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를 숨 쉬게 하라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지 어느덧 햇수로 8년째 들어간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맨 얼굴로 산다는 뜻이다. 화장은 물론 하지 않고, 흔한 로션이나 아이크림도 바르지 않고, 여름에도 선크림조차 바르지 않는다.
물론 나이가 있으니 주름은 당연히 있지만,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생얼로 어디든 다닐 수 있고, 민망하지만 피부 좋다는 말을 종종 듣는 것을 볼 때, 나의 이 맨얼굴 프로젝트는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공기는 희한하게 건조한 밴쿠버 지역에 살고 있다. 덕분에 집안에서 뭐 말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주변에 들어보면 건조한 피부 때문에 괴롭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고는 생얼인 나에게 무슨 화장품을 쓰느냐고 묻는 일이 자주 생긴다.
물론 나도 맨 얼굴로 슈퍼마켓 가기도 꺼려하는 시절도 있었다. 피부는 건조해서 20대부터 풀코스를 모두 발라야 했고, 간혹 한 가지라도 떨어져서 건너뛰면 얼굴이 심하게 당겨서 피곤을 느낄 만큼 건조한 피부였다.
그러나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트러블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참으로 깨끗했던 얼굴 피부가 오히려 대학교 가면서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교복세대였던 우리가 화장품을 처음 접한 것은 고3 학력고사(수능) 이후였다. 여러 화장품 회사에서 앞다투어 학교를 방문하여 홍보하였기 때문이다. 예쁜 언니들이 와서 시범을 보이면 촌스럽던 우리 얼굴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소녀에서 여자가 되는 신세계를 경험하기 위하여 바르기 시작한 스킨, 밀크로션, 아스트린젠트, 아이크림, 영양크림, 이렇게 풀코스로 바르던 것들이 내 트러블의 주범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향기롭고 예쁜 병 안에, 나를 힘들게 할 것들이 들어있을 줄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내 피부 트러블은 대학 졸업 후에 더욱 심해져서 결국은 피부과를 찾았다. 홍대 앞의 유명한 피부과에 한 달 다니니 신기하게도 완전히 깨끗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 그 피부과 약을 끊을 수 없었고, 결국은 그것을 계속 바르고 거기서 관리를 해도 피부는 점점 더 뒤집어져만 갔다. 모공이 넓어지는 약을 바르게 하고 억지로 계속 여드름을 짜내면서 피부는 얇아지고 예민해져 갔던 것이다.
거울을 보면 눈물이 났다. 보기 흉해서 뿐만 아니라, 더덕더덕 난 여드름이 아프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내 얼굴을 딱하게 여긴 서점 언니가 소개를 해줘서 희한한 피부과를 또 새로이 방문하게 되었다. 동대문 뒷골목 어느 후미진 곳에 위치한 작은 피부과의원의 할아버지 선생님은 다행히 여드름을 억지로 짜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돋보기로 얼굴을 들여다본 후, 모공을 줄여야 한다며 별말씀 없이 무슨 약을 주셨는데, 정말 작은 양을 손바닥에 덜어 바르면서 피부는 깨끗해져 갔다. 그 약을 참 오래 발랐던 것 같다. 그냥 스킨처럼 사용했다.
나중에는 그 원장님이 돌아가시고, 그곳은 화장품 회사로 바뀌었다. 지금 찾아보니 우성 코스메틱이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스킨이 되어버린 그때의 그 약을 판매하고 있고, 여전히 많은 여드름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내 피부에서 고질적 여드름은 사라졌지만, 내 피부는 갈수록 예민해졌다. 화장품 회사들은 같은 제품을 꾸준히 출시하지 않는다. 나에게 맞는 것을 사용하다 보면 어느샌가 절판이 되고,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새로운 시리즈를 선택해야 했는데, 그것이 정말 큰 모험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레몬 스킨이라든가 하는 것도 만들어서 바르고, 그걸로 잡지에도 나오기도 했다. 자연 화장품 사용이 주목을 받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 피부는 하염없이 예민해져 갔다. 자외선 차단제는 물론 모두 트러블이 나서 포기를 했지만, 그래도 나는 각종 화장품 회사의 순하디 순하다는 화장품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다. 피부는 극건성이다 보니 순한 것들은 보습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고 나는 진퇴양난이었다.
그러다가 완전히 지친 어느 날 완전히 새로운 책을 발견했다. "화장품이 피부를 망친다"라는 책이었다. (지금 찾아보니 절판되었지만, 도서관에서는 있을 듯)
처음에는 소개를 받고도 바쁘다고 안 읽고 미루다가, 어느 날 읽어보는 순간, 아 정말 그렇겠구나!! 하는 느낌이 확 왔다.
화장품이 피부를 좋게 해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피부과 의사였는데, 환자들을 위한 화장품을 개발하다가 깨달음이 왔다고 했다. 얼굴에 밀어 넣는 그 좋은 성분들은 일시적으로 들어갈 뿐, 진짜로 흡수되어 피부의 일부가 될 수 없으며, 그런 것들로 인해서 세포들이 오히려 힘들어지고 피부 조직이 망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특히나 마사지를 하면서 많이 문질러주면 피부 결이 어긋나서 더 망가진다는 이야기도 공감이 갔다. 게다가 계면활성제가 들어가지 않은 화장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문구를 보며, 그런 화학품을 얼굴에 넣고 싶지 않던 나의 마음에 부채질을 한 셈이었다.
