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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15. 2023

이번엔 술이 조금 들어간 초콜릿

발렌타인데이를 챙기는 노인들 (닭살 주의)

남편은 평생 밸런타인데이를 챙겨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물론, 애들 어릴 때 학교에 사탕 챙겨서 보내는 거 같은 거 빼고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 커가면서 그냥 재미 삼아 초콜릿 사서 주변에 돌리는 정도...


그러다가 늘그막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낯간지러운 밸런타인 놀이를 한다. 꼭 밸런타인만 챙기는 것은 아니고, 갖가지 잡다한 것들을 다 챙긴다. 기본 크리스마스는 물론이고, 송년의 밤도, 설날도, 대보름도, 캐나다에 처음 온 날이라든가, 만난 지 천일... 그런 유치한 것도 다 한다.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그날을 핑계로 노는 것이다.


나는 매년 초콜릿을 만들어서 주는데, 작년에 술 넣은 초콜릿이 내 맘 같지 않아서 이번엔 좀 다른 식으로 해보기로 했다. 술이 들어간 완전 몰랑몰랑 부드러운 파베 초콜릿을 만들어서 그 위에 단단한 초콜릿을 다시 입히는 것이다. 술이 왈칵 쏟아지는 그런 스타일보다는 은은하게 향이 나는 수준이면 맛있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건포도도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는 특별한 건포도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건포도가 다 건포도지 뭐!"라고 했었지만, 포도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건포도가 있다는 것을 남편을 통해서 알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남편이 굽는 과일케이크가 있는데, 거기에 이 렉시아(lexia) 건포도가 필요하다.


이걸 특별하다고 부르는 이유는 시중에서 쉽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꼭 그 건포도를 넣고 싶어 했고, 결국은 대형 포장으로 왕창 구입을 했다. 문제는 다 소비가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낱낱이 펴서 얼린 후 다시 모아서 소분 진공포장을 해서 보관을 했다.


옆의 일반 건포도에 비해서 훨씬 크고 촉촉하다


이 건포도는 일반 건포도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맛도 진하고, 풍미가 아주 끝내준다. 그래서 그런 특별한 케이크에 넣으면 아주 맛있다. 머핀 같은 것을 만들어도 이걸 넣으면 맛이 확 달라진다. 아무튼 실온에 꺼내 놓은 봉지가 있어서 그걸 넣으면 좋겠다 싶었다.


관련 레시피들을 검색해 봤는데, 그리 마땅한 게 눈에 안 들어와서 결국은 내 마음대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난 왜 맨날 이런 식인지! 술도 보통은 럼주를 넣던데, 나는 럼보다는 버본(bourbon)이 더 맛있을 것 같아서 그걸로 준비를 했다. (원래 버본이 집에 있었다는 것은 아주 좋은 핑계!)


서양에서는 트러플 초콜릿이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파베 초콜릿 또는 생 초콜릿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생크림과 다크 초콜릿을 섞어서 만드는 부드러운 초콜릿인데, 그 비율에 따라서 부드러운 정도가 달라진다. (예전에 올린 레시피 및 자세한 설명은 링크를 참조 :https://brunch.co.kr/@lachouette/127)


제일 큰 문제는 집에 초콜릿이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딸이 겨울에 와 있는 동안 마카롱 만든다고 다 써버리고 아주 조금 남아있었다. 그래서 이번 초콜릿은 생크림을 극대화해서 최대한 부드럽게 하기로 했다. 사실 남편이 부드러운 버전을 훨씬 좋아한다. 하지만, 부드러운 만큼 손에서도 잘 녹기 때문에 이번에는 겉에 초콜릿을 한 겹 더 씌워서 손에 잡기 더 수월하게 만들기로 했다.



우선, 건포도를 준비했다. 얼마나 넣을까를 생각하다가, 맛있기는 해도 나는 건더기가 많이 씹히는 초콜릿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1/4컵만 넣기로 했다. 꾹꾹 채워서 준비했다. 그리고 잘게 다진 후 거기에 버본을 한 숟가락 부어서 촉촉하게 적셔줬다. 아무래도 따로 나중에 섞으면 버본이 겉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생크림을 계량해서 전자레인지에 잠깐만 돌려줬다. 팔팔 끓이는 게 아니고, 따끈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략 40~50도 정도만 되면 되므로, 너무 뜨거우면 잠시 식혀줘야 한다. 그보다 온도가 높으면 초콜릿이 타서 질감이 확 바뀐다.



