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바른 듯한 목소리로 느끼하게만 말해야 하는 걸까?
사실 그렇다. 영어는 느끼하다. 그들은 느끼하게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담백하게 말하고 싶은 걸!" 이렇게 우기고 싶을 수 있다. "뭐 꼭 그렇게 느끼하게 해야만 할 이유는 없잖아."
그럼, 이렇게 생각을 해보자. 여기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들이 아주 괴로워하는 영어가 있는데, 그게 바로 인도 영어다. 인종차별적인 의도가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고유 악센트를 가지고 있는데, 그게 우리로서는, 안 그래도 어려운 영어를 더욱 알아듣기 어렵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악센트를 우리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다른 나라 사람들 역시, 우리의 영어를 같은 이유로 인해 우리의 영어를 알아듣기 힘든 것이다.
반대로,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들을 보자. 요새는 티브이에도 많이 나오니까 어렵지 않게 외국인들의 한국어 구사 능력을 구경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진짜 한국인처럼 발음을 해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 산지 오래되었는데도 심하게 혀를 꼬부려서 아차 하면 못 알아듣기도 한다. 그런 사람을 보면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저 사람은 산지도 오래되었는데 왜 한국어가 안 늘어?"
안 늘지 않는다. 사실은 계속 늘고 있는데도, 발음이 그렇다 보니 계속 안 느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문제는, 그냥 듣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떨 때에는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데에 있다. 물론, 알아듣는 것은 상대의 몫이니까 나는 그냥 나대로 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 생기는 불이익은 사실 우리가 당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 되도록이면 그런 일을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어에서의 자음들은 대부분 유성음(有聲音)과 무성음(無聲音)으로 나뉜다. 그런데 한국어의 자음은 유기음(有聲音)과 무기음(無氣音), 그리고 거기에 경음(硬音)으로 나뉜다.
아니! 쉽게 설명해 주겠다더니, 갑자기 어려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 좀 더 쉬운 말로 차근히 풀어보겠다. 먼저 한국어로 예를 들어 보자.
풀 났어. → 불났어. → 뿔 났어.
문장이 좀 어색한 면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을 전달하고 알아듣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다. 맨 처음에 나온 '풀'은 유기음이다. 공기가 통한 소리라는 것이다. 입으로 '풀'하고 소리를 내보면 바람이 훅 부는 느낌이 들 것이다.
반면에 '불'이라고 발음을 해보면, 아까 불던 바람이 나오지 않는다. 공기를 내뱉는 소리가 아니어서 무기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뿔'이라고 발음을 하려면, 거기에 힘만 조금 주면 된다. 된 소리다. 경음이라 부른다.
이렇게 우리에게 누워서 떡 먹기 같은 소리가, 서양인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구분 불가 소리이다. 그들의 귀와 입은 이 소리를 구분하도록 훈련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귀로도 구분이 안 가거니와, 입 밖으로 이 소리를 내는 것도 힘들다. 자기는 이 소리를 낼 줄 안다며 애써 발음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본 적이 있는데, 세 가지 소리를 모두 똑같이 냈다.
물론, 한국인 중에도 영어의 발음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원래 이런 소리 구분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외국인 중에서도 한국어를 아주 그럴듯하게 구사하는 이들도 있다.
아니, 그냥 ㅂ은 b로 하고, ㅍ은 p로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렇게 쉬우면 얼마나 서로 윈윈이겠느냐만 서도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영어에서는 이런 유기음, 무기음의 구별이 없는 대신, 유성음과 무성음이 있다. 유성음은 성대를 떨어서 내는 소리이고, 무성음은 성대를 떨지 않고 내는 소리라는 뜻이다. 실제로 목에 손을 목에 대고 소리를 내보면 떨림이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원래 성대를 떠는소리는 모음이다. 그래서 한국어를 할 때에도 ㅂ같은 것이 양쪽 모음 사이에 들어가면 그게 유성음처럼 들린다. 물론, 우리에게는 그걸 구분할 귀가 없기에 그냥 같은 소리로 들리지만, 영어 원어민이 들으면 그게 다른 소리처럼 들린다. (우리말도, 고어에서는 유성음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인식되지 않는다)
따라서 '밥을 먹는다"라고 하면, 영어로는 이게 '파블멍는다'로 들리는 것이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하겠지만, 앞에 나온 '바'는 원래 우리 소리인 무성음으로 나오고, 뒤에 나온 받침인 'ㅂ'은 양쪽 모음사이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유성음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외국어 표기법에서는 부산을 Pusan이라고 썼고, 그게 서양인들을 더 잘 알아듣게 하는 방법이었다. 또한 김가는 Kim이 되었고, 박가는 Park이 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 내가 아무리 '고'라고 말해도 그들은 Ko라고 들린다는 소린데, 이런 복잡한 설명 말고, 어떻게 하면, 내가 발음하는 '고'가 그들에게도 Go 소리처럼 들릴 수 있을까?
