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으면 서러운 이유는 건강하기 힘들기 때문인 듯
한국에 가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를 최근에 마지막으로 직접 만난 것이 3년도 더 전이었다.
코로나가 만들어줬던 이산가족... 그리고, 그 사이에 많이 늙어버린 세상... 어머니의 병세가 나타나고 그것이 진행되어 가는 동안, 나는 말로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머리로 상상만 했었다. 그래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아보다. 거의 매일 통화를 했었기에 방심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다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미국에 살면서 올해 한국을 방문했던 올케가 그랬다.
"형님, 어머니 뵈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자기도 그랬다고... 가슴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그날 밤 잠이 안 오더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그러고는 자기가 처음 왔을 때 보다, 떠날 때 더 심해지셨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말을 듣고도, 어머니를 실제로 만나니 또 다른 충격이었다.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했다고 생각했건만!
집 앞에 도착하니 대문이 빠꼼히 열려있다. 몹시 기다리고 계시던 어머니가 인기척을 듣고 부엌 쪽에서 걸어 나오시는데,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야말로 심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에너지가 넘치던 어머니. 큰 딸이 왔다며 달려 나오실 그 어머니가 한쪽으로 기운 어깨를 하고 아주 짧은 보폭으로 주춤주춤 걸어 나오셨다. 확 줄어버린 키에, 기운 없는 동작에, 그러나 반가운 미소를 머금고 다가오시는 어머니를 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그대로 어머니를 끌어안고 숨 죽여 흐느꼈다.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파킨슨 진단을 받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손떨림 이외에는 모든 정상생활이 가능하셨는데, 지금은 도대체 어떻게 그 상황에서 생활을 하실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우리가 오기 전에 산책을 하고 오시겠다고 했었는데, 그 걸음으로 한 시간을 산책하신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머니를 끌어안고 말했다.
"멋지세요. 정말 용감하고 씩씩하세요."
그 몸으로도 이겨내려고 한 시간씩 매일 산책을 하신다니 정말 놀라웠다. 어머니는 기운 없는 모습으로 앉아서 우리를 보며 빙그레 웃으셨다.
"김밥을 사 왔는데, 먹을래?"
어머니는 멋쩍게 말씀하셨다. 맛있는 것을 잔뜩 차려줄 수 없어서 안타까우신 어머니는, 일단 이거 먹고, 저녁은 맛있는 거 사주시겠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다.
잠시 후, 동생이 와서 함께 나가서 식사를 했다. 동생은 가까운 곳에 살면서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와서 어머니를 보살핀다. 집 안에 cctv도 설치해두고 밤중에 체크하기도 한다. 일 하랴, 엄마 보살피랴 너무나 바쁜 동생은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모자란다.
식당에서 음식을 드실 때, 동생이 옆에 붙어 앉아서 어머니의 수저에 밥을 떠 드리고 반찬을 올려드린다. 어머니는 왼손으로 간신히 수저를 들어 식사를 하신다. 첫 식사 때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부부는 안타깝고, 미안하고, 고맙고, 속상해서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평소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음~"하며 음미하고 즐기던 남편도 이날은 너무나 조용하게 식사를 마쳤다.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니, 들어서자마자 남편이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줬다. 자기 마음도 그렇게 무거웠으니 내 마음이 어땠을지 누구보다 잘 알았으리라.
우리 어머니는 나이 먹어도 건강하실 줄 알았다. 팔십 정도에는 펄펄 날아다니실 줄 알았는데 … 사실 나보다 어머니 스스로가 더 안 믿어지실 것 같다.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조절이 불가능한 몸. 반은 남의 몸인 것 같은 내 몸은 수시로 야속할 것이다.
나이 들어서 서러운 것은, 주름이 생겨서도 아니고, 머리가 세어서도 아니다. 평소 자신이 취약한 부분으로 노화가 오고 질병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이 먹어서 알게 되었다. 어머니도 어머니가 이렇게 갑자기 거동이 불편해지시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셨을 것이다. 우리는 사실 아무도 이런 것들에 대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저 눈앞에 급한 불만 끄느라 늘 분주할 뿐.
짧은 기간 한국을 방문했고,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급히 볼일을 보고 돌아와야 했던 상황에서 나는 죄책감이 너무 컸다. 떠나는 발걸음이 너무나 아팠다. 이 무거운 상황을 고스란히 동생의 어깨 위에 얹혀둔 채 떠나는 나는, 과연 자식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을까?
직장 다니면서 어머니를 챙기는 동생의 상황은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챙겨도 낮에 갑작스러운 사고가 생기는 일은 정말 다반사이고, 그럴 때면 갤러리 문을 닫고 달려올 수밖에 없다.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도 급히 달려간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럴 때, 누가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돌봐드리면 좋겠는데, 작년 요양등급 심사에서도 야멸차게 떨어져서 더욱 힘들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신청하여, 내가 떠난 다음 날 심사가 잡힌 상황이었다.
정말 혼자서는 밥 숟가락도 들지 못한다고 연기를 해야만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진짜 아픈 노인들은 그런 연기를 하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떠난 빈자리가 너무 아프신 어머니는 심사를 받던 날, 제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하셨고, 연기가 전혀 필요하지 않으셨다고 동생이 전했다.
아들도 왔다 갔고, 딸도 왔다 갔고, 이제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한탄하시며 우울에 빠지신 어머니 때문에 동생도 너무나 우울해졌다.
떠나는 날 내게 말한 동생의 슬픈 목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
"나아지실 거라는 희망이 없다는 게 너무 힘들어."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길 때면, 희망을 품고 노력을 하는데, 그런 꿈을 꿀 기회를 빼앗긴 기분이다. 어머니가 나아지시리라는 희망은 정말 부질없는 것인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또다시 매일 전화를 드리는 것뿐이라는 것 역시 참으로 무력하다.
노화로 찾아오는 파킨슨, 치매, 알츠하이머 등등의 병은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노화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농사를 지을 때 겨울을 준비하듯, 우리의 노년 건강도 분명 특별한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