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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pr 26. 2024

아픈 순간에는 영원히 그럴 것 같아

하지만 대부분은 지나가고 잊히곤 하지

아픈 순간에는 영원히 아플 것만 같지만...

아팠다. 아플 줄 알았았다. 계속 무리하면서 아슬아슬했는데, 솔직히 건강을 과신했다. 나는 원래 잔병치레 잘 안 하니까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배짱. 그리고 사실은 그 배짱이 별거 아닌 허세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연이어 몸을 혹사했다.


할 일이 진짜 많기는 했다. 계속 한 가지씩 두 가지씩 쌓여만 갔지 줄어들지는 않는 상황에서, 나는 일을 또 벌이고, 또 벌이고... 게다가 딸 졸업식 가는 준비까지 시작되면서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결국 잠을 줄였다. 3시에도 자고, 4시에도 자고... 그렇게 날짜가 거듭되던 어느 날 밤, 아, 이러다 앓으면 초난감인데... 하는 생각을 하고 나서 몸살이 찾아왔다.


사실 그전 날, 컨디션이 무척 안 좋았지만 쉬지 않았다. 마당에도 일이 많았기에 나가서 약간 일을 했는데, 그때 한기가 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 귀찮아도 들어가 카디건이라도 하나 들고 나왔으면 되었을 텐데, 빨리 하고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진행했다. 




꼭 몸살뿐만 아니라, 사실 "이러면 안 되는데..."를 반복하면서 잘못하는 일들이 일상에서 꽤 많다. 몸이 주는 경고, 마음이 주는 경고를 계속 묵살하는 일은 정말 흔하다. 꼭 탈이 날 때까지 버틴다.


그 탈이 몸에 나든, 지갑에 나든, 중요한 시험을 망치든, 뭔가 나쁜 결말을 낼 때까지 몰고 가고 나서 후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이지 않은가. 그걸 극복하면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데, 성숙해지는 데에는 꼭 대가를 치르게 되는구나.


나는 몸에서 신호가 올 때, 얼른 동종요법 약을 먹거나, 쉬거나, 대책을 빨리 세워서 잘 넘어가곤 했는데, 이번엔 신호를 모르는 척했다. 열이 나기 시작했고, 콧물이 흐르고, 목이 아프고... 그리고 머리가 윙윙 울렸다. 목 뒤가 뻣뻣하면서 너무 아파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아파서 누워있으니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돌아다닌다.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아프니, 별거 아닌 몸살로도 중병만큼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인생사를 생각해 본다. 인생에도 이렇게 죽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곤 했다. 그때는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많이 힘들었는데, 지나고 나니 그때의 고통은 기억의 한 자락이 되었을 뿐, 그 아픔이 실제로 다시 똑같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유학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순간이라던가, 젊음이 버겁고 힘들어 다 버리고 그냥 중년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절, 가슴 절절이 외롭다고 느끼던 순간들, 내가 여태 뭐 하고 살았나 회의가 왔던 순간들, 너무 힘들고 아파서 체중이 36kg까지 떨어졌던 그 일 년, 그런 순간들에는 그게 내 인생의 전부처럼 내 마음과 머릿속을 점령하고 내 몸을 찍어 누르곤 했지만, 그 시간을 이겨내고 나면 다시 또 일어섰고, 과거는 과거로 흘러가고 말았다.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 아픈 것도 역시 또 이렇게 지나가고, 아무 일도 없던 것 같은 기분으로 새로운 나날을 살아갈 거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래서 부디 누구든, 지금 너무나 힘든 순간에 처해있다면, 이게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함께 기억하자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영상 수업하면서 종종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에는 수업을 미루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리고 또 내 경험을 들려주기도 한다. 세상 일들이 다 그렇듯, 제삼자가 되어서 보면 상황이 더 잘 보이기도 하니까. 그러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마음을 다잡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감기에 누워있으면서 죽을병처럼 괴로워하는 순간에, 이것은 단순히 감기일 뿐이고 또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어나서 팔팔하게 돌아다닐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누워서 그걸 생각해 냈다.  


다만, 그 순간이 좀 빨리 왔으면 하는 조바심은 들었다. 일반 감기 앓듯 두 주일씩 앓고 누워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줄줄이 잡혀있는 계획을 어찌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총동원해서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나는 어차피 병원약을 먹는 사람도 아니지만, 캐나다에서는 병원에 가봐야 뾰족한 수도 없다. 타이레놀 먹으라는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뿐이다. 즉, 민간요법을 가능한 한 많이 호출했다.