유성임이 성대를 떨어서 내는 것이다보니, 그들의 소리는 목 속의 깊은 곳에서 나온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더 느끼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반면 그들에게는 우리 한국인들의 발음이 입 앞쪽에서 나온다고 느껴진다. 물론 한국어도 목 속 깊이서 꺼낼 수 있고, 성악가나 아나운서 등은 그렇게 발음 할것이다.
하지만 늘 입 앞에서만 소리를 내던 사람에게 갑자기 목 깊은 곳을 떨어가면서 소리를 내어서 말하라고 하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평생 박힌 습관을 어떻게 금방 교정을 하겠는가. 기억을 했다가도 말을 하다보면 어느샌가 원래의 목소리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편법을 쓸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음의 앞에 모음을 살짝 깔아주는 것이다. 어떻게 깔아주냐고? 이렇게!
으고우!
이걸 따로따로 발음하지 말고, 함께 붙여서 발음하는 거다. 으를 살짝 누르듯이 하면서 고우로 넘어간다. 그러면 이 '고'라는 소리가 상당히 느끼하게 변한다.
잘 안된다면, 고구마를 영어처럼 발음해 보자. 으고우구우마. 느끼해졌는가? 여기서의 '으'나 '우'는 한 박자를 다 쓰지 말고, 반박자만 써서 빨리 챙긴다. 이렇게 하면, 외국인이 고구마라고 하는 것처럼 들리면서, 가슴이 답답하게 고구마 먹은 기분이 될 것이다. 그러면 맞게 발음한 것이다. (브런치에서는 글자의 크기를 조절해서 강세를 표시할 수 없어서 아쉽다)
자, 그러면 이번엔 g 발음이 들어간 영어를 해보자. Good morning!
상큼하게 '군모닝!'이라고 하지 말고, 느끼하게 '으귿 모오ㄹ닌!" 이렇게 말이다. 물론 한글로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진짜 영어 같은 소리를 적을 수는 없지만, 뭔가 느끼하면서 좀 바뀐 느낌이 들지 않는가?
지난번에는 음절이 늘어나니 조심하라더니, 이번에는 없는 음절을 앞에다 붙여주느냐고 하겠지만, 이 '으' 소리는 음절만큼 길게 하지 않고, 아주 짧게 붙여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노래로 치면 못갖춘마디처럼 말이다.
game(으게임), great(으구뤠잇), google(으구글), garden(으가아ㄹ든)
그럴 듯 해지지 않는가? 수업을 하면서 고민해서 낸 방법 중 하나이다.
이것을 깨닫게 된 데에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십여 년 전, 딸아이와 잠시 캐나다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처음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이었다.
그날은 아이가 학교에 갔는데 뒤늦게 비가 왔다. 끝나고 자원봉사를 어디론가 간다고 했는데 우산이 필요할 것 같아서, 학교로 우산을 가지고 갔다. 이곳 아이들은 교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기 때문에 아이를 찾으러 이리저리 다녀야 했고, 아이가 있는 교실에 도착했을 때, 앞에서 서성이던 소년이 딸아이를 찾도록 도와줬다.
나는 고맙다며 그 소년의 이름을 물어봤는데, 내가 당시에 들은 그의 이름은 아벨이었다. 내가 경황이 없기는 했지만, 막연히 그의 이름을 기억했고, 나중에 걔가 누군지 딸에게 말해주었는데 그런 이름의 소유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같은 학년이 아니었을까? 심지어 걔 이름을 불렀고, 그 아이가 대답을 했으니 맞을 텐데...
그러나 졸업할 때가 되어 받아 온 앨범에서 발견한 그 아이의 이름은 아벨이 아니었다. Valery. 순간 당황했다. 이 이름은 밸러리라고 발음되는데, 약칭으로 줄여서 앞의 Val만 사용했던 것이었고, 그야말로 느끼하게 "어밸~"하고 발음했던 것이다. 즉, 유성으로 발음할 때 앞에 환청으로 "어"가 들리게 된 것이었다.
즉, 모든 모음은 유성음이므로, 영어 자음의 유성음 앞에 이렇게 '으'나 '어'소리를 붙이는 경우 우리는 어렵지 않게 유성음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 내지 못하면, 못 해도 할 수 없다. 다른 부분을 강화해서 알아듣도록 유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불/뿔/풀을 모두 다른 단어로 인식하듯이, 그들도 gap/cap, dill/till, bat/pat 이런 것들을 모두 다른 단어로 인식하기 때문에, 영어 발음을 교정하고 싶다면, 이런 편법으로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