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볶지 않고 쉽게 만들되 맛은 더욱 깔끔하게 5분 만에 완성!
설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설에는 남편의 자식들을 모두 불러다 놓고 한식으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원래 크리스마스마다 모이던 우리는 이번에 못 모였다. 연말연시동안 내가 감기를 심하게 앓는 바람에 아예 멀찍이 날짜를 잡다 보니, 이왕이면 설날에 모여 떡국이라도 같이 하자 싶었다.
그럼 무슨 음식을 할까? 갈비찜도 하고, 부침개도 있지만, 한국 잔치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잡채이다. 아마도 국수여서 명을 길게 한다는 차원으로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서 풍미가 좋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사실 잡채는 원래 내가 그리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예전에 잡채를 할 때는 전통 방식을 늘 고집했다. 다 따로 볶아서 나중에 면 삶아서 비비는 방식 말이다. 각각 재료의 맛을 살린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만들다 보면 여간 손이 가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해놓고 나면 한 접시로 끝나니 서운하기도 하다. 그래서 비슷하게 손이 간다면 차라리 구절판을 하는 편이 노력대비로 더 폼 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남편과 만나면서 바뀌었다. 이 사람이 잡채를 아주 좋아하는 것이었다. 알러지로 인해 밀가루를 못 먹는 그로서는 국수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데, 당면으로 만든 잡채는 그 질감과 풍미가 좋아서 단번에 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결국 잡채는 우리 집의 애정템이 되었고, 나는 이제 좀 더 쉽게 저수분 방식으로 만든다.
자꾸 하다 보니 요령도 좀 늘고, 오히려 짧게 익혀서 재료의 맛이 더 살아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름도 적게 들어가고, 당면도 더 탱탱하다. 물론, 만들기 쉽다는 것은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나 명절 때처럼 여러 가지 음식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경우, 더더욱 요긴한 방식이다.
이 방식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저수분이 가능한 냄비이다. 아마 요즘은 대부분의 가정에 다 있을 것이다. 3중 바닥 스탠 냄비를 사용하면 된다. 통삼중이든 아니든 큰 상관은 없다. 다만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서는 뚜껑에 구멍이 없어야 하는데, 그 부분은 키친타월을 몇 번 접어 물에 적신 후, 위에 얹어주면 해결된다.
만들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당면 불리기이다. 삶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불려놓아야 짧은 시간에 익기 때문이다. 최소 한 시간 전에는 불려놓는 것이 좋다. 충분히 불지 않으면 당면이 제대로 익지 않는다. 당면이 길어서 불리기 힘들면, 이렇게 긴 스파게티 전용 용기에 담아서 불려도 된다.
나머지 재료들은 취향껏 사용한다. 잡채에 쇠고기를 넣는 집도 있고, 돼지고기를 넣는 집도 있다. 아니면 집안에 있는 재료를 대충 넣기도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소고기를 넣고, 표고와 목이버섯을 꼭 넣으며, 당근과 양파, 시금치를 기본으로 넣는다. 하지만 시금치를 못 구한 날에는 청경채를 넣기도 하고, 빨간색을 내고 싶으면 빨간 고추나 파프리카를 넣기도 한다.
표고는 불려서 기둥 떼어 채 썰고, 목이버섯은 불린 후에, 지저분한 부분을 손으로 떼 낸 후, 적당한 크기로 잘라준다. 잡채에는 쫄깃한 목이버섯이 들어가야 제맛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달걀지단으로 장식하는 것을 좋아한다. 잣을 넣는 것도 좋아하지만 너무 비싸서 안 산지 꽤 오래되었다.
이 저수분 잡채는 하나의 팬으로 해결하는데, 그래도 고기는 따로 볶는 게 더 맛있더라. 아무래도 고기는 불맛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고기 볶고 국물 남았으면 그 국물도 나중에 재료 위에 살짝 끼얹어주면 더 좋다.
재료가 다 준비가 되었다면, 냄비 바닥에 기름을 살짝 둘러주고, 그 위에 양파와 당근을 얹는다. 당면은 켜켜로 세 번 정도에 나눠서 담고, 그 사이사이에 고기와 버섯을 넣는다. 맨 위에는 시금치나 청경채를 얹고, 파프리카도 사용하면 거기 얹는다.
재료들은 전부 씻거나 물에서 나와서 촉촉한 그대로 사용한다. 이 방식은 수증기를 이용해서 찌는 것이 포인트이기 때문에, 야채 자체의 수분과, 당면의 수분들이 그 증기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자, 이제 뚜껑을 덮고 일단 센 불로 1분간 냄비를 달군 후, 바로 약불로 내리고 딱 5분만 익힌다. 궁금해도 중간에 뚜껑은 열지 않는다. 스팀이 새기 때문이다. 시간이 다 되면 들여다봐서 당면이 투명해졌으면 익은 것이고, 덜 익었다 싶으면 한 2분 정도 더 익힌다. 물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더 두면 탄다. 여러 가지 하면서 정신없으면 반드시 타이머를 맞출 것.
이제 뚜껑 열고, 간장과 참기름 섞은 양념장을 둘러준다. (이때는 후다닥 작업하느라 사진도 없다) 깨도 뿌리고 뒤적여주면 완료. 정말 순식간에 끝나기 때문에 요리라고 부르기 민망한데, 남편도 이 방식으로 만든 잡채가 더 맛있다고 하니 힘들게 더 공을 들여 따로 볶아서 만들 필요가 없어서 좋다.
그래서 이번 설명절 음식으로 또 당첨이다. 이 밖에, 갈비찜과 녹두부침개, 동태 전, 고기완자, 호박전 등 여러 가지 전과 삼색나물을 무치고 떡국을 준비하면 아쉬운 대로 준비가 완료될 듯싶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일 시간이 기대된다.
재료:
당면 - 찬물에 최소 한 시간 불린다. (난 당면 양을 적게 하는 편이라 보통 120g 정도 사용한다)
표고버섯, 목이버섯 - 한 시간 전에 미리 불려서 적당한 크기로 손질
고기 - 잡채용으로 썰어서 기본양념간장으로 무쳐둔다.
시금치 - 깔끔히 씻어서 준비
양파 - 반으로 자른 후, 가늘게 채 썰어서 준비
당근 - 길쭉하게 채썰기
달걀지단 - 황백 갈라서 각각 부친 후, 모양내서 썬다.
간장, 참기름, 깨 (각 가정의 취향에 맞는 양념장을 사용한다, 우리 집은 무설탕)
만들기:
1. 모든 재료를 준비한 뒤, 고기만 살짝 미리 볶아준다.
2. 삼중바닥 냄비에 기름 한 큰 술 두르고, 양파 깔고, 당근 깔고, 당면 좀 깔고, 고기 버섯 깔고, 당면 또 깔고, 얇은 채소 깔고 번갈아가며 재료를 얹어준다.
3. 센 불로 1분만 달궈주고, 곧장 불 줄이고 약불로 5분간 익힌다.
4. 확인해 보고 당면이 익었다 싶으면 불 끈다.
5. 뜨거울 때, 간장, 참기름 섞어서 뿌리고, 깨도 뿌리고, 잣도 있으면 뿌리고 빠르게 휘저어준다.
6. 달걀지단 넣고 한번 더 섞어주면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