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물려 엄마의 사랑을 담아서...
요새는 바깥나들이나 가족 소풍을 가도 도시락을 싸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시판 도시락이 이미 훌륭하게 나오기도 하고, 길에 나서서 쉽게 체인점에서 김밥을 사 가지고 갈 수도 있다. 그리고, 놀러 가는 지역에는 어디든 맛집이 있으니, 그저 돈만 들고나가면 되는 간편한 세상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소풍이나 나들이를 생각하면 유부초밥을 떠올린다.
최근에는 소풍 갈 일이 없지만, 작년에 딸아이가 봄방학 때 온다고 해서, 비행기에서 배 고팠을 아이를 위해서 유부초밥을 싸서 공항으로 들고나갔다. 차 안에서 뭐 먹는 거 싫어하는 아이지만, 반색을 하며 통 하나를 다 비웠다. 유부초밥 사랑은 엄마 닮아서 어쩔 수 없는 듯.
어릴 때 학교 소풍을 가면, 다른 아이들은 다 김밥을 싸 오는데 우리 집만 유부초밥을 가져갔다. 사실 당시에는 유부초밥이 그리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그게 뭔지도 몰랐지만, 우리는 이렇게 특이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사실이 나름 뿌듯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요리에 관심이 있어서 티브이 요리 프로그램을 섭렵하고 계셨던 덕분이리라.
소풍 간다고 들떠서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면, 어머니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재료 다 준비해서 어느새 유부초밥을 싸고 계셨다. 그러면 우리는 옷 갈아입고 갈 준비 하면서 왔다 갔다 계속 주워 먹고... 그렇게 아침도 유부초밥, 도시락도 유부초밥... 하루 종일 먹어도 물리지 않았다.
그렇게 신나서 들뜬 마음으로 먹었던 유부초밥을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식당에서 사 먹으면서 경악했다. 이건 왠 달달한 껍질에 맨밥, 깨만 몇 개? 정체불명의 불량식품이라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해 주시던 유부초밥은 영양이 하나 가득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나중에 아기 낳아도 저렇게 고생하며 준비 못할 거야
어릴 때 엄마를 보면서, 늘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덧 엄마가 된 나도 역시 자식을 위해서라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고, 아이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이 데리고 밴쿠버에 와서 둘이 지내던 시절, 도시락으로 늘 꼬마 유부초밥을 쌌었다. 학교에서 베어 먹다가 허물어지면 난감하니까 한 입 사이즈로 도르르 말아서 먹게 해 주던 기억이 있다. 그게 벌써 9년 전... 그래서 이젠 나에게도 딸에게도 유부초밥은 추억의 음식이다.
우리 딸도 말한다. "밖에서 사 먹는 유부초밥은 정말 이상해요!" 이것도 대물림 것 같다. 유난히 엄마표 음식을 좋아하는 아이지만, 유부초밥은 내가 생각해도 집밥과 외식은 천지 차이다. 어쩌면 우리 집 유부초밥은 정통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맛있다.
씹는 순간 여러 가지 풍미가 넘치는 완전식의 느낌이다. 꼬들하게 씹히는 표고버섯과 고소한 고기, 촉촉한 양파... 우엉의 독특한 향에 멸치가루까지 더해져서 하나의 완전체가 되는 기분이다. 그러면 소풍날 아침 들떠서 준비하며 들락날락 집어먹던 유부초밥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분주한 엄마의 모습도...
그럼 별로 어렵지도 않은 유부초밥 만들기를 구경해보자.
물에 불린 표고버섯과 조린 우엉은 꼭 들어가야 맛이 난다. 우엉은 미리 간장 넣고 졸여서 냉동해두면 편하다. 모든 재료는 잘게 썰어야 먹기 편하다.
사진에는 없지만, 멸치의 내장을 제거하고 냄비에서 따로 노릇노릇하게 볶아준다. 만일 시간이 없다면, 접시에 넓게 편 후에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돌려줘도 된다. 그렇게 잠시 돌린 후 꺼내놓으면 수분이 날아가서 곧 바삭해진다. 그러면 분쇄기에 넣고 갈아서 준비해둔다.
소고기는 다진 고기를 사용하는 것이 간편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소고기를 잘게 썰어서 사용해도 된다. 먼저 냄비에 불을 켜고 양파와 소고기를 볶아준다.