레몬을 짜서 마시고, 계피, 대추, 모과를 넣어서 끓여서 마시고, 은용액도 마시고, 대구 간유도 하루에 세 번씩 숟가락으로 푹푹 먹고, 비타민 D도 평소의 다섯 배 정도 먹고, 비타민 C도 서너 시간에 한 숟가락씩 먹었다. 목이 아픈 순간에는 장생 도라지 가루를 입에 털어 넣었다. 죽염을 입에 물기도 했고, 반신욕도 하고, 땀을 빼고 낮잠도 잤다. 


인터넷을 뒤졌더니, 열감기는 심장이 허하니 쓴맛을 먹는 게 좋다 하고, 으슬으슬한 것은 신장이 허하니 짠맛을 먹으라는 내용이 나왔다. 나름 일리가 있게 들려서, 코코아와 죽염을 타서 따끈하게 마셨다. 생전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었는데 나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았다.


배 지압도 해줬다. 가슴뼈 중심 아래부터 쭉 내려가면서 아픈 곳을 세게 눌러주고, 문질러 주었다. 몸이 안 좋으니 눌러서 안 아픈 곳이 거의 없었다. 


제일 힘든 것은 목뒤의 뻐근함이었다. 고개를 돌릴 수 없을 지경이니 이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싶어서 검색을 했다가 기겁을 했다. 그건 감기인척 하는 뇌수막염일 수 있으니 병원에 가라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라서 읽어봤는데, 결국 뇌수막염도 자연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쓰여있었다. 


다만 감염이 될 수 있다는 내용에 남편이 걱정되었다. 옮기면 안 되는데... 나 하나 아픈 것으로 족한데... 다행히도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서 목뒤 통증은 점차 사그라들더니 이번에는 눈으로 옮아갔다. 눈을 뜰 수가 없게 아프더니 시뻘겋게 충혈이 되었다. 


몸살을 해도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된 적은 없었는데, 눈까지 염증이 오니 짜증이 확 났다. 그러다가 책상 위에 놓은 은용액을 보면서, 이걸 넣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눈에 한 방울 넣었는데, 정말 1분 내에 통증이 반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사흘에 걸쳐 자연스럽게 회복되었다.


명상을 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기운을 모는 것도 쉽지 않아서 누워서 힐링코드 명상을 했다. 하루에 세 번 정도씩 하면서 회복의 기운을 느꼈다. 


음식은 최대한 제한했다. 아파서 입맛이 없고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은 먹지 말라는 몸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소화시키는 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쓰이니, 그 에너지를 아껴서 몸의 치유에 사용하게 양보를 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다. 



이럴 때 마시기 좋은 것은 사골국물이다. 나는 소뼈를 고아서 캐닝을 해서 보관해 두고 사용하는데, 이럴 때 진짜 유용하다. 냉동해 놓았다가 사용해도 좋다. 남편은 이럴 때 거위뼈 육수를 먹는다. 결국 비슷한 접근법이다. 


그렇게 이틀 정도 보내고 나니, 그래도 뭔가 먹여야겠다 싶었는지 남편이 아스파라거스 수프를 끓였다고,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스파라거스는 보통 질긴 아래쪽을 잘라내는데, 그걸 푹 익혀서 블렌더에 갈고, 다시 체에 내려서 정성껏 수프를 만들었는데 참 맛있었다. 



서양 사람들은 토스트를 한쪽 곁들이지만, 밀가루보다는 쌀이 부담이 없을 거 같아서 뻥튀기 하나를 같이 먹었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의아하게 보겠지만 여기서는 이게 샌드위치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내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남편을 보니, 난 정말 복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잔소리라고는 할 줄 모르고, 채근도 안 하고, 조용히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는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지...


다시 하루가 지나고 나니 상태는 더욱 나아졌다. 마당을 잠시 둘러볼 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프를 먹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남편은 영양이 가득한 수프를 끓였다. 색도 예쁜  수프였다. 남편의 마음처럼.



그리고 이제는 정말 거의 다 나았다. 코맹맹이 소리 약간과 뻑뻑한 눈을 갖고 있지만, 정상 생활은 다 할 수 있으니 나는 아마도 또 무리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마음의 소리를 좀 들으며 하자!



일이 확 늘어났는데, 몸까지 앓느라 글들이 밀렸습니다. 그런 와중에 곧 딸아이 졸업식을 보러 미국으로 날아가니 당분간 제대로 쓰기는 힘들 거예요. 죄송합니다. 아봉공방 브런치북도 한 달간 쉬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을 또 하나 벌렸습니다. 유튜브 채널 열었어요. 아직 영상이 하나뿐이어서 초대는 좀 더 있다가 할게요. 정신 수습하면 글도 다시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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