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은 취업의 시작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매일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 전공을 키워드로 검색했다.
취업도 알바처럼 구직사이트에 들어가서 내 마음에 드는 회사를 찾아 이력서를 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채용공고를 하나하나 보면서는 나의 얼굴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입에서는 쌍욕이 나왔다.
도무지 알 수가 없는 키워드로 적혀 있는 직무 설명과 요구하는 자격증과 조건들을 보니 내가 지원서를 제출할 회사가 하나도 없었다.
그냥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계속 구직 사이트만 들어갔다. 채용공고를 많이 봐서 이제 회사 이름, 인사 담당자의 이름까지 다 외웠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나는 월급을 받아 한 달 먹고사는 한달살이 직장인보다 누구보다 안정적인 직업, 적당한 급여, 정시 퇴근이 보장된 일이라는 완벽한 3가지 요건을 갖춘 직업을 갖고 싶었다. 두 번 다시 취업을 하고 싶지 않아서 처음 하는 취업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회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공기업 채용공고를 확인했다. AI 면접은 또 뭐야? 전공시험은 뭐야? NCS는 또 뭔데?
내가 한국에 없는 사이에 취업시장도 많이 변했다.
채용공고를 확인하니 공기업은 컴활, 한국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한다.
남들이 다 갖고 있으니, 꼭 있어야만 한다.
공기업 채용 공고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알 수 없는 한국어 단어들은 너무 낯설었다.
NCS, 토론면접, 논술 면접, 모듈형
너무 어려운 취업 세상의 현실에 덜컥 겁이 났다.
그 누구도 취업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알려준 사람은 없었다.
내가 가고 싶은 기업을 정하고 그 기업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게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가장 문제는 가고 싶은 기업이 없다. 여기서부터 취업의 시작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그동안 이것저것 해 본 것은 많은데, 막상 취업의 문을 열어보니, 내가 했던 것들이 쓸모가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잠시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능을 보기 싫어서 지원한 고등학교 옆, 집 바로 앞에 지방 사립대에 합격했다.
수시로 합격했으니 수능 공부를 접었다. 이때부터 나의 머리는 굳기 시작했나 보다.
대학에 입학하고 전공인 제2외국어 공부가 너무 재밌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주말에는 12시간씩 서빙을 하면서 돈을 마련해서 어학연수도 가보고, 행정실 조교 언니의 추천으로 학부생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소 조교도 해 보며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방학 땐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음 학기에 쓸 용돈을 위해서 알바만 했던 기억뿐이다.
대학생 때, 대외활동이며 인턴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빨리 정했다면,
그에 맞는 일들을 차곡차곡했을 텐데 세상이 어떻게 정답대로 살 수가 있을까?
남들은 졸업 전에 영어 점수를 만들어 놓고 졸업을 하는데 나는 한참 늦어도 늦었다.
졸업기준에 맞는 영어점수를 만들지 못해서 한 학기 졸업을 유예했다.
졸업유예를 하면서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자소서를 쓰면서 러시아어를 전공했지만,
취업시장에 내놓을 실력이 아니라 막막했다.
습관처럼 페이스북을 보다가 어떤 공고 하나를 보게 됐다.
설마 내가 되겠어? 했던 곳에 서류를 지원했고 예상치 못한 속도로 면접을 합격했다.
러시아어 전공자 우대로 해외인턴에 합격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합격자들 스펙을 보게 되었는데, 내가 영어 점수 꼴찌에 내 스펙이 제일 터무니없었다.
붙은 것이 신기할 정도 내가 가진 영어점수가 가장 낮았고, 나의 학력이 가장 보잘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합격이라는 기회를 준 회사에게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이대로 나의 인생도
두루마리 휴지처럼 술술 풀릴 줄 알았다.
해외 인턴생활이 끝나고 경험했던 직무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를 찾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인턴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유럽여행을 했다.
돈이 있고 시간이 있을 때, 유럽을 가기로 했다. 유럽여행이 끝나고 영어를 잘하고 싶었고 영어공부를 해야겠다고 느꼈다. 약간의 한국에서의 취업을 해야 하는 현실도피성으로 캐나다 어학연수 1년을 결심했다.
캐나다를 가기 전에는 1년 다녀오면 내 영어실력이 엄청나게 향상할 줄 알았다.
다녀오니 역시나 엄청난 실력 향상은 없었다. 캐나다에서의 1년은 영어공부보다는 뚜렷한 목표가 없어
시간을 낭비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캐나다에 갔던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캐나다에 갔을까?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귀국 후에 취업의 험난한 현실을 제대로 직시했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도망칠 곳이 없었다.
안정된 직업인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 볼까, 다시 대학을 갈까?
그냥 아무 데나 취업을 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정말 나의 머리에는 답이 없는 생각과 고민들이
매일 밤 가득 차서 꼬불한 뇌가 숨을 쉬지 못했다.
내가 한 인턴경험은 국제협력 관련 기업 취업이 아니면 쓸모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노어 전공을 살려서 통번역대학원 입학을 할까 생각도 해 봤다.
여러 생각을 해 봤지만 생각의 꼬리는 또 다른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아직은 취업에 대해 잘 모르겠다.
일단은 남들이 다 갖고 있는 흔히 말하는 선택이 아닌 필수 스펙을 쌓기로 했다.
그런 결론을 내리고 조금 더 내가 갖고 싶은 직업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어차피 취업을 해도 진로에 대한 고민을 계속될 것 같았다.
조금 늦어도 오래 일 할 직업을 갖자.
틀린 길을 빨리 가는 것보다 옳은 길이라도 천천히 가면 된다는 마음으로 나를 위로했다.
그런데 그 위로의 약효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취업을 하기 시작해야 함을 알았을 때, 나는 더 이상 내가 대학이라는 소속에 속할 수 없었다. 내가 이 사회에서 소속되지 못하고 어디에 껴야 할지 몰라서 두리번 눈치를 보고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100명의 사람들이 3명씩 그룹을 만드라는 미션이 있는데, 나는 2명을 찾지 못해 혼자 저 멀리 앉아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