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용종은 다 어디로 갔을까?

5년 만에 대장 내시경을 마치고...

by 라슈에뜨 La Chouette

이 글을 쓸까 말까 잠시 갈등을 했다. 남의 대장내시경 결과를 궁금해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장암 발생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니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적어보기로 했다. 또한 나 스스로 너무나 의문스러워서 적어 두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했다.


내가 건강 흙수저라는 이야기는 전에도 적은 바가 있다. 여러 가지로 몸이 약한 사람이기에 건강을 특별히 잘 챙길 수밖에 없다. 양방 의학의 직접적 칼 대기 및 증세 억누르기 방식보다는, 몸의 발란스를 잡아서 몸이 스스로 이겨내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 내가 늘 추구하는 건강 관리법이다.


그런 나에게 늘 신경 쓰이는 것이 있으니 그게 바로 대장용종이다. 사실 딱히 그걸 걱정해야 할 징후는 평생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심지어 임신기간에도 변비 같은 것에 걸려본 적이 없을 만큼, 화장실 가기는 아주 규칙적이고 건강한 사람이다. 시차가 바뀌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시차 적응과 함께 바로 맞춤으로 들어가고 심지어 장염 같은 게 걸려도 회복이 빠르다.


그런데, 15년 전쯤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용종이 발견되었다. 늘 가던 검진센터에서 한번 대장 조영술을 해보자고 하면서 이 일이 시작되었다. 뭔가 깨알 같은 것이 점점이 보이는데, 내시경으로 한 번 살펴보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수많던 깨알이 전부 용종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내 대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용종 제거술을 한 번 할 때마다 그 개수가 늘어갔으며, 그때 떼어낸 용종은 선종이어서 후일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병원을 바꿔보기도 하면서 내 대장내시경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느 해인가 나를 담당했던 의사는, 세브란스 병원에 이 분야 권위자가 있으니 그분과 상담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 권위자는 이것이 유전자의 변이로 일어나는 현상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게 맞는지 유전자 검사를 해보자고 했는데, 뭔가 내가 실험대상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비용은 내가 내야 하는 이상한 시스템으로 보였다.


그리고는, 일부 당뇨약 중에, 이런 용종증에 간혹 효과가 있기도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먹어보겠느냐고 했다. 나는 당뇨가 없는데 당뇨약을 먹는 것이 괜찮냐고 물었으나 그 의사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기 마련인데 상관이 없다니! 게다가 나는 굉장히 약에 예민해서 부작용이 아주 잘 나는 종류의 사람이다.


고민해 보겠다고 하였고, 그 이후에 그 병원을 한 번 더 방문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유전자 검사를 해봐야 하나 고민하면서, 만일 유전자 상에서 계속 용종이 발생하는 체질이라고 나오면 그다음 절차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을 때 그 의사의 대답은 나를 경악시켰고 나는 그 이후로 그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유명한 앤젤리나 졸리가 유방암 유전자 때문에 유방 전절제 수술을 미리 받았듯이, 날더러 대장 전절제를 하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은 유방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냥 떼어내고 복원 수술을 받는 것과는 비교를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물론 그럴 돈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면, 변은 어떻게 보느냐고 했더니, 변 주머니를 차고 다니면 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면서,

내 대장에 용종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중에 하나라도 암으로 변하는 날에는 마치 시한폭탄처럼 모든 용종이 암으로 변할 것이라는 협박이 이어졌다.


나는 그냥 이대로 살다가 대장암에 걸리면 그것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고 병원을 나왔다. 삶의 질 따위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잘라내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 의사의 얼굴을 보면서, 정말 많은 의사들이 환자의 건강과 삶의 질에는 관심이 없이, 병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했다. 내가 계속 용종을 떼어내면 내 대장은 점점 더 예민해져서 더 많은 용종을 생산해내지는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에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의사는 없는 것 같았다. 몇몇 한의사는 내 의견에 동조했다.


