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상황
38도 여름에 밖에서 일해 보셨나요?
누군가 직장생활의 만족도가 어느 정도 되냐고 묻는다면 100% 만족한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 될까 늘 궁금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어떤 회사든지 나를 뽑아준다면 이 몸이 부서져 뼈가 될 때까지 그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입사 후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은 직접 경험해 보니 매일같이 퇴사를 선언하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살아가야 했다. 그래서 2년 동안 다녔던 직장의 만족도는 20%였다. 10%는 집에서 가까웠고 또 다른 10%는 100% 칼퇴가 보장되었던 곳이었다.
나머지 80%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족스러웠는지 생각해 보았다. 하나하나 만족스럽지 못한 요소들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80%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큰 이유들만 추려 보기로 했다.
가장 큰 불만사항은 중간관리자가 없고 직속 상사가 7년 차 낙하산 부장이었고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사원의 월급이 2년 근무한 나보다 300만 원이 높았다. 또, 경력직으로 입사한 대리라는 사람은 알고 보니 무경력이었고 나이가 많았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대리 직급을 부여받은 사람이 새로 들어왔었다.
제일 치사한 게 돈 관련 문제인데 이 연봉이라는 것이 나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
인사 체계가 분명하지 않고 승진에 대한 평가도 부재했다. 직원들의 월급은 사장의 기분에 따라 달랐고 승진의 체계도 입김이 센 이사님과 친하면 몇 년을 근무하든 기준이 충족되지 않아도 직급이 붙었다. 모순적인 것은 만 3년을 근무하면 주임, 만 5년을 근무하면 대리가 되는 것처럼 뚜렷한 직급 체계가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입사하고 1년이 되지 않아 내 위로 있던 사수 2명은 모두 퇴사했다. 부장이지만 직무에 대한 지식이 없고 낙하산으로 입사하여 회사 내에서도 여러 부서한테 무시받는 상사와 함께 하는 직장생활은 매일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어디까지 올라가면 끝이 있을지도 모르고 숨이 턱턱 막히고 눈물이 가득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힘든 상황의 연속이었다. 맨 땅에 헤딩이라는 말이 뭔지 제대로 깨닫고 43년이 된 이 회사의 운영방식과 시스템은 시골의 구멍가게보다 못했다.
무능력한 상사를 믿으며 부장이라는 위치에서 고작 사원인 내가 5년, 10년 , 20년 이상 근무한 고인물들을 상대하는 것은 커다란 바위를 등에 얹어서 가다가 내려두면 또 등에 올리고 걷다가 내려두고 또 어깨에 얹어서 뛰기도 했던 끝이 없는 달리기와 같았다.
내가 일 못하는 너네 부장 죽여줄까?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1년만 버텨보자며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봤다. 결재를 받으러 가서 나의 상사를 욕하는 것도 듣고, 업무 협조를 요청하면 우리 부서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닌데 떠맡겨서 화장실도 못 가고 전화에 시달리기도 했고, 눈이 오고 비가 와도 밖에서 현장 작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나의 겨드랑이 냄새도 알게 되었다.
사무직으로 근무한다고 해서 입사한 곳은 컨테이너 출고 때문에 담당 직원이 현장에 나와 작업을 감독했다. 한 여름에 40도가 넘는 날에는 겨드랑이가 흠뻑 젖어서 향수를 뿌려도 냄새가 났다. 어느 날 작업이 끝나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가서 거울에 비친 내 옷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홍색 셔츠를 입었는데도 겨드랑이 부분이 축축하게 젖어서 땀자국이 뚜렷했다.
충격적이었다. 겨드랑이 부분에 땀이 나서 흥건하게 젖은 모양은 그저 남의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너무 부끄러웠다. 사람들이 내 땀자국을 보고 뭐라 생각했을까?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기 시작했고 업무 진행하면서 상사와 합도 어느 정도 맞아갔다. 그런데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 나에게 경력은 없지만 경력직으로 들어온 후임이 새로 생겼고 기존 직원에 대한 존중이 없어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3개월 뒤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친구의 연봉을 알게 되고 확고하게 퇴사를 결심했다.
담당 업무의 작업 건이 아닌데도 여자라는 이유로 타인의 담당 업무의 작업을 하러 나가야 했다. 경력 없이 들어온 대리라는 사람은 영업업무에 집중해야 한다는 회사의 결정이었다. 같은 직무로 입사해서 누구는 에어컨 바람 쐐면서 사무실에서 일하고 돈도 더 받고 직급도 있는데 먼저 입사하고 업무 지식도 많지만 사원이고 막내인 나는 대리의 일을 대신해야 했다.
생전 나의 땀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었는데 이 냄새를 맡고 큰 현타를 느끼고 퇴사를 강력하게 마음먹었다.
나는 내 겨드랑이 냄새를 맡기 위해서 이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 나의 노동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담당하는 업무는 제일 많고 근속 기간도 제일 긴데 직급도 없고 월급도 팀에서 제일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더 이상 지속적으로 회사생활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재취업을 위한 여정이 쉽지 않았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 사실인지 이 회사를 도망쳐서 갈 회사가 마땅하지 않았다. 도망쳐서 또 다른 지옥에 도착할까 봐 지옥 같았던 회사 밖으로 나오는 일이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