초콜릿은 생크림 양의 반 정도 되는 무게로 준비하여 잘게 다져준 후 중탕을 한다. 중탕을 할 때에는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녹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중탕냄비의 물도 팔팔 끓이지 말고, 뭉근하게 끓이는 것이 좋다. 이때 초콜릿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자.


초콜릿이 다 녹았다 싶으면, 생크림의 온도를 다시 한번 체크한 후에 초콜릿에 부어준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저어서 매끄러운 질감의 가나슈가 되도록 해준다. 처음에는 영 겉도는 것 같아도 어느 순간이 되면 매끄럽게 준비가 완료될 것이다.



불에서 내려서 계속 좀 더 저어주면서 온도를 좀 떨어뜨리고, 이제 건포도 믹스를 넣는다. 잘 저어주고 나서 살짝 맛을 본다. 건포도가 달기 때문에 나는 설탕을 따로 넣지 않았지만, 만일 더 달게 하고 싶으면 분설탕이나 파우더 형 에리스리톨 같은 것을 넣어준다. 일반 설탕을 넣으면 이제 녹지 않아서 좀 난처할 것이다.

 

사실 단 정도는, 사용한 초콜릿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뭐가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각자의 입맛에 맞게 조절하는 게 좋다.


뚜껑을 덮어 냉장하고, 단단해질 때까지 최소한 3시간 이상 기다린다. 하룻밤 재워도 좋다.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면, 티스푼으로 퍼 내어서 같은 사이즈로 동글동글하게 빚는다. 사이즈는 큰 것보다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좋다. 나는 3cm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다.


계량 티스푼 위로 봉긋하게 올라오는 크기면 적당하다.


이게 손에서 쉽게 녹기 때문에, 손을 차갑게 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고, 한꺼번에 다 꺼내서 작업하기보다는 일부씩 꺼내면서 작업하는 것이 좋다. 다 완성되면 그대로 다시 냉장고에서 한 시간 정도 굳힌 다음 초콜릿을 위에 씌우면 마무리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초콜릿이 모자란 것이다! 집에 정체불명의 초콜릿이 하나 있어서 그걸 쓰면 되겠다 싶었는데, 제목에 Fire라고 쓰여있었다. "분명히 70% 다크 초콜릿인데 이건 무슨 말이지?" 하며 맛을 봤더니, 아이고, 진짜 입에서 불이 났다!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찐 매운 초콜릿이었다. 하마터면 발렌타인 데이에 진짜 화끈한 맛을 보여줄 뻔했다!


그래도 다행히 아주 작은 초콜릿이 하나 남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까서 녹였는데, 어찌나 양양하던지, 결국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망쳐버렸다. 원래 녹여서 씌우는 초콜릿은 중탕으로 해야 하는데, 워낙 알량한 양이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10초씩 쉬어가면서 돌리고, 젛어 주고를 반복하면서 보니 양이 너무 적었다. 서너 개 씌우고 낫더니, 나머지는 어떻게 씌울지 막막했다. (열 받아서 과정샷도 없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분명히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생크림을 슬쩍 섞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윤기 나는 초콜릿은 망가지고 말았다. 온도를 맞춘 것도 아니었고, 그걸 전자레인지에 돌리자 생크림이 초콜릿과 만나서 타면서 일이 꼬인 것이다.



결국 덕지덕지 바르면서 혼자 속으로 꿍얼꿍얼...! "이건 포스팅하지 않을 테야" 하며 심술이 나서, 대충 말리면서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그래도 달리 어쩔 도리가 없기에 다 마른 후 그대로 상자에 담아 리본 달아 부엌에 꺼내놨다. 남편이 아침에 발견하라고...




밤에 이상하게 잠이 안 와서 고생하는 바람에 아침에 늦잠을 자고 허둥지둥 수업을 시작했다. 남편에게는 초콜릿 얘기도 안 하고 그냥 "Happy Valentine's Day!" 한마디 던진 게 다였다. 두 시간 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남편이 나를 보고 말했다.


"저기 아프리칸 바이올렛 가서 확인 좀 해봐, 물 줘야 하는 거 아닌지."


