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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다 Dec 19. 2022

퇴사의 민족이라는 어플은 없나요?

퇴사를 계속 미루는 이유

퇴사도 어플로 주문이 되나요?




직장인들의 서랍을 열면 미리 써둔 사직서 하나쯤은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 그만두고 싶다면 당장 때려치우면 되지 왜 사직서를 서랍에 넣어두기만 할까?


인터넷에는 장난으로 만든 사직서 짤들이 돌아다녔고 나는 부적처럼 저장해서 진짜 사직서라 생각했다. 화가 나면 사직서를 진짜 쓸까 고민하고 결재 시스템에 사직서를 미리 써두면 혹시라도 관리자가 볼까 봐 그저 가짜 사직서만 상상으로 수천번을 제출했었다.

직장생활을 한 지 3개월이 넘어가면서 회사의 업무 방식, 결재 라인, 각 부서에서 하는 일, 어떤 일의 담당자가 누군지 완벽하게 파악했다. 큰 착각이었을까 그 파악은 턱없이 부족했고 퇴사하는 전날까지도 양파 같은 회사의 뒷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회사라는 곳은 정말 어떤 곳일까 풍선에 바람 넣어 불듯이 의문 가득한 한숨만 푹푹 내쉬면서 내 몸의 지방이 부풀어 스트레스로 13KG가 증량했다.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하면서 다른 직장인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퇴사하는지 궁금했다. 또 내가 적어본 퇴사하고 싶은 이유들이 그 이유가 적절한 퇴사 사유인지 스스로 검열해 보기도 했다.


요리가 귀찮은 날에는 치킨이 먹고 싶다면 배달 어플을 켜서 어떤 치킨을 먹을지 선택하고 리뷰를 보면서 사이드 메뉴 맛있는 것도 골라서 결제 버튼을 누르면 간단했다. 밥솥도 취사 버튼 하나만 누르면 20분 뒤에 김을 뿜으면서 촉촉하고 찰진 밥을 완성하는 기계인데, 나는 버튼 하나로 퇴사할 수 없는 기계인가?


퇴사의 민족이라는 어플이 있다면 퇴사 버튼, 이직 버튼, 휴직 버튼을 누르고 그 누구의 동의 없이 나의 사직서가 사장님에게 배달되고 비대면으로 퇴사를 진행하고 싶었다. 늘 이런 삶을 꿈꾸기만 했다.

퇴사는 왜 버튼 하나로 쉽게 되지 않았을까. 매 일 퇴사를 원하지만 사직서를 제출 못하고 말로만 퇴사하고 싶다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무엇보다 첫 직장이라 퇴사가 두려웠다. 워낙 부당한 일을 많이 겪어서 이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는 지금 보다 더 악한 일이 많을 것 같았다. 회사의 문제뿐 만이 아니었다. 처음 먹은 사탕이 달콤해서 황홀한 경험이라면 또 다른 사탕을 먹고 싶었겠지만, 처음 먹은 초콜릿이 달콤하지 않고 구역질이 나는 맛이라면 그 누구도 또 다른 초콜릿을 먹고 싶지 않은 것처럼. 첫 직장은 달콤해 보였지만 그 어떤 것 보다 더러운 맛이었다.

회사는 다 이런 식으로 굴러가는 것이고 어쩌면 다른 회사 사람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기 합리화로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다. 환승 이직을 위해서는 자격증도 갱신해야 되고 근무지가 바뀐다면 거주지도 옮겨야 되고 단순히 퇴사로 끝나는 고민이 아니었다.  


직장인 커뮤니티를 보면 나처럼 퇴사를 고민하지만 퇴사하고 다닐 직장을 못 구해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의 푸념을 읽고 다 나처럼 사는 건가 생각했다. 회사에 불만이 많고 바꾸고 싶은 것도 있지만 그저 기계의 부품 중에 하나처럼 내가 맡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버텨내고 한 달을 이겨내면서 월급을 받으면서 연차가 쌓여가는 것이 삶 인가했다.


반면에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루한 텔레비전 채널을 후루룩 바꾸듯이 이직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도 봤다. 연봉을 1천만 원 올려서 이직한 사람,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한 사람, 한국 기업에서 외국계로 이직한 사람, 해외로 취업을 하면서 한국을 떠난 사람처럼 다양한 직장인들의 모습들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알바를 그만 둘 때는 그만두겠습니다는 말 한마디면 고용관계가 정리되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그만두겠습니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는 그저 월급 자판기라는 사실임을 잊지 말고 칼퇴한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묵묵히 버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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