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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l 29. 2021

가든 샐러드의 의미

소박한 샐러드를 럭셔리하게...

한국에 살 때, 레스토랑에 가면 메뉴판에서 "가든 샐러드"라는 것이 종종 보이곤 했다. 닭고기가 들어가면 치킨 샐러드, 소고기가 들어가면 스테이크 샐러드, 베이컨과 달걀이 들어가면 카브 샐러드 등, 뭔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들어가고 야채는 거들 뿐인 그런 샐러드 말고, 완전 채식의 샐러드였다. 보통, 메인 메뉴 옆에서 사이드 디쉬로 먹기 적당한 그런 샐러드를 일컫는 말이다. 당시에는 그냥 별생각 없이, 시퍼런 풀떼기 모아서 만든 저렴한 샐러드의 이름이라고만 생각하고 주문하곤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저녁식사 준비를 하면서, "아, 바로 이게 우리의 가든 샐러드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우리 가든에서 나온 것들로만 준비해서 만든 샐러드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날 저녁은 남편이 미트볼 스파게티를 한다면서 공을 들이고 있었다. 내가 마당에서 일을 마치고 들어오니 남편은 정성스레 빚은 미트볼을 오븐에 굽고, 파스타 소스를 만들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그래서 나는 뭘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간단한 샐러드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우리 집은 점심식사로도 샐러드를 먹지만, 그럴 때에는 한 끼가 될 수 있도록 풍족하게 차리는 편이다. 


전날 굽고 남은 안심 스테이크를 넣어 만든 점심 샐러드는 푸짐하다. 마당의 바질은 입가심으로 딱 좋다.


하지만 이렇게 메인 메뉴가 있는 식사에는 곁들임 수준의 가든 샐러드가 딱인 것이다. 그래서 간략한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서 작은 바구니를 들고 마당으로 다시 나갔다. 상추를 몇 장 따고, 깻잎도 조금, 치커리와 루꼴라를 조금씩 챙기고 났는데 뭔가를 더 얹고 싶었다. 오레가노를 추가할까 하다가, 낮에 보았던 한련화 꽃이 떠올랐다. 그래서 현관 앞으로 가서 꽃을 고르고 잎도 두장 땄다. 한련화는 꽃도 먹을 수 있고, 잎도 먹을 수 있는데, 약간 매콤한 향이 난다. 씨앗은 피클로 만들면 연어 먹을 때 곁들이는 케이퍼를 대용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한때 폭염 위기를 겪었던 한련화가 다시 살아나 열심히 꽃을 피우는 중이다.


그렇게 따고 나서 다시 뒷마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미와 눈이 딱 마주쳤다. 향기롭고 탐스럽게 가득 핀 장미를 보니, 이걸로 색과 향을 더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빨간 꽃잎을 몇 장 땄다. 



꽃은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의외로 식용 가능한 꽃들이 많아서 샐러드에 얹으면 아주 예쁘고 럭셔리해 보인다. 야채 꽃들은 흔히 먹을 수 있는데, 봄철에는 케일 꽃으로 장식을 했고, 그 이후에 열무 꽃, 적갓 꽃 등등을 쉽게 활용하곤 했다. 호박꽃은 큼직해서 샐러드보다는 튀김으로 애용한다. 야채 꽃의 맛은 대부분 그 야채의 맛과 비슷하다. 


부지런히 따서 올라와 나는 샐러드를 만들었다. 집에서 딴 상추 및 잎채소뿐만 아니라 오이도 있었고, 거기에 꽃을 얹어서 색을 마무리하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언제나 맛이 보장되는 남편의 파스타에 딱 어울리는 맛과 색이었다.



색을 중요시하는 남편의 기분을 흡족하게 하는 우리 집 가든 샐러드는 이렇게 식사에 잘 어우러졌다. 파스타 위에 뿌려지는 바질이나 파슬리도 물론 집에서 딴 것을 사용했고, 심지어 마늘도 며칠 전 시험 삼아 몇 개 뽑은 것을 사용해서 풍미가 넘쳤다.



이 날 이후로, 우리는 우리만의 가든 샐러드를 더욱 즐겨 먹게 되었다. 노랑 방울토마토가 익기 시작하니 빨간 토마토도 익을 것이다. 자주색 깻잎도 이제 먹기 시작했고, 노란 주키니 호박도 열심히 영글고 있다. 올여름 내내 오이와 호박은 살 일이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상에 올라오는 색상도 걱정할 일이 없다. 



농사는 쉽지 않다. 농부들은 얼마나 공을 많이 들일지 감히 상상을 할 수 없다. 작은 것에도 영향을 많이 받고, 수확량뿐만 아니라 수확물의 맛과 모양이 앞날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마당이고, 내다 팔만큼 풍족하게 열려야 할 이유도 없다.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으니 알이 작아도 좋다. 깻잎이 새파랄 필요도 없다. 그저 우리가 먹을 정도의 소소한 양을 조금 다양하게 키울 수 있으면 되는 것이고, 자연에서 갓 따온 신선한 풍미를 가지고 있으니 그게 최고의 행복이 될 수 있다.




호박이 영그는 것을 보고 흐뭇해하고, 토마토 밭을 지나갈 때마다 쓰담쓰담해주며 수정을 도와주는 것...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흙을 살피고 필요할 때 물을 넉넉히 주는 것 정도만으로도 가든 샐러드를 얻을 수 있으니 일류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다. 물론 마당에서 지내는 시간은 정말 많다. 손톱 밑은 시커멓고, 얼굴은 검게 그을리는데, 이젠 그런 것들이 신경 쓰이는 나이도 지났으니 더욱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나의 가든 샐러드와 남편의 스테이크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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