결국 내 몸이 건강해지고 순환이 제대로 된다면 결국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누구나 몸에는 암세포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것이 암으로 발현되느냐 아니냐는 본인의 면역력에 달려있다고도 했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의사가 "고름이 둔다고 살이 되느냐"라고 말하였던 나의 갑상선 암도 결국 살이 되어 사라졌듯이, 내 몸에 암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내가 내 몸을 알고 내 몸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스스로 많은 실험을 하였다. 비타민씨 메가도스도 해봤고, 채식 위주의 식사, 저탄고지 식사 등등 여러 가지를 경험하면서 몸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고, 건강해지는 것도 느꼈다. 그러나 대장 내시경을 하면 그 안에는 어김없이 늘 용종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매년 하라고 했지만, 나는 자체적으로 2~3년에 한 번씩으로 정하고, 용종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기 직전 2018년 늦가을에 마지막 제거술을 받았다. 당시에 10월에 용종 제거를 하면서 이십여 개를 떼어냈는데, 다 떼어내지 못하고 남겨둔 것이 있다며 한 달 후에 재검을 하자고 해서 결국 또다시 이십여 개를 떼어내야 했다. 지긋지긋했다.


도대체 얼만한 사이즈의 용종을 떼어내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렇게 삶에 전혀 지장이 없는데 왜 나는 용종이 많이 생기는지도 궁금했다. 나는 웬만한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건강하게 음식을 먹는 편인데 그래서 잔병치레도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는데, 왜 이 문제는 극복이 되지 않을까 이상했다.


그리고 캐나다로 이주한 이후, 2년 후쯤 대장내시경을 다시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그때 코비드팬데믹이 터졌고, 병원 시스템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백신을 거부하고 칩거한 나로서는 병원에 가서 대장 내시경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편하지만은 않았다. 언젠가 해야 할 숙제를 미루고 있는 기분이었다.


올해 드디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검사를 받기로 마음먹고 의원을 찾아갔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가정의를 정해서 무슨 질환이든 그를 통해서 2차 기관으로 옮겨지는데, 마음에 드는 가정의를 찾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인 데다가, 캐나다의 의사 부족현상 때문에 가정의 자체를 찾기도 어려운 현실이었다.


남편을 맡아서 하던 가정의에게 부탁하려 했었으나 그 사람마저 은퇴하고 나서, 남편도 새로운 가정의에게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그에게 가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동네에 있는 워크인클리닉으로 방문을 하였고, 그를 통해서 대장 내시경 예약을 받았다.


내 전력에 대해서 다 들은 그가 최대한 빠르게 잡아준 날짜는 자그마치 석 달 후였고, 나는 또다시 조바심 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했다. 만일 5년 동안 대장 용종이 암으로 변했다면, 그래서 대장암이 심각한 상황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할까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차피 대장전절제를 안 하겠다고 한 내 결정은 내 삶의 질을 높였고, 그 이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이렇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5년이나 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후회의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하니 이 행복을 좀 더 연장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시경을 기다리는 기간에 그간 못했던 나름의 간단한 건강검진도 받았는데 별 이상이 없다고 나왔다. 피검사에 암수치도 정상이라고 했고, 분변잠혈 검사도 오케이를 받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모 정치인이 대장암 4기라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대장암은 전혀 증세가 없는 암으로 유명하다.


와중에 지난달에는 대상포진도 나를 잠깐 찾아왔었기에 내 면역성에 대한 자신감이 흔들리기도 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적을 예정이다) 그렇게 석 달을 보내고, 어제 드디어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며칠간 식단을 주의하는 것도, 고약한 약물을 마시고 장을 비우는 것도 내겐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 마음은 상당히 비장해져 있었다.


캐나다에서의 첫 대장내시경은 그런대로 순조로웠다. 도착한 순서대로 침대에 누워서 차례를 기다렸고, 간호사들은 친절했다. 대기를 한 시간 정도 하였는데, 내시경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평소 한시간이 넘도록 수술을 했어야했는데 10분만에 끝난 것이다. 내가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의사는 만날 수 없었고, 간호사가 내게 설명을 해줬다.


