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전임자에게 귀책사유를 돌리는 일 못하는 사람들
52살의 부장님은 나의 퇴사 소식을 듣고 두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장님의 눈물은 그저 그 사람의 감정의 흔적이고 나는 나대로 퇴사를 위한 일들을 해나가야 했다.
나로 인해 50살이 넘은 성인 남성이 우는 모습을 쉽게 외면할 수 없었지만 그의 눈물이 나의 퇴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퇴사 일은 정해졌고 이제 남은 팀원들에게 하던 업무를 나눠주고 인수인계를 해야 할 차례가 왔다.
직장 생활을 길게 하지는 않았지만 수도 없이 인수인계라는 말을 들어봤다.
어쩌면 직장에서 일 못하는 사람들의 자기 방어 수단이 되는 인수인계는 마법의 단어다.
“김대리님이 그 부분은 인수인계 안 해줬습니다.”
“해당 내용은 인수인계받지 못한 내용이라 모릅니다.”
“인수인계서에 없는 내용인데요?”
짧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흔히 일을 못한다는 평을 듣는 사람들은 늘 인수인계 핑계로 전임자가 담당했던 업무를 이어받은 뒤에 인수인계받은 내용이 없다면서 업무를 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회사에 없는 전임자에게 귀책을 돌려버린다.
전임자가 퇴사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전임자 이름을 운운하며 인수인계받은 대로 일할 뿐이다. 누군가 업무 관련 질문을 하면 본인은 그런 내용을 인수인계받은 적이 없어서 모른다는 태도의 안일한 태도를 취하는 동료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동료를 보면서 먼 훗날 내가 퇴사를 하면 남은 동료들이 내 이름을 말하며 내 탓을 하는 소리를 못하게 하고 싶었다.
인수인계라는 단어는 마법의 단어가 된다. 나는 그런 것 몰라요라며 남탓 하기에 딱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인수인계 탓하는 뜻은 주체적으로 현재 담당하는 업무 파악을 못하고 있다고 티 내는 멍청한 말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 것이 인수인계다.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 후임자가 인수인계를 못 받았다고 말하면 결국 인수자는 바보가 된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인수자는 퇴사하고 없으니까.
예전에 1년 동안 근무하던 곳에서 퇴사를 하면서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한 달 내내 하고 퇴사를 했는데 후임이 하는 말은 “ㅇㅇㅇ가 알려주고 간 것이 전혀 없어서 업무를 스스로 터득하느라 힘들었다” 고 말하며 나의 탓을 했다는 수소문을 들었다. 왜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능력 부족을 인수인계가 부족하다며 전임자를 탓하는 걸까? 내가 목이 찢어져라 설명했던 말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인수인계를 분명히 하고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렵지 않았다. 나는 입사 첫날부터 퇴사를 마음먹었기 때문에 매일 화가 나고 회사 밖을 뛰쳐나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도록 인수인계서를 작성해 놨다. 문제는 이 내용을 누구에게 넘겨주고 또 어떻게 설명하는지가 문제였다.
나의 퇴사와 동시에 동기 2명도 퇴사를 하기 때문에 남은 사람은 경력 없지만 대리 직급을 단 6개월 차 직원 한 명과 갓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4개월 차 신입사원이 남았다.
그 둘에게 나의 업무를 넘겨줄 생각을 하니 막막하고 과연 나 없이 잘할 수 있을까 괜한 걱정도 했다.
매일 해야 되는 업무와 일주일, 그리고 매 달 또 일 년마다 해야 하는 업무로 나눴고 루틴적으로 진행되는 일이 대부분이라 큰 업무 별로 순서도 적어놨다.
타 부서에 협조를 요청해야 하는 업무들은 어떤 식으로 협조를 구해야 빠른 회신을 얻을 수 있는지 꿀팁도 남겼다.
각 업체별로 특징도 적어놨고 담당 직원 연락처도 남겼다. 전체적인 업무의 순서를 설명하고 각 업무를 진행하면서 놓치면 안 되는 부분들도 내가 쌓았던 노하우를 모두 전수했다.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되나 싶은 것도 전부 알려줬다.
팀 전체 메일로 인수인계서를 전달했고 인수인계를 진행하면서도 팀원들이 내가 인수인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듣도록 큰 소리로 또박또박 설명했다.
나의 존재가 회사에 없다면 내 이름도 언급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퇴사를 앞두고 2주 동안 매일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분명 어제 설명을 했는데 다음 날이 되면 똑같은 질문을 하고 전혀 메모를 하지 않아서 메모를 하라고 했더니 이제는 본인이 메모를 어디에 했는지 찾지 못해서 다시 알려달라고 하더라.
내가 설명을 못하는 건지?
목이 아프게 설명한 내용을 또 물어보니까 기운 빠지고 이렇게 멍청한 사람들이 나의 직장 동료였다는 사실에 또 회의감이 느껴진다.
나 퇴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