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번거로움을 즐기는 방법
한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장 먼저 체크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화분이었다. 베란다에서 키우던 깻잎과 고추를 집 현관 앞으로 옮겨놓았고, 이웃집 여인이 자기 마당 물 줄 때 같이 주기로 했었는데, 긴 여름을 잘 넘겼는지, 혹시나 깻잎이 꽃을 피운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들이 궁금했었다.
물을 진짜 잘 먹는 깻잎은 더위에 다소 지친 듯했으나 다시 물을 주니 곧 되살아났고, 늘 푸르던 오이고추는 일부가 빨갛게 물이 들어있었다. 이 귀여운 친구들은 지난봄에 한인마트에서 모종을 사다가 키운 것들이었는데, 별로 애쓰지 않았는데도 잘 자라고 늘 식재료들을 공급해주어서 매일 베란다 문을 여는 즐거움을 주는 녀석들이었다.
처음 사 와서 모종을 옮겨 심을 때는 다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깻잎은 전에 키워본 적이 있었지만 고추는 처음이었는데 병충해에 약해서 꼭 농약을 쳐야 한다는 소리를 예전에 많이 들었던지라 더 걱정을 했던 것 같다.
그랬던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고추는 어느새 꽃이 피더니 아주 작게 열매가 보이기 시작하고, 일단 자라기 시작하니 따 먹기 무섭게 큰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따자마자 식탁에 오르니 이 보다 신선할 수가 없는 식재료가 되었다.
깻잎은 날것으로도 쉽게 따 먹고, 너무 무성하다 싶으면 깻잎장아찌를 즉석에서 할 수 있으니 더욱 좋았다. 사실 캐나다에서는 깻잎이 참 비싸다. 한 봉에 3천 원 이상씩 하는 일이 허다한데, 사다가 안 먹어 상하면 진짜 속상하다. 그런데 이젠 상할 일 없이 딱 필요한 만큼 언제든지 공급이 가능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식재료에 엄청 신경을 쓰는 편이다. 건강한 재료를 사용해서 음식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에 요리의 포인트를 두고 있다는 점이 확실하게 통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싼 제품들을 덥석 사는 스타일은 또 전혀 아니다. 따라서 좋은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고자 기꺼이 발품을 파는 편이고, 외식은 정말 몇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수준이다. 밖에서 사 먹으면 비싸기만 하고, 우리가 집에서 해 먹으면 저렴하게 더 좋은 재료로 더욱 우리 입맛에 맞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맛집 탐방은 완전히 남의 집 얘기인데, 이번에 여행 가서 정말 원 없이 외식했구나! 하하!
식재료 구입은 슈퍼마켓의 할인기간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크레이그 리스트를 검색해서 농장에서 직접 식재료 사는 것을 좋아한다. 지난봄에는 유기농 블루베리를 검색해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려고 찾아갔었는데, 가게에만 공급하는 농장에서 철문을 열고 진짜 맛있는 블루베리를 구입을 해오기도 했다. 먹을 만큼 먹고 충분히 냉동해둬서 완전 든든하다.
이번에는 마늘을 구입하고자 크레이그 리스트 검색을 했더니, 마침 우리가 종종 다니던 농장에서 유기농 마늘을 가지고 있다고 올라와있었다. 예쁘게 땋아서 매달아놓은 사진을 올려놓았길래, 이렇게 보관하고 두고두고 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주말을 이용해서 다녀왔다.
쥔장은 우리를 보더니 몹시 반기며 이런저런 농장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올해 사과 농사는 망했다고 해서 보니, 탐스럽게 열린 사과에 구멍이 여기저기 보였다. 처음에 괜찮았던 사과였지만, 한번 이렇게 벌레들에게 들키고 나면 거기에 자리를 잡아서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매년 이렇게 농사가 망가진다고 설명했다. 듣기만 해도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쨌든 농약은 치지 않을 것이고 뭔가 해결 방법을 찾아낼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비록 벌레를 먹긴 했지만 해로운 벌레는 아니어서 이걸로 사과주를 담그거나 식초를 만들거나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면서, 자기도 이미 애플 사이다 비니거를 만들었다고 했다.
사실 우리 남편은 사과로 애플 사이다를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거의 매년 만들곤 했다. 최근에는 2년 전에 만들어서 한참을 먹었고 이제 다 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이번에 프랑스 노르망디 갔다가 그곳의 애플 사이다 맛을 보고 난 이후여서 더욱 애플 사이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더니 이 쥔장이, 그러면 아직도 사과가 이렇게 많으니 언제 시간 날 때 박스를 들고 와서 직접 따서 필요한 만큼 넉넉히 담아가라고 했다. 어차피 아무도 안 가져가면 그냥 다 떨어져 거름이 될 테니, 누군가가 유용하게 쓴다면 마음이 아프지 않을 거 같다고 말했다.
아직은 살짝 덜 익었으니 한 1~2주쯤 후에 다시 오면 따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야 좋지! 그래서 다음 주에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나는 어떻게 만드는지 전혀 모르지만 남편은 전문가 부럽지 않으니까! 나는 이왕이면 애플 사이다 비니거도 만들어서 식초 사 먹지 말고 이걸로 먹자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신이 난 마누라, 다음 주에는 사과 U-pick 가는구나! 게다가 농약 전혀 치지 않은 유기농이니 완전 좋다.
수다는 거기까지 떨고 이제 구매를 해야지. 마늘은 저장마늘 종류라고 해서 땋아놓은 것 하나랑 추가로 땋지 않은 것을 함께 구입했다. 아무래도 예쁘게 땋으려면 손이 많이 가니까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래 먹을 것은 땋은 것으로 하고, 금방 먹을 것은 그대로 구입했다. 우리는 김장을 하거나 할 거는 아니니까 한국에서만큼 마늘이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것만 가지고도 남편은 진짜 마늘 많이 산다고 막 웃었다.
그래서 마늘과 잎이 달린 비트, 케일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마늘을 걸어놓으니 든든하고, 비트 잎은 바로 따서 그날 저녁 스테이크에 곁들여 볶아 먹었다.
케일은 아직 사용 전인데, 케일칩 만들어 먹어야겠다. 내가 알고 있던 두 가지 케일과 사뭇 다른 모양이었는데, 이걸로 칩 만들면 맛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