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퇴사는 첫 남자친구와의
이별과 같아서
첫 직장을 2년 다니고 퇴사했지만 매일 전 직장 회사의 홈페이지를 들어가고 개인 이메일 계정에 연동되었던 구글 캘린더로 회사 소식을 찾아봤다. 자꾸만 나 없는 회사가 어떻게 잘 돌아가는지 괜히 심술이 났다.
전 직장 사람들과 연락을 하면서 누가 퇴사를 했는지, 어떤 직원의 결혼을 했는지, 내 자리에는 누가 앉게 되었는지, 내가 싫어하던 부장은 여전히 아래 직원들을 괴롭히는지 무한한 소식의 호기심이 나를 자극했다.
이제 전 직장을 퇴사하고 일 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더 이상 전 직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지 않다.
구글 계정에 연동되었던 캘린더에서도 완전히 로그아웃을 했고 전 직장 동료들에게도 더 이상 회사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는다. 첫 회사의 퇴사는 마치 첫 남자 친구와의 이별처럼 자꾸만 소식을 찾아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에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들도 없어지는지 전 직장이 불에 타서 망하기를 바라던 나의 복수심도 많이 회복되었다.
첫 퇴사는 퇴사를 한다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지만 퇴사 후에도 계속 마음속에서 머물렀다. 처음이라는 것은 끝이 나도 계속 곱씹게 되나 보다.
내 이름이 붙은 업무라서 사랑했다
그동안 내가 정규직으로 입사해서 가장 오래 회사를 다닌 곳이 전 직장이기도 하고 또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미친놈을 압축해서 만난 곳이라서 퇴사 후에도 꽤 미련이 남았었다.
업무 자체도 내가 꿈꾸던 일이라서 회사와 경영진들은 혐오스러웠지만 담당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내 이름을 담당자로 적고 어떤 일이 문제없이 진행되는데 생각보다 수많은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고
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보기보다 귀찮은 과정들이 많았다. 하지만 업무 옆에 내 이름이 붙으니까 어딘가에서 솟아 넘치는 업무에 대한 사랑으로 큰 문제없이 모든 일들을 다 완성했었다.
업무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연락하는 일이 힘들었지만 피드백을 기다리고 내가 원하는 업무 결과를 얻기까지 기다리는 과정도 재밌던 시절이 있었다.
기다림까지가 소통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어떤 질문의 답을 얻기까지 시간이 오래걸리면 꽤 지치기도 했다. 어떤 업무에 이메일을 쓰고 아래에 내 이름을 쓰는 것은 나에게 직무 자체의 책임감과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어서 애정이 힘듦을 이겼던 걸까?
퇴근을 하고도 바이어에게 연락을 받으면 어떻게든 바이어의 궁금증에 마침표를 찍어주고 싶어서 답장을 해줬다. 토요일에도 쇼핑몰에서 한창 쇼핑을 하다가 바이어에게 통관 관련 연락이 오면 피시방으로 달려가서 문서를 수정해서 바로 다시 전달해 주는 의지가 나에게도 있었다.
무역은 매일 루틴은 같아도 어떤 일이 하나 생기면 해결하는 방법이 꽤 다양해서 지루하지 않았다.
또 생각도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면 방탈출 게임 퀘스트 깨듯이 온갖 수단과 지식을 동원해서
업무라는 방에서 탈출하는 기분이라 스트레스는 확실했지만 배움의 경험치도 분명히 생겨서 나의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성장했다.
업무에 대한 애정은 낮지만 월급은 높으니까
지금은 업무에 대한 애정도 없고 회사에 대한 애사심도 없다. 하는 일이 단순하고 또 커리어적으로 전문성이 키워지는 일도 아니라서
하루종일 회의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이 회사를 언제까지 다녀야 할까? 일을 하면서 이왕이면 하루에 9시간 이상 보내는 곳이라면 대충 시간을 때우고 책상에 앉아서 자리만 지키는 것보다 생산적으로 업무 결과를 내고 그 과정을 통해서 나의 업무 지식이 쌓이는 일을 하고 싶다. 전 직장 보다 일은 없지만 복지와 보상이 훨씬 좋아서 큰 불만 없이 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곳에서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치는 어디까지 일지 매일 궁금하다.
이직을 하면 모든 불행이 끝나고
행복한 일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
출근이 즐거운 직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회사든 스트레스의 모양만 다를 뿐 회사라는 곳에서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일을 하기 위해서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꼬여버린 일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기도 한다.
입사를 하고 뼈를 묻겠다고 다짐하던 첫 회사에서 뼈를 묻기도 전에 나의 정신력이 박살 날 것 같아서 결국 퇴사를 했다. 이직을 한 현직장에서도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 돌아가는 꼴을 보니 개판이다. 어떤 회사든 다 허점은 존재한다.
그 허점을 감당 가능할 만큼 좋은 복지가 존재한다면 조금은 더 누려볼 만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일을 하고 있으니 조금은 이 달콤함을 더 맛보고 싶다.
통장에 한 달에 한 번 들어오는
그 숫자가 뭐길래 직장을 다녀야 하는 걸까
구석기시대에 태어났다면 욕심 없이 물물교환을 하며 고요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
하지만 그때도 조직 간의 갈등이 있었겠지?
요즘은 직장이라는 의미보다 회사 밖을 벗어나 또 다른 회사에서 나의 책상을 차지할 수 있는 나의 직업의 기술 자체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직장이라는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직업이라는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일이 좋아서 계속 지속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애정을 소유한 사람이 부럽다. 일을 하다 보면 좋아하던 일도 싫어진다는데 어떻게 한 분야에서 장기 근속 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나의 직업이 돼서 밥벌이를 해주는 것도 아닌 것이 이 삶이다.
매 달 내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이 어느 날 갑자기 멈추게 된다면 불안한 미래에 사로 잡힐 것을 잘 알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승이직을 한다. 이직처가 정해진 후에야 비로소 정직하게 퇴사를 한다. 어쨌든 통장에 입금되는 월급이 멈추는 순간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30살이 돼서도 여전히 직업에 대한 방황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나이는 저절로 먹지만 직업은 저절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른의 삶은 경제활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끔찍한 사실을 깨닫고 오늘도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