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중이신가요?
요즘 저장되어 있지 않은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자주 온다.
혹시나 택배 전화일까 봐 받으면,
안녕하세요. ㅇㅇㅇ님이시죠?
사람인 보고 연락드렸는데, 아직 구직 중이신가요?
네...?
처음엔 내가 열람했던 채용공고의 인사담당자가 내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한 줄 알았더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스팸이었다.
가장 전화가 많이 오는 곳은 xx생명인데 내가 아는 금융업의 정규직 행원이나 전문 직원이 아니라 금융 서비스를 빙자한 전화를 돌리는 영업 업무인 것 같다.
그럴 때면 금융업은 관심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말하고 끊어버린다.
전화를 끊고 드는 생각은 이런 전화라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나? 잠시 앉아서 또 생각의 동굴로 들어가 본다.
나 대학을 왜 나왔지?
지금 내가 왜 이런 전화를 받고 있어야 할까?
이런 일이라도 해야 될까?
또 이렇게 받는 전화는 내가 백수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는데 다시금 나의 신분을 아주 확실히 상기시켜준다. 그래서 그런 전화가 고맙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이력서 비공개를 해 뒀다. 저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은근 스트레스를 받고 작디작은 나의 자존심이 더 작아져 버린다.
또 드는 생각은 저런 전화를 돌리는 사람은 알바일까? 직원일까? 전화하는 핸드폰은 사비로 요금을 낼까? 회사에서 내줄까? 저런 일을 하는 사람도 원해서 하지는 않겠지, 그들도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내가 너무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나 살짝 후회가 되기도 했다.
내가 지금 남의 밥벌이를 걱정할 때가 아닌데 말이야.
USB를 정리하다가 몇 년 전에 인턴을 위해 쓴 자소서와 사람인 공고를 보고 처음 기업에 제출했던 자소서를
다시 읽어봤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간절했는지 돈을 주고 자소서 첨삭도 받았었다.
결과는 탈락이었지만, 돈을 내고 자소서를 쓰는 방법을 배워서 그걸로 만족했다.
인턴을 위해 썼던 자소서는 합격이었는데 아마 그냥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서류 합격은 다 시켜줘서 저런 쓰레기 자소서도 합격이 됐었나 보다?
또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는데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 기록부를 봤다.
자소서에 쓸 몇 가지 성격의 장점과 단점이라든가 뭔가 쓸 것이 필요해서 저장해뒀는데,
나는 꾸준히 심리학자가 되고 싶었구나
뜬금없이 헤어디자이너도 되고 싶다고 쓰여있었다.
그래도 내가 어렸을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지 모르고 있을까?
나는 심리학자가 되고 싶어서 심리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내신 성적의 부족함으로 원서조차 낼 수가 없었다.
혹시, 그때 내가 죽을 듯이 공부를 해서 정시로 심리학과를 갔다면
지금 난 심리학 전공을 이어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난 야자도 안 빼먹고 참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은데
성적은 그만큼 오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나를 보면 하는 말이
캐나다 갔다 왔다며 좋았어?
이제 영어 잘하겠네?
두 질문에 다 할 말이 없다.
엄청나게 좋지도 않았고, 영어도 마찬가지다.
캐나다에서 있었던 기억을 지우고 싶은데 그만 좀 물어보면 좋겠다.
영어? 아니 뭐 거기서 대학을 다닌 것도 아닌데
그리고 내 나이가 27살이에요
조기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데
무슨 1년 다녀온다고 영어가 늘어?
그전에 어디 다친데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다 왔는지 나의 안부를 물었으면 좋겠다.
취준생이 되고 나서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감정이 쉽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인생을 되돌아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꾸준히 그 일과 관련된 경험을 쌓은 것이 아니라
그냥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했었다.
그러니 딱히 경험이라는 것이 일관성이 없고, 박쥐처럼 여기에서 일하다 저기에서 일하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줏대가 없어 특성화된 능력이 없었다.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경영학, 행정학, 경제학의 두꺼운 책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운 것도 아니고 교양수업에서 경영학의 '경'자도 들은 적이 없다.
나는 4년 동안 러시아어 학원을 다닌 기분이다. 제2 외국어를 대학에서 전공했다는 사실이 취업을 하면서 이렇게 큰 걸림돌이 될 줄을 몰랐다. 등록금이 아깝지는 않다. 성적 우수로 장학금을 받아 내 돈을 낸 금액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 다행이네.
해외 경험이 많은데 그에 맞는 언어 실력이 안되니
말짱 도루묵이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그냥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아직 30살이 되려면 3년이나 남았다.
괜찮다.
어떤 사람은 32살인데 신입으로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이지 않는 흐린 미래가 답답해서 현실의 내 상황이 조급해서일까?
젊을 때 해 봐야 한다는 그 경험들이 조금은 밉다.
그때 내가 해외인턴을 포기했으면,
지금 다른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을까?
작년에 내가 캐나다를 가지 않았으면,
지금 다른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을까?
두 가지 경험의 공통점은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았던 삶의 기억들이다.
역시, 도피를 하면 안 되는데, 두 번이나 도피를 해 버렸네?
이제 더 이상의 도피는 없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나의 선택을 자꾸 후회했다.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해외인턴을 가고, 캐나다를 갔다 왔어도 그 결과들이 성공적인 선택이었는지 아무도 판단할 수가 없다.
앞으로 미래는 또 내가 그려나가면 된다.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자.
길을 걸어가려면 앞을 봐야지. 뒤를 보면 어떡해?
내가 A라는 직업을 가져야지~ 한다고 A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A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 살다 보면 A라는 직업과 유사한 B라는 직업이라도 갖게 될까?
아님 전혀 예상하지 못한 C라는 직업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Everyday is a new day
매일매일이 설렌다는 말을 듣고
나도 힘이 생겼다.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몰라도
매일매일 뭔가를 하다 보면
뭐라도 되어있겠지
존중하며 버텨보자
재재 님과 밀라논나님의 유 퀴즈 방송 편이 참 위로가 많이 되었다.
나의 꿈을 존중하며 나 자신을 존중하며 버텨보자.
취업을 하면서 이 삶이 너무 힘들어도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