원래 절대로 나한테 뭐 시키는 사람이 아닌데 뭔 소리를 하나 그러면서 창가로 다가갔더니 장미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나 받으라고 집으로 배달시켰는데, 내가 수업하느라 못 듣고 자기가 받아서는 깜짝쇼로 창가에 놓아둔 것이었다. 그리고 선물도...



향이 좋은 장미를 품에 안고, 남편에게 초콜릿을 권했다. 못생긴 초콜릿에 대해 난감해하는데, 한 입 먹은 남편이 이러는 게 아닌가!


"와, 지금까지 먹어본 초콜릿 중에 최고다! 레시피 써놨어?"


하! 나 이거 포스팅 안 하려고 했는데, 그렇다면 또 동네방네 레시피 나눠야지 싶어서 결국 이 글을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 초콜릿이 엄청나게 부드러우면서도, 버본 향이 나고, 건포도는 예상대로 촉촉한 게 너무 고급진 맛이었다. 내가 먹어봐도 맛은 정말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 중에 최고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또 달달한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했는데, 꽃을 화병에 꽂은 후에 남편이 해놓은 뭔가를 발견하고 나는 깔깔 웃으며 행복 지수가 또 뛰어올랐다. 그게 뭐였을까?



꽃의 아래쪽에 물을 보관하는 작은 통이 달려서 오는데, 그게 어디 꽃 선물할 때 활용하기도 좋고 해서 모으고 싶게 생긴 것이다. 남편은 잡동사니 모으는 거 딱 질색하는 사람인데, 뻔히 내가 좋아할 줄 알고, 그걸 헹궈서 나란히 엎어 놓은 것이다! 난 이럴 때 그의 마음이 전해져서 가슴속이 간질간질 해지고 기분이 좋다.


그리고 저녁은 근사하게 프렌치 스타일로... 차려 먹지 않고, 간단하게 파이브 가이브 햄버거로 해결했다. 사실, 우리가 작업실에 선반과 책상을 새로 만들어 설치하려고 계획 중인데, 둘 다 그거 설계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저녁 준비 안 했는데 저녁 6시가 넘어버린 것이다. 남편은 프렌치프라이가 당기는 표정이기도 하고... 그래서 언제나 집밥 순이, 집밥 돌이인 우리가, 밸런타인 기념(!)으로 특별 외식을 했다!


들어오면서 마트랑 홈디포 들러서 필요한 것들 몇 개 사고, 깜깜한 주차장을 손잡고 나오는데, 그냥 행복하다. 약간의 유난도 떨고, 그렇지만 또 싱겁기도 하게 보낸 발렌타인 데이였다. 그럼, 밤이라도 뜨겁게 보내야하나?





건포도 버본 생 초콜릿

3cm 크기, 20개가량, 서양 계량컵(240ml) 사용


건포도 1/4컵 (60ml)

버본 위스키 1큰술, 없으면 럼주, 또는 다른 향긋한 독주

생크림 160 ml

다크 초콜릿 80g

분설탕 또는 에리스리톨 파우더 (옵션)

커버용 다크 초콜릿  150g


1. 먼저 건포도를  1/4컵에 꽉 채워서 계량한 후, 잘게 다진다

2. 버본이나 럼주를 끼얹어서 잘 스미게 해 준다.

3. 생크림을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돌리고 온도를 체크한다.

4. 온도가 높으면 약간 식게 기다려준다. 40~50°C(115°F)가 되어야 한다.

5. 다크 초콜릿을 잘게 다져서 중탕으로 녹인다. 물이 들어가지 않게 주의한다.

6. 생크림의 온도를 다시 체크한 후, 맞는 온도일 때 크림을 초콜릿 쪽으로 부어준다.

7. 시간을 두고 계속 저어서 크림과 초콜릿이 완전히 섞이도록 해준다.

8. 완료되면 중탕 냄비에서 내리고 다시 좀 더 식도록 섞어준 후, 준비된 건포도를 넣어준다.

9. 냉장고에서 3시간 이상 식힌 후, 꺼내서 티스푼 크기로 동글동글 빚어준다.

10. 다시 냉장고에서 한시간 정도 굳힌다.

11. 다크 초콜릿을 중탕으로 녹인 후, 준비된 초코볼을 담가서 종이호일 위에 얹어서 실온에서 굳힌다.

12. 예쁘게 담아 포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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