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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13. 2021

복숭아 잼 비슷한 뭔가...

설탕을 하나도 넣지 않고도 맛있게 먹기

얼마 전에 딸이랑 통화하면서, 뭔가 빵에 발라 먹을 만한 있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무래도 아침에는 학교 가느라 바쁜데 뭔가 제대로 된 음식을 해 먹기는 힘드니, 간단하게 빵을 먹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무반죽 빵 레시피를 묻길래 가르쳐줬더니 빵을 근사하게 만들어서 사진을 보내왔다. 


그런데 막상 빵을 만들고 나니, 맨 빵을 먹기는 맹숭맹숭하고 뭔가 발라 먹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는 것이었다. 딸은 음식 알러지가 많은 편이어서 버터도 안 되고, 피넛버터도 안 된다. 잼을 발라 먹고 싶지만, 시판 잼은 너무 달아서 먹을 수가 없다. 나도 딸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한다. 단 것을 먹으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느글거리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맛이 없다고 느낀다. 그러다 보니 매식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잼을 만들어 먹으면 어떠냐고 했다. 그냥 과일 하나 골라서 설탕 없이 만들어도 맛있을 거라 했더니 주말에 복숭아를 사 왔다고 연락이 왔다. 잼병이 될만한 것도 샀고, 나름의 준비를 완료하고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약간의 코치를 해줬더니, 살짝 데쳐서 복숭아 껍질을 벗기고 잼을 만들어서 자랑하는 사진이 왔다.



맛이 어떠냐 물었더니 정말 정말 맛있단다. 사실 우리 모녀는 과일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다. 과일도 흔히 많이 달아서 그런데, 이렇게 끓여서 빵에 발라 먹으니 좀 달아도 괜찮다며, 아침마다 간편하고 즐겁다고 했다.


딸이 정말 정말 맛있다고 했으니 어쩐지 나도 먹고 싶어 졌다. 마침 어제 마트에 갔더니 로컬 복숭아가 세일 중이었다. 수입 복숭아의 반값이었으니 나도 선뜻 손이 갔다. 물론 그냥 잘라먹어도 맛있는 것이 복숭아인데, 잼을 만들면 얼마나 맛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걸로 포스팅을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과정 샷 같은 것도 안 찍고 그냥 대충 만들었다.


데쳐서 껍질을 깔 수 있겠지만, 그것도 귀찮아서, 그냥 4등분으로 자른 다음에 과도로 껍질을 깠다. 잘 익어서 쉽게 까졌다. 그리고 대략 잘게 잘라서 냄비에 던져 넣었다. 포스팅 계획이 없이 만들다 보니 과정샷이 하나도 없지만 복숭아 껍질 까서 깍둑썰기 하는 것 같은 사진은 없어도 무방하리라 주장하련다.


복숭아 한 예닐곱 개를 넣고는 불에 얹어서 뭉근하게 끓었다. 부엌에서 할 일이 좀 있어서 이것저것 하다가 한 번씩 저어줬다. 고기도 좀 재어두고, 요구르트도 걸러주고, 워터 케피어 음료(https://brunch.co.kr/@lachouette/215)도 물 갈아서 채워 놓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처음에는 물이 조금씩 나오다가 점차 물이 많아졌다. 이렇게 끓일 때에는 처음에는 그냥 덩어리 있는 것이 다루기가 만만하다. 어느 정도 충분히 익은 것 같길래, 감자 으깨는 도구로 꾹꾹 눌러줬더니 즙과 섞이면서 조금 그럴듯해졌다. 덩어리가 좀 씹히는 것이 좋다면 그냥 그대로 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더 곱게 되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더 끓인 다음에 도깨비방망이를 넣고 좀 으깨줬다. 그러자 모양새가 호박죽 같아졌다. 얼마 더 안 끓여도 될 것 같길래 레몬즙을 두 큰술을 넣어줬다. 복숭아의 펙틴에 레몬즙이 더해지면 응고가 더 잘 되면서 잼 같이 될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넣어주는 게 좋다. 그리고 소금도 조금 뿌려줬다. 


딱 호박죽 비주얼!


