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사차원이라고 불러야 할까?
우리 딸은 내가 낳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한 구석이 많다. 무난하고 평범하지 않다. 자신만의 정신세계가 있고,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도 다르다.
남자친구 한 번 사귀어본 적 없고, 담배 한 번 피워본 적이 없는 범생이다. 친구들과 몰려서 바에 가는 것도 재미없고, 빈둥거리며 유튜브 보는 것도 재미없다. 무슨 이렇게 재미없는 삶이 있을까 싶지만, 본인에게 재미있는 일들은 따로 있다.
직업이 5개쯤 되는 대학원생이라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주말에는 빨래를 하고 또 일을 한다. 놀 때에도 컴퓨터로 뭔가를 만들며 논다.
지쳤다고 쉬고 싶다고 해도, 다 손 놓고 노는 것을 사흘을 넘기면 좀이 쑤신다. 과연 저 아이의 하루는 몇 시간일까 궁금할 만큼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스스로 상당히 아웃사이더로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극정성이다. 애정을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주고 싶은 만큼 충분히 준다. 잘해주고, 이해해 주고, 특별한 선물을 가져다 안기기도 한다.
그런 딸이 지금 인턴쉽을 하러 와서는 인싸로 뜨는 일이 생겨서 본인도 황당해하고 있다.
사건의 전모는 이러하다. 요즘 취직이 어려운 것은 비단 한국만은 아니리라. 전 세계적으로 좋은 직장을 갖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픽사같은 회사에 인턴쉽을 왔다면, 그 인턴들의 다짐은 상당히 클 것이다. 어떻게든 잘해서 여기서 돋보이고, 나중에 정직원으로 선택되고 싶은 마음이리라.
물론 우리 딸도 여기에 취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양상은 상당히 다르다. 이곳에서의 인턴쉽은 일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배우는 것이다. 일종의 학교처럼 꾸려진다. 따라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우고, 그것을 이용해서 짧은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실력을 최상으로 보이고자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늘 시간이 부족하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밤 9시가 될 때까지 퇴근을 안 하면서까지 숙제 완성에 열을 올린다. 예전에는 심지어 밤을 새우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회사 측에서는 그것을 권고하지는 않는다. 경쟁구도로 가지 말아 줄 것을 당부했고, 그런 식으로 직원을 뽑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솔직히 취업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먹히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사내에서 벌어지는 다른 행사에 참여도 불가하다. 세미나도 있고, 몇 가지 프로그램이나, 금요일 저녁의 친목타임 같은 것들에 인턴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숙제를 보다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열을 올리는 것이 지금은 제일 급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딸아이는 전혀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주는 숙제는, 그 숙제가 나타내야 하는 것에 포인트를 둬서 충분히 그것을 잘 표현하도록 노력하되, 오버해서 더욱 현란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딸은 이미 기업의 일들을 해본 경험이 많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10초를 준다면 그 10초에 충실해야 하고, 그들이 원하는 콘셉트가 있다면 그걸 돋보이게 해야 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에너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구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주어진 시간 안에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힘을 쏟는다. 그 외의 시간에는 인턴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세미나나 프로그램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점심시간에는 회사 식당의 맛있는 음식들을 최대한 즐기고, 그곳에서 식사를 하는 정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보다 실질적인 현실을 마주하여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물론, 딸아이도 취직을 하고 싶다. 그러나 자신이 애를 쓴다고 해서 꼭 그것이 취업으로 연결되라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생을 살다 보니, 내가 노력한다고 모든 것이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거기에 추가로 운이 얹어져야 하는데, 그 운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 목을 매면 삶이 불행해진다.
안달을 한다고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자꾸만 힘이 들어가서 원하지 않는 결과물을 내기도 쉽다. 그냥 최대한 즐기며 창의적으로, 그리고 요구에 충실하게 하다 보면 일도 즐겁고 회사 생활이 고통스럽지 않다. 게다가 인턴사원이기 때문에, 이 숙제가 결국 최종적으로 사회에 발표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도 덜하다. 여러 기법을 응용하여 많은 실습을 해보며 기술을 익히는 것이 더 유용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은, 사실 어디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값진 상식이 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주말이면 쿠키를 구워가서 나눠주기도 하고, 자신이 만든 영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편하게 생각하다 보니, 나중에 함께 일을 하게 되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도움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현혹한다면 오히려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원하는 사람을 조종해서 잘 보인다는 것은 그렇게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아이는 진작에 그런 심리를 버렸다.
처음 대학에 갔을 때에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고, 자기가 잘하는 것도 드러내지 않고, 그저 겸손하게 지내며, 남들이 원하는 대로 맞춰줬지만 결과는 오히려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는 이제 그냥 자기 자신이기로 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것이다.
앞장서서 학교에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자신이 잘하는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면서, 오히려 주변에서 고마워하고, 아이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는 일하는 보람을 느끼며 더욱 생기를 찾았다.
이번에도 딸은 잠시 고민을 했다. 나만 이러는 게 너무 튀는 걸까?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하는 게 맞다. 남들이 다 그런다고 꼭 그렇게 따라갈 필요는 없다.
나는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고 보인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가 할 일을 잘한다면, 굳이 초과된 충성을 발휘할 필요는 없다. 물론, 많은 한국 회사에서는 여전히 그런 것들을 요구한다고 한다. 아마 우리 딸은 그런 곳에 가면 왕따가 될지도 모른다. 미국 회사가 잘 맞는 이유이다.
딸은 스스로를 돌아이라고 부른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기쁨을 찾는다. 시키지 않는 일을 찾아서 한다. 보람을 느끼는 일들을 하면 피곤도 오히려 풀리기 때문에, 자신이 필요한 곳에서 최대의 에너지를 발휘하고, 또 그렇지 않은 곳에서 충분히 여유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딸이 고맙다.
물론 아직도 이십 대이니 어리지만, 점점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는 아이는, 정말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고슴도치 엄마는 생각하고 있다.
표지는 남편이 딸아이에게 사준 티셔츠! 실제로 저런 심술을 부리지는 않는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