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나라 캐나다, 그곳은 천국이었을까
치근덕 거리는 남자들에게 정이 떨어졌고, 성희롱 발언을 남발하는 남자들에게 치욕감이 들끓었다.
애는 언제 낳을 거며, 결혼은 언제 할 거며, 화장을 하니 예쁘다, 치마를 입으니 여자 같다.
얼굴이 예쁘니까 결혼을 빨리 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을 안 하면 안 된다. 젊을 때 얼른 애를 낳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차라리 청력을 잃었으면 좋겠다는 불행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10개월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고, 흐른 시간만큼 나의 정신력이 강해졌다.
업무를 하면서 영어로 회의를 하고, 영어로 진행되는 세미나에 참여할 때마다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은 그런 막연한 꿈이 생겼다.
무한한 추진력을 가진 나는, 마음을 먹으면 꼭 해야 하는 병이 있다.
그리고 해외에 여러 번 나가 살다 보니 좋은 기억이 안 좋은 기억보다 더 많이 그리고 강하게 남아서 나는 또 해외살이를 결심한다.
살기 좋은 나라 상위권에 꼽히며, 좋은 교육, 좋은 날씨, 선진국이라 유명한 캐나다로 가게 된다.
사람들의 명성만큼 캐나다는 내가 살기에 아주 좋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캐나다는 유토피아, 정말 살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말을 믿고 있었다.
막상 캐나다에 오니 캐나다 삶에 대한 나의 달콤한 솜사탕들이 다 물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
분명한 점은 캐나다는 선진국이라 할 만큼 좋은 면이 꽤 많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좋은 점만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캐나다에서 지냈던 도시는 밴쿠버이다. 레인 쿠버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비가 자주 오는 곳이다.
우선, 비가 자주 오니 날씨가 주는 감정의 어두움이 굉장히 크고 무기력함도 엄청났다.
영어를 꽤 잘한다고 자신감을 갖고 한국에서 살았는데, 막상 캐나다에 오니 나의 영어 수준은
유모차를 타고 지나가는 아기보다 못하더라.
캐나다에 살면서 한국에서는 생전 느끼지도 못한, 경험하지도 못한 감정들과 고민들로 내 인생 최대의 현타를 겪게 되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우선,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집을 찾아야 했고, 통장을 개설해야 했고, 핸드폰을 개통해야 했다.
교통카드를 구매해야 했고,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일자리를 찾아도 문제가 생겼고, 집을 찾아도 고민은 끝이 없었다.
친구가 없었다. 마음을 털어놓고 짜증 나는 하루를 지워버리고 싶은 날, 편하게 맥주라도 마시며 서로의 짜증을 날려버릴 친구가 한 명 없었다. 너무 외로웠다. 나만 혼자 이 세상에 남겨진 기분이었다.
뭘 하고 싶어도 같이 할 사람이 없으니 의욕이 점점 없어져
침대에 누워서 넷플릭스 보고 유튜브에서 동영상만 보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캐나다에 왔는데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를 사귀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긴, 그냥 친구도 사귀기 힘든데 외국인 친구 사귀기는 더 힘들지.
같이 사는 집주인이 짜증 났다. 갑질이 이런 거구나.
남이랑 같이 사는 게 너무 짜증 나고 불편했지만, 혼자 살 집을 찾기엔 돈이 없었다.
요즘에는 인터넷과 매체들이 발달해서 아주 좋은 분들이 유용한 정보들을 공유해 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인생은 늘 제품 사용설명서처럼 1번을 하고 2번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번을 다 하고, 2번을 하려고 하니 장애물이 하나 생겨서 그 장애물을 건너려고 애를 쓰지만, 쉽지가 않다.
그 장애물은 생각도 못해봤던 것이라 어떤 방법으로 넘어야 할지 내공이 없는 것이다.
매일 푸는 기본 수학 문제는 쉽게 풀지만, 처음 보는 문제는 어떤 수학공식을 써서 풀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낯선 문제에 새로운 고민에 머릿속은 터져가고 우울함은 깊어만 갔다.
나의 답답함을 털어놓을 말이 통하는 친구가 없고, 영어로 이런 속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다 잘 될 거야라는 해맑은 긍정의 대답만 돌아왔다.
나는 고민이 있으면 친구에게 털어놓고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는 공감을 얻고 싶다.
그 후에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해 보면 낫지 않을까 조언을 얻고 싶다.
무조건 잘 될 거야, 다 괜찮을 거야라는 희망고문은 엄청난 우울함을 느끼는 사람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위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