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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n 21. 2021

네일해쏘요오~~

삶의 가치 기준이 모두 달라서 다행이야

많은 직종이 호수 위의 백조에 비유된다. 겉으로는 우아해 보이고 아름다운 직업들이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궂은일을 요한다는 얘기다. 동생은 갤러리 관장님이다. 우아하고 고상한 직종이지만 갤러리의 화장실 청소부터 벽에 못질 페인트칠까지 다양한 일을 한다 무거운 그림을 나르고, 전시가 바뀔 때마다 밖에 싸인을 같아 붙인다. 물론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는 사교적인 생활도 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 작가님 한 분은 카페 사장님이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직종이지만 손에서 물이 마를 새가 없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카페에서 종일 종종거린다. 손님이 계획과 상관없이 몰아치기 때문에 제대로 앉아서 밥 먹을 새도 없다. 분명히 밤에 잘 때는 끙끙 않을 것이고 아침에 깨어나면 온 몸이 천근만근일 것이다.


나는 그의 비하면 우아한 백수다. 집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고, 낮에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가드닝을 한다. 꽃과 나무와 각종 야채들과 시간을 보내니 얼마나 여유롭고 아름다운가. 그러나 여기에도 역시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물 주고 나면 촉촉해지는 땅이 기분 좋다.


아침에 식사 대용으로 먹는 스무디를 만들다가, "해 뜨거워지기 전에 물 먼저 줘야지."하고 마당으로 나가면 점심때가 되어도 들어오지 못한다. 물 주다 보면 손 봐야 할 곳들이 보이기 때문에, 물도 다 주지 못하고 계속 옆으로 옆으로 이동한다. 


지난달까지는 일교차가 심해서, 낮에 온실에서 모종들을 죄다 꺼내서 일광욕시켜주고, 저녁때에는 또 모조리 다 안으로 집어넣어서 따습게 재워주어야 하였으니, 일단 그것으로부터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날씨가 갑자기 뜨거워지면, 텃밭에서 밤새 추위에 떨던 오이나 가지 같은 애들이 햇빛에 타들어가면 또 앞에다가 뭔가를 받쳐서 가리개를 해줘야 하고... 아기 키우는 거나 다름없다. 


일광욕 중인 모종들


뒷산 쪽 불모지를 정리해서 꽃을 심기 시작하면서 돌밭 고르기는 매일의 일과이다. 호미 들고 앉아서 돌산을 캐고 또 캐내어 그 자리에 흙을 채우고 꽃을 심기를 몇 달째 하고 있다. "콩밭 매애는 아낙네야~~" 하는 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래도 블랙베리 밭이었던 곳을 이만큼 만들었으니 흐뭇하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었으니 꽃이 더 많이 피고, 전체적으로 꽉 차오를 것이다. (오른쪽 귀퉁이에 두릅나무도 잘 크는 중)



뭐 하나 하려다 보면 그 외에도 눈에 들어온 것 천지이다. 민달팽이도 잡아야 하고, 진딧물에 천연 약 만들어서 뿌려야 하고, 비가 갑자기 많이 오면 지붕 물받이 새는 것도 걱정되어 뛰어나가고... 달팽이 잡다 말고 쭈그리고 앉아서 잡초 뽑고 있고, 시든 꽃 따주고, 그러다 보면 내가 원래 뭐 하러 나왔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언제나 할 일은 넘쳐난다. 기운이 없다 싶으면 벌써 오후 1~2시 되어서, 배가 고픈 거였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물 주러 나갈 때 큰 다짐을 하곤 한다. 물만 얼른 주고 들어와서 브런치 글도 쓰고, 청소도 하고... 그러나 현실은 늘 그렇지 않은 거다. 나가면 함흥차사. 


시간이 바쁜 것도 한 가지지만, 화초 옮겨심기는 주로 초저녁에 하기 때문에, 모기들이 활개 치는 시간이다. 따라서 모기 자석인 나는 매일 돌아가며 다양한 곳을 물린다. 어느 날은 목 주위를 뜯기고, 어느 날은 다리를... 그리고, 얼굴을 신나게 뜯기고 나면 사람 꼴이 참으로 우습다. 


여기에 또 하나 보태자면, 손이 남아나질 않는다. 내 성격상 맨손으로 일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갑을 끼고 하다가도 어느새 벗어서 집어던지고 맨손으로 하고 있으니. 그러다 보니 손톱 밑의 흙 때가 가실 날이 없다. 처음에는 지저분해졌다가도 샤워하면 깨끗해지곤 했었는데, 이제는 칫솔에 비누칠해서 손톱 밑에 문질러도 깨끗하게 가시질 않는다. 



지난번에 달걀 껍데기 깨서 모종 갈라 심는다고 장갑 벗어던지고 해바라기 모종을 쫑쫑이 심고 났더니, 물로 도구 헹구고 난 후에도 손톱 밑에 흙이 가득 차 있어서, 이게 무슨 프렌치 스타일 네일 서비스받은 것도 아니고, 보고 막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누군가 만나러 갈 때에는 민망하기는 하다. 사람이 얼마나 지저분해 보이겠는가! 사실 장갑을 끼고 해도, 장갑이 쉽게 해져서 어느 순간 보면 끼나 마나이다. 돈 아낀다고 맨날 천 원짜리 사서 쓰니 더 그렇겠지. 그래서 어제는 자그마치 $4짜리 장갑을 샀다. 그래 봐야 한국 돈으로 3500원 정도? 그래도 좀 튼실하다. 이건 좀 오래갔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누가 이런 거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다 저 좋아서 하는 것이다. 검은 거름흙에 코코 피트를 섞으면서, 그 흙을 바라보고, "It's so beautiful!"이라고 나도 모르게 외치는데,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껄껄 웃는다. 평생 서울의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내가 이런 소리를 하게 될 날이 올지 알기나 했느냐고 말이다. 나도 신기하다. 


이런 취미를 갖고서 멋도 부리고 싶으면 얼마나 힘들까 싶다. 나처럼 자외선 차단제도 못 바르는 체질은 얼굴도 고스란히 내놓은 채 밭 일을 하고, 손톱 밑은 흙 때가 시커멓게 끼는데, 그래도 희희낙락하며 놀 수 있는 것은, 내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관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시커먼 프렌치 네일(!)을 하고서도 웃을 수 있다. 특히나 이렇게 예쁘게 꽃이 새로 활짝 피는 날에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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