간이 지나서, 색이 어우러질 때가 더 예쁘게 느껴진다. 이렇게 꽃들 사이사이로 연두색 잎이 나올 때면 그 조화가 황홀하게 아름답다. 꽃 안쪽의 진분홍이 드러나면서 연분홍이기만 하던 꽃에 화색이 돈다.



만일 이것이 자연의 색이 아니라면, 만일 내가 옷을 입는데, 상의는 분홍색을 입고 하의는 연두색을 입는다면 얼마나 촌스러워 보이겠는가! 거기다가 진분홍 머리핀을 꽂으면 정말 우습겠지? 이것은 자연이 내줄 때만 아름다운 색상이다. 이 아름다운 색상은 아무리 사진을 열심히 찍어도 실물만큼 아름답지 못하다.


이 시기에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꽃 안에 별이 피기 시작한다. 녹색 꽃받침 안에 붉은 꽃술이 달려있는데, 그게 마치 붉은 별처럼 보인다.



그 별꽃은 점점 더 붉은색이 되어서 떨어진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내 손 안의 별!


물론 꽃이 만발했을 때에도 연두색과 어울리는 것이 꽃을 더욱 아름다워 보이게 한다. 이웃집에 커다란 침엽수가 있는데, 그 나무를 배경으로 찍으면 벚꽃이 돋보여서 좋다. 더구나 그 나무도 새로 연두색 옷을 입느라 바쁘기 때문에 꽃이 피지 않는 나무지만 일 년 중 가장 예쁠 때이다.



그리고 벚꽃은 아름답게 진다. 눈이 내리듯이... 그러나 더 가볍게, 바람에 흩날리며 온 동네를 하얗게 물들인다. 조금씩 퍼져가다가 결국은 빽빽하게 한치의 빈틈도 없이 땅을 메꿔버리는데, 눈처럼 빨리 녹지 않고 밟아도 망가지지 않는다.


꽃이 진 자리에서 환하게 빛나는 물망초
점점 덮여가는 마당
그리고 완전히 뒤덮인 모습! 잔디의 녹색가 조화가 아름답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예쁘기만 하겠는가! 결국은 말라가고, 비도 맞고... 그러면서 색상은 점점 퇴색이 된다. 우리가 노년이 되듯이 꽃도 그렇게 떨어져서 색까지 잃게 된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꽃잎이 날려 들어와서 현관 안쪽도 엉망이 되고,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잔디 위에 뿐만 아니라 드라이브웨이에도 쫙 깔린 꽃잎. 시들어서 말라비틀어져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나도 한때는 아름다움을 풍미했던 꽃잎이라고 외치며 꿋꿋하게 바닥에 들러붙어있다. 그렇다면 보낼 때도 아름답게 해 줘야지.


그래서 긁어모았다. 쉽사리 한가득이 된다. 아주 많아도 전혀 무겁지 않다. 깃털처럼 가벼운 그녀!



이제 이 꽃잎은 사뿐히 거름통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제 역할을 또 아름답게 해 낼 것이다. 음식 자투리와 쓰레기를 모아서 발효시키는 통에서 이런 갈색 꽃잎은 아주 효자 노릇을 한다. 젖은 재료와 마른 재료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건강한 거름이 탄생되니까.


아름답게 우리 집의 봄을 장식했던 벚꽃 안녕. 가지치기 이후 내년엔 이렇게 풍성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꼭 다시 찾아와 주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