이제 죽처럼 펄떡거린다. 불을 줄이고 뚜껑을 덮은 후에 유리병을 준비했다. 저녁 식사 이후여서 어차피 설거지 기계를 돌리는 참이길래 병을 몇 개 챙겨다가 함께 넣고 돌렸더니, 완성될 때 식기세척기도 끝났다. 뜨거운 물 소독을 간단히 해결한 셈이다.


행주 깔고 뜨거운 병 올리고, 캐닝이나 피클 만들 때처럼 잼을 담았다. 진공 포장하더라도 설탕도 넣지 않았으니 냉장 보관할 것이기 때문에 다시 물에 넣어서 병을 끓이지는 않았다.



남편이 맛을 궁금해하길래, 병에 담고 조금 남은 것을 떠서 입에 넣어줬더니 새콤하다고 부르르 떤다! 하하! 먹어보니 정말 맛있다. 딱 새콤하고, 끝에 살짝 단 맛이 감돈다. 남편은 디저트에 얹어 먹으면 맛있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거, 누구더러 잼이라고는 하지 마~


하하! 하나도 안 달아서 그렇긴 하다! 그럼 뭐라 할까? 하고 물었더니, peach preserve라고 대답했다. 그래, 잼이 아니고, 복숭아 프리저브 인걸로! 어쩐지 더 근사하게 들린다. 이제 나도 스콘 먹을 때 얹어 먹을 잼이 있으니 좋다! 그동안 왜 이렇게 만들 생각을 못 했었나 모르겠다. 역시 자식이 필요하다니 아이디어도 나오나 보다. 딸 덕분에 완성! 나처럼 단거 싫어한다면 만들어보시라 추천한다. 단 과일로 하면 충분히 달다. 


토스트한 빵에 얹으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리고 달지 않아서 풍미는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 잼은 꼭 과일:설탕=1:1으로 해야한다는 공식에서 벗어나면 훨씬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다. 두고두고 실온에 보관하기를 포기하고, 그때그때 신선하게 만들어서 먹겠다 생각하면 말이다. 단맛에 길들면 음식 자체의 풍미를 느끼는 것이 둔해진다. 처음부터 무설탕 잼을 만들지 않더라도, 설탕의 양을 과감히 줄여서 점차 안 달게 먹기 시작하면, 저절로 살이 빠지고 각종 염증이 없어진다. 


초점 안 맞은 사진 한 장뿐인 스웨디시 크림


병에 담고 남은 것을 스웨디시 크림(https://brunch.co.kr/@lachouette/358) 위에 얹었다가 먹었더니 아주 맛있었다. 다만 밤에 바깥에 앉아 먹으면서 사진을 찍었더니 초점도 안 맞은 애매한 먹다 만 사진 한 장뿐이어서...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을 뿐. 마지막 하나 남은 크림이어서 하나 가지고 남편과 나눠 먹었는데, 다음번에 만들면 이렇게 또 한참 먹을 듯하다. 


나중에 다 먹고 나면 사과나 서양배 같은 다른 과일로도 해봐야겠다.




복숭아 프리저브

1리터 분량


재료:

복숭아 6~7개

레몬즙 2 큰술

소금 한 꼬집


만들기:

1. 복숭아를 껍질 벗겨 적당히 깍둑썰기 한다. 

2. 냄비에 담고 중강 불로 끓이기 시작하여, 끓고 나면 중불로 줄여서 계속 끓인다. 

    한 5~10분 간격으로 한 번씩 저어준다.

3. 30분쯤 끓여서 투명해지면, 레몬즙을 넣어주고, 소금도 이때 넣는다.

4. 이제 도깨비방망이로 갈아준다. 

5. 잼이 호박죽처럼 펄떡거리면 불을 약불로 줄이고 수분을 좀 더 날려서 원하는 농도로 만들어준다.

    너무 잼 형태가 잡힐 필요는 없다. 발라먹기에 살짝 묽어도 식고 나면 괜찮다.

6. 완성되면 열탕 소독한 유리 용기에 담고 밀봉하여 냉장 보관하고 한두 달 안에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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