특히 충격적인 사실은, 현미경으로 가까이 들여다보면, 마사지나 관리를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피부의 조직이 뭉개져있었다며 사진도 들어있었다. 건강한 피부는 매끄러운 물광 피부가 아니라, 보송보송한 아기 피부이며, 만져보면 의외로 거친 느낌이 난다고 했다.
그 이유라면 각질이 건강하게 붙어있어야, 그 자체로 훌륭한 보습막을 해줘서 진피를 촉촉하게 유지하게 해 주기 때문에 잔주름도 덜 생길 수밖에 없고, 그래서 예쁜 피부로 보인다는 것이다. 매끄러운 피부처럼 보이기 위해서 각질을 열심히 제거한다면 피부는 건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굉장히 그럴듯하게 들렸기 때문에 고민을 접고 실천을 해보기로 했다. 그때가 2014년 이 시작되는 참이었다. 새해 결심처럼 나는 1월 초부터 화장품을 일체 끊었다. 정말 그냥 딱 끊었다.
세수는 물 세안을 했고, 얼굴에는 처음에 바셀린을 아주 조금 손에 묻혀서 손을 비빈 다음에 얼굴에 살짝 눌러주는 정도만 했다. 물론 피부는 극심하게 당겼지만, 어느 정도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믿어 보기로 하였다. 신기하게도 일주일 정도 지나자 당김이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하얀 피지 같은 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게 일반적인 수순이라고 읽었기 때문에 그냥 두고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피지는 저절로 떨어져서 없어졌다!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대략 2주일에서 한 달 사이었던 것 같다.
물론 중간에 갈등도 많았다. 일시적으로 주름이 느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화장을 안 하기 시작하자 게으름이 발동해서 너무 편해졌기 때문에 다시 뭔가 바르고, 클렌징을 하는 생활로 돌아가기 싫어서 그냥 버텼다.
처음에는 예민하게 거울을 들여다보고 변화를 찾아보곤 했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잊어버리고 살았더니 그냥 아주 편안한 피부가 되었다.
저자는 바셀린을 추천했지만, 사실 나는 그것도 트러블이 났다. 그가 바셀린을 추천한 이유는, 그게 좋은 기름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산화가 덜 되는 기름이어서라고 했다. 그냥 피부에 살짝 막을 얹어서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주는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 보니 다른 고급 오일들은 흔히 금방 산화가 되어 쩐내가 나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시어버터(shea butter)였다. 비정제 시어버터는 의외로 산화가 쉽게 되지 않기 때문에 쓰는데 무리가 없었고 나한테 딱 맞았다.
당시에는 과연 이 생활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8년 차가 되었다니 나도 놀랍다. 한 일 년쯤 지났을 때에는 더 이상 피부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고, 완전히 적응을 했다.
세안은 하루 두세 번, 물로만 한다. 화장하는 사람들은 저녁에 자기 전에 "씻기 싫다!" 이런 생각 많이 하는데, 이제는 그냥 화장실 간 김에 씻으면 순식간에 끝나기 때문에 귀찮음을 느낄 일이 없다.
그리고 나갈 때 화장 전혀 안 하니, 화장이 먹네 안 먹네 할 일이 없다. 분위기를 약간 내려면 눈가에 섀도 약간, 입술에 립스틱 약간 발라주는 것이 전부인데, 다들 분 바른 줄 안다. 트러블과는 완전히 작별했다. 가장 좋은 것은 코 옆 피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었다. 코팩이라든가, 코 피지 제거는 이제 생각할 필요도 없다.
더 효과를 본 것은 딸이었다. 사춘기 지나면서 간단한 로션을 사줘서 바르고 있었고, 순하다는 크림 같은 것들을 주곤 했었는데, 어느 날부터 여드름이 심각해졌다. 한창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때여서 그러려니 했지만, 이상하게도 안에 검은색이 박힌 여드름이 잔뜩 돋아나서는 없어지지도 않고 자리를 잡는 중이었다.
당시에 그게 화장품 때문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진정효과가 있다는 크림들을 구입해서 발라줬다. 천연 화장품이나 천연 오일들도 발라보며 안타까워하던 중, 나와 함께 피부 단식을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어느 순간 그 검정 트러블들이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20대 중반이지만, 딸아이 역시 아주 특별한 날에 눈 화장만 살짝 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우리 모녀는 여행할 때 화장품 보따리가 없어서 짐가방이 간단하다. 그리고 준비할 때 샘플 병에 담고 어쩌고 할 일이 없어서 엄청나게 편하다.
책의 저자는 비누를 가끔 사용하는 것 같던데, 나는 비누도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바디샴푸를 끊은지는 20년이 넘었다. 아무리 바디로션을 발라도 계속 건조해지고 각질이 일어나는 피부를 감당하지 못해서 끊었는데, 그 덕에 내 피부는 훨씬 더 일찍 자유를 찾았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부드럽다. 하루에 한두 번 물 샤워를 간단히 하는데, 겨울에도 허옇게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비누를 사용하는 것은 외출 후 들어와서 손을 씻을 때 뿐이다.
아침에 나갈 때의 얼굴이나 저녁때 들어올 때의 얼굴이나 똑같다. 무너진 화장발 같은 것도 전혀 없다. 악건성에 시달리던 시절은 사라졌고, 무슨 클렌징 제품을 써야 할지 고민하던 시절도 끝났다. 여행할 때에도 화장품을 작은 병에 옮겨 담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고, 가방도 가볍다.
나는 이렇게 화장품으로부터 독립을 하였고, 더이상 그립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자연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된 것이다. 물론 나의 게으름과 딱 부합된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