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니 이것저것 하나씩 자리를 잡는다.
아스파라거스를 사 온 지 일주일도 넘었다. 두릅이랑 같이 가져왔는데, 날 뿌리로 들고 온 두릅은 오자마자 심어줬건만, 아스파라거스는 계속 미루면서 날짜가 가니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늦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마땅한 심을 곳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텃밭을 이미 세 개나 만들었지만, 모두 들어갈 것이 정해져 있었고, 아스파라거스는 한 번 들어가면 뼈를 묻는 장소를 찾아 야하기 때문에, 잘 생각해서 앉혀야 한다. 그래서 계속 온실 한편에서 자리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화초들이 그렇듯이 아스파라거스도 물 빠짐이 좋은 곳에 심어야 한다. 물속에 앉아있는 것을 아주 싫어한단다. 그래도 해를 많이 탐하지는 않으니 좀 다행이기는 하다. 해 좋은 자리는 대부분 이미 정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지난번 텃밭 만들고 남은 목재를 이용해서, 60cm x 90cm짜리 자그마한 텃밭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내가 목을 빼고 기다리니 남편이 주중에 하루 짬을 내서 후다닥 만들어서는, 어디에 놓고 싶은지 정하라고 했다. 우리는 텃밭 틀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기존의 텃밭 옆에 나란히 놓았다. 땅이 약간 기울었기에 아래에 지지대를 받쳐 넣고, 남편이 자리를 잡아줬다.
물론 남편이 다음 날 퇴근하고 와서 흙을 넣어주겠지만, 요새 남편이 무리해서 무릎이 안 좋길래, 남편 없을 때 나름 수레를 이용해서 조금씩 채워서 낑낑거리고 나르고 있는데, 퇴근한 남편이 보고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부실한 팔다리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결국 남은 한 번은 남편이 채워줬다.
그러고 나서 보니, 물 빠짐을 좋게 하려면 모래를 좀 넣으면 좋을 거 같아서 사방으로 알아보느라 시간이 또 걸렸다. 한국에서는 마사토 같은 것을 쉽게 구해서 잘 섞는데, 여기서는 그런 소재를 잘 안 쓰는 거 같다. 우여곡절 끝에 흙에 섞을만한 적당한 굵기의 모래를 얼떨결에 반 값에 구했다.
사실, 사건은 이랬다. 마음에 드는 모래를 찾느라 인터넷을 헤매었는데, 자재상인 홈디포(Home Depot)에서 뭔가 마땅해 보이는 모래를 파는 것이 보였다. 내가 원하는 굵기의 모래일 거 같은데, 우리 동네에는 없길래 이웃동네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진열되어있다는 코너에 이 물건이 없었다. 분명히 인터넷 재고에는 8개가 있다고 되어있었는데 말이다. 여기는 흔히 재고량이 틀리긴 한다. 그래서 직원에게 물었더니, 딱 하나 남아있는데 누가 열었던 것이라고 했다. 음! 뭐, 먹을 거 사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사겠느냐고 묻길래, "깎아줄래?" 그랬더니 흔쾌히 반값으로 깎아줬다. 내가 카트가 없으니 성큼 들어다가 계산대에 올려주더니, 카트를 가져와서 담아주면서, 직원에게 반값으로 해주라고 말해줬다. 얼떨결에 득템한 모래를 챙겨서 집으로 왔는데...
다른 회사의 traction sand는 가드닝에 써도 된다는 문구가 있는데, 이 회사 제품에는 없는 것이다. 혹여라도 좋지 않은 성분이 들어있는 공업용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 모래는 원래, 차에 싣고 다니다가, 눈 오고 그래서 차바퀴가 헛돌거나 할 때 밑에 뿌려주는 용도이다. 그러니 꼭 깨끗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은 회사 웹사이트 뒤져서 전화도 했는데 연결이 안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이 모래를 먹거리용 텃밭에 사용해도 되느냐는 메시지를 보내 놨는데, 다음 날 답장이 왔다. 안심하고 흙 개선을 위해서 써도 된다는 것이었다. 모래 사 오자마자 성질 급하게 흙에다가 일부 섞었는데, 갑자기 불안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는데, 안도의 숨이 내 쉬어졌다.
그래서 드디어 열흘만에 아스파라거스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선, 구해온 모래를 아래쪽부터 잘 골고루 섞었다. 그리고 준비가 완료되자 아스파라거스를 화분에서 꺼냈다. 작은 화분에서 기다리고 있느라 뿌리가 약간 원통형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잔뿌리 없이, 거미 다리처럼 토실해 보였다.
아스파라거스를 심는 방법은, 흙의 가운데를 봉긋하게 쌓아놓고, 그 위에 뿌리의 중심을 놓음 다음, 나머지 뿌리를 바깥쪽으로 펼쳐서 마음 놓고 다리를 뻗고 왕좌에 앉아있는 듯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뿌리가 부러지지도 않으면서 편안하게 펼쳐질 수 있다.
고부라진 뿌리를 무리가 되지 않게 펼친 후에 흙으로 기분 좋게 덮어줬다. 다른 식물들은 다들 방을 나눠 쓰는데, 얘네들은 독채를 차지했다. 뒤 화분에는 함께 얻어온 홀스 래디쉬다. 비록 화분이지만 역시 독채를 쓰고 있는 저 아이도 뿌리 번 집이 큰 아이다. 그런 화초들은 화분에 키우는 것이 안전하다. 자리 잡은 화분이 마음에 드는지,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
아스파라거스의 위쪽은 완전히 흙에 푹 파묻어 버리지 말고, 이렇게 왕관 같이 삐죽삐죽한 부분이 살짝 나오도록 묻으라 하였기에 소심하게 위쪽을 남겨두었다. 잘 보니 또 새로 싹이 나오네!
아스파라거스는 다년생인데, 10년씩도 키운다고 한다. 처음에 3년 정도는 먹지 못하고 키우기만 해야 한다는데 나는 5년짜리를 구입해온 것이어서 곧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첫 해에는 뿌리가 자리를 잡아야 하니까 좀 자제를 하는 중이다.
해가 잘 들면 파랗게 예쁘게 자라고, 해가 전혀 안 들면, 하얗게 예쁘게 자란다고 한다. 결론은 어떻게 해도 예쁘다는 것!
아직 멀대같이 삐죽 하지만, 실하게 잘 자라서 식탁을 럭셔리하고 풍요롭게 해 주길 바라본다. 두릅과 아스파라거스, 어쩐지 둘이 통하는 것 같지 않은가? 서로 멀지 않은 곳에서 좋은 기를 받으며 잘 자라길...
다음번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