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을 앞두고 요즘 인생에서 배운 것

대학 명교수도 알려주지 않았던 찐 인생교훈

by 라다

20대 마지막을 보내면서 다르게 다가오는 생각이나 감정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채워지면서 나의 인생 서랍장이 꽉 채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정리했다.



- 시작과 끝에 대하여


타 부서 대리님이 퇴사했다. 마지막 인사하면서 나랑 악수하는데 눈물이 났다. 울컥하면서 뭉클해지고 가슴이 먹먹하면서 이제 저 사람과 만남의 연결고리였던 이 회사에서 두 번 다시 얼굴 보는 일은 없겠다. 내 자리로 전화를 걸던 그 사람의 내선전화를 받으면 이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겠다. 나의 잘못된 일 처리 방식을 누군가 발견해주는 사람은 이제 저 사람이 아니겠다. 그 사람이 해야 하는 업무를 하면서 나에게 하고 싶지 않았던 말들도 어쩔 수 없이 했어야 했던 상황들이 머릿속에 지나가면서 괜히 슬펐다. 그렇게 그만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회사에서 떠나고 나니까 굉장히 허무했다. 결국 끝이 날 거면서 그렇게 힘들었던 과거의 시간과 감정들이 너무나 별 것도 아닌 별 것들이었다.


입사 2년이 코 앞이고 나는 벌써 7명을 떠나보냈다.

언젠가 나도 이 회사에서 떠나는 날이 올 것이고

마지막 출근을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하니까 마음이 이상했다. 매일 보던 사람들과 매일 와서 앉던 내 자리를 더 이상 마주할 필요가 없어지는 그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그렇게 미운 사람들과 회사도 결국 마지막을 보게 되면 아무 일도 없던 듯이 허탈함만 남기고 과거의 일들은 정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멋지게 장식되는 것인가.


​결국 시작과 끝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 끝이 난다. 끝이 나면 또 다른 시작을 하고 또 끝을 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가. 시작과 끝의 반복으로 지쳤다면 어떤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받아들여야 할지 강구해 봐야겠다.


- 타인에 대한 미움에 대하여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내가 더 아프고 괴롭다.

사실 타인을 싫어하고 증오하는 행동을 즐겼다.

욕하고 분노하고 복수할 것이라는 열정으로 타인이 나에게 미움받으면 괴로울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나 따위에게 미움을 당하는 상대는 나의 미움을 모른다. 미움을 만든 사람은 나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어떤 증오로 바라본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결국 고통받아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인해 충분히 그 죗값을 치른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가 굳이 저 사람이 밉다고 해서 안간힘을 써서 미워하며 나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많다면 혹시 내가 타인과 연관된 부정의 옷깃을 부여잡고 있자면 그 어떤 것이든 이제는 그만 놓아주는 것을 연습해야 나의 부담이 덜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 행복에 대하여


수술을 하느라 몇 백만 원을 썼지만 또 일을 하기에 돈이 있어서 다행이었던 느낌을 받았다. 몸은 아픈데 그래도 일을 하고 있어 병원비를 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일을 하면서 행복하지 않은데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나뿐만이 겪는 고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학교의 틀을 벗어나 주어진 상황이 전혀 달라진 사회인이 돼서 경제활동을 쉬지 않고 해야 하는 우리의 삶이 기본이 되었다. 내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것은 이제 고민거리가 아니다.

과제를 하기 싫어서 500원 내고 인터넷에서 보고서를 사는 것을 고민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제는 정말 어떤 일을 해서 장을 보고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고 잠깐의 쉼도 맞는 건지 고민하게 되는 때이다. 또 비슷한 또래의 삶의 모습들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자신이 정한 가치관에 따라 흘러가는 인생을 지키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큰 행복을 느꼈다면 그보다 더 강한 자극을 얻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세상은 처음부터 큰 자극을 찾아 떠나고 빠르게 느끼고 그보다 더 짜릿하고 앙큼한 자극을 찾아다닌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큰 행복을 얻기에 이 세상은 너무나 어지러운 세상이 되었다.


사소하지만 작은 행복에 자극을 느끼는 우리의 삶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행복의 크기는 정해져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큰 행복을 바라고 원한다. 누군가 행복은 이런 것이라 정의하지 않았고 크기를 정하지도 않았다. 행복의 감정은 어떻게 느끼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삭막하고 여유 없는 세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확보하는 것도 치열해졌다.


소셜 미디어의 영향인지 요즘의 행복은 쿠키와 같다.

대중이 정한 행복 모양의 틀에 반죽을 부어 오븐에 구우면 세상이 정한 틀대로 사람들은 나의 행복이라며 마구마구 쿠키를 소비하고 본인의 것이라며 구매한다.

​어떻게 각자의 행복이 같은 틀로 만들어질 수 있냐는 것이다.


- 모든 것이 보이는 것과 다르다.


너무나 뻔하고 많이 들어서 지겨운 말이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누군가를 평가할 때는 보이는 것 자체로 평가를 할 수 있지만 보이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전부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공유하면 더욱 풍부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은 단면적인 모습을 같은 공간과 다른 상황에서 유연하게 표현할 수 없다. 어떻게 어디서 만난 사람이냐에 따라서 또 언제 누구와 만난 사람이냐에 따라서 서로에게 의미가 달라진다. 사람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가득한 요즘의 나의 마음에 상대의 다방면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필요성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12년 넘게 그리고 4년 넘게 학교라는 곳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은 그 어떤 유명한 선생님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인생은 스스로 만나게 되는 사람으로부터 배운다. 그래서 곁에 어떤 사람을 가까이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일까

이 의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 나의 인생의 평생 숙제가 될 것 같다. 내 곁에 두고 싶은 사람도 계속 변화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