두 개의 작은 용종을 떼어냈고 검사 기관으로 보낼 것이며, 결과는 두 주일 후 가정의에게 들으면 된다고 했다. 두 개라고? 내 용종이 두 개였다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으나, 나는 별달리 특별한 환자가 아니었다. 의사는 다음 사람의 내시경을 하고 있었고, 나는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그 사실은, 내 용종이 그리 유별나지 않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을 했다. 그 많던 용종은 어디로 갔을까? 정말 용종이 줄은 것일까? 한국에서는 미처 떼어내지 못한 작은 용종들도 수두룩하게 가득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게 마지막이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용종이 정말 사라졌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나는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했고, 내가 추측할 수 있는 이유들을 모두 적어보니 다음과 같았다. 이 중 어떤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추정할 뿐이다.


1. 한국의 과잉진료 또는 캐나다의 대충진료

꼭 제거하지 않아도 되는 밀리미터 단위의 아주 작은 용종들까지 모두 떼어내느라 그렇게 많다고 나왔던 것은 아닐까? 캐나다에서는 그렇게 민감하게 진료하지 않는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니면 캐나다에서는 덜 자세히 보는 것일까? 설마 그렇게까지 할것 같지는 않았다.


2. 스트레스 감소, 건강한 음식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살았는데, 이혼 후 재혼 하였고, 캐나다에서 건강하게 잘 챙겨 먹으면서 행복하게 살았기 때문에 용종이 감소된 것일까? 캐나다에 와서는 육식도 많이 했지만, 건강하게 키운 육류를 먹었고, 모든 식사를 균형 잡히게 거르지 않고 먹는 편이다 보니 영양학적으로 좋았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소 무리스러운 감이 있지만, 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3. 유산균 음료

사실 나는 유산균을 그다지 믿는 사람이 아니다. 잘 맞아서 효과를 본 사람들도 분명히 있지만, 나는 유산균 제재를 먹으면 늘 더욱 속이 불편하였다. 티벳버섯이라고 불리는 요거트도 시도하였으나 오히려 화장실 상황이 나빠지는 바람에 접었다. 그런데 캐나다에 와서 새로 만난 것이 워터케피어(https://brunch.co.kr/@lachouette/215)였다. 나는 원래 음료수는 물만 먹었었는데, 이 발효음료가 오히려 갈증을 줄여주고, 결정적으로 맛있어서 계속 먹고 있다. 솔직히 건강을 위해서 먹는 수준이라기보다는 상큼한 탄산 맛에 먹고 있는데, 이게 정말 의학적 효과를 냈는지 궁금하다.


4. 명상

대장내시경을 3개월 앞두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명상을 시도했다. 늘 시도해도 자꾸 실패하기에 이번에는 힐링코드 명상으로 해서 시도하였다. 어머니 하시라고 내가 직접 녹음해 드린 파일이 있어서 그것으로 했더니 집중하기 좋아서, 아침마다 수업하기 전에 10분 정도 시간을 내서 했다. 이 미미한 명상으로 과연 효과가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 힐링코드 명상은 원래 치유명상이고 이것으로 효과 보았다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봐서 꾸준히 해도 좋을 것 같기는 하다.


이 중 하나가 맞았을지, 아니면 모두 더해져서 시너지 효과를 냈을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 알 수 없다. 인체는 신비하고 스스로 치유하는 힘이 있으니까. 건강 정보를 탐닉하던 시절도 지나갔고, 나는 그저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려고 노력 중이다.


내게 앞으로 어떤 날이 올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평화롭고 싶다.



표지 사진은, 내시경 전의 식사 조절 기간의 음식입니다. 스탠팬에 두부를 바삭하게 구워서 밥과 곁들여 먹었더니 별다른 것 없이도 나름 괜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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