고기가 익기 시작하면, 나머지 재료들을 다 넣고 볶아준다. 대충 볶아지면 물 약간 넣고, 간장, 청주 넣고 살짝 졸여준다. 멸치가 들어갔기 때문에 중간중간 뚜껑을 열어서 비린내를 날려주면 좋다. 후추도 좀 뿌려줄 것!
그리고 싱겁지 않게 간을 해준다. 조선간장으로 간을 하면 좋은데, 없다면 진간장을 한 숟가락 정도 넣어주고, 모자라는 간은 소금으로 맞춰준다. 간이 싱거우면 맛이 없다.
원래 이 대목에서 유부도 같이 넣고 졸여주면 더욱 맛있다. 특히나 예전에는 지금 같은 조미 유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가정식 조미를 해주면 맛이 훨씬 고급스럽고 좋다.
밥은 다시마를 넣고, 평소보다 물을 살짝 적게 잡아서 약간 고슬고슬하게 지어준다. 완성된 밥에 소금 약간과 식초, 참기름, 깨를 넣어서 한번 비비고, 볶은 재료를 넣어서 다시 비벼주면 준비 완료! 이 대목에서 맛을 보고 간이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완성된 후에 또 간장을 찍어 먹어야 한다.
조미 유부를 사용한다면 국물을 꼭 짜내고, 뜨거운 물로 한번 데쳐주면 더욱 좋다. 각종 첨가물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속을 채워 넣을 때가 가장 보람차다. 이렇게 완성하면서 옆구리 터지는 것을 집어먹는 재미도 쏠쏠하니까.
비율상 양념이 남거나 유부가 남으면 이렇게 보관했다가 나중에 살짝 볶아서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밥만 새로 해서 얹으면 간편하게 도시락 하나 해결!
유부가 모자라면 이렇게 꼬마 주먹밥을 만들어도 좋다.
그냥 먹어도 되지만, 김을 구워서 부숴서 이렇게 김가루 굴린 밥을 만들어도 좋고,
아니면 소금 살짝 푼 달걀 물을 풀어서 프라이팬에 굴려줘도 된다.
프라이팬에 달걀을 숟가락으로 길쭉하게 놓아준 다음,
다 익기 전에, 달걀에 살짝 담갔던 밥을 얹은 후 데구루루 굴려주면...
요런 귀요미가 완성!
딸아이 온 다음 날, 그래서 이렇게 냉파로 주먹밥 파티했다!
재료:
유부 : 끓는 물로 살짝 데쳐서 조미료 맛을 제거하도록 꼭 짠다.
밥 : 다시마 한 장 얹어서 평소보다 살짝 고슬고슬하게 짓는다
우엉 : 보통 크게 파니까, 한번 사면 채 썰어서 간장 양념해서 졸여서 냉동해두면, 필요할 때 꺼내먹기 좋음),
당근, 양파 : 잘게 다짐.
표고버섯: 불려서 잘게 다짐. (불린 기둥은 다져서 냉동해두었다가 찌개 끓일 때 넣으면 맛있음)
멸치 : 내장 제거, 전자레인지에 1분 돌린 후, 칼로 다지거나, 분쇄기로 윙 돌려줌 (축축하면 분쇄되지 않음)
소고기 다짐육
청주 약간, 후추, 간장, 소금, 식초, 깨, 참기름
만들기:
1) 먼저 냄비에 양파와 고기를 넣고 볶다가, 나머지 재료들을 넣고 볶는다.
2) 색이 살짝 변하면, 나머지 재료들을 넣고 볶아준다.
3) 대충 볶아지면 물 약간 넣고, 후추 뿌리고, 간장, 청주 넣고 살짝 졸여준다.
4) 그리고 싱겁지 않게 간을 해준다.
간장을 넣어도 간이 부족할 수 있는데, 부족하면 맛이 없으니 소금 간 추가한다.
5) 밥은 다시마 띄워서 약간 고슬고슬하게 지어준다.
소금 약간과 식초, 참기름, 깨를 넣어서 한번 비비고, 볶은 재료를 넣어서 다시 비벼준다.
이 대목에서 맨 입에 먹어도 간이 맞아야 한다.
6) 이제 속을 채워 넣는다.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