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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여 Aug 09. 2021

자연에 마음이 동하는 이유

토요일 아침이다. 질끈 묶은 머리에 푹 눌러쓴 모자, 고양이 세수를 한 상태로 카페로 향한다. 거기서 커피와 빵을 사서는 집 근처의 공원에 간다. 넓은 잔디밭에 의자와 테이블을 펼쳐 놓고 시원한 커피를 홀짝홀짝.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가져온 책도 몇 장 읽는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나무와 꽃, 강물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자연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UHD TV 조차 구현하지 못하는 생생한 자연의 색감 때문일까, 코 끝에 와닿는 신선한 향기 때문일까.


멍하니 눈앞에 펼쳐진 푸른 잔디밭을 보다가 문득 바람에 움직이는 잎사귀에 시선이 멈춘다.

자연이 좋은 건 바로 '움직임'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다. 해가 저물어도 가게의 네온사인은 꺼지지 않으며 공장은 돌아가고, 도로는 끊임없이 오가는 차로 가득하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멈추지 않는 도시'로 표현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 광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시의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다. 전기, 기름, 태양열 등 다양한 에너지에 의해 움직인다. 다시 말해 에너지 없이 자체적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이다.


시멘트나 벽돌로 지은 단단한 건물들은 항상 그 자리에 우뚝 서 있고 색색의 신호동, 표지판도 가만히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도 마찬가지다. 도로를 점령하는 수천수만 대의 자동차도 기름이 없으면, 사람이 시동을 걸지 않으면 한 걸음도 떼지 못한다. 이 도시에서 인간을 제외하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멈춤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자연은 예외다.



버드나무가 길게 늘어뜨린 잎과 가지

민들레의 가느다란 줄기와 솜털 같은 씨앗

눈부시게 파란 물결


자연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바람이 불면 긴 이파리들이 뭉쳐져 마치 줄다리기를 하는 아이들처럼 다 같이 드러눕기도 하고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풀꽃들은 사방으로 고개를 흔들며 춤을 춘다.


바람이 쉬어가는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미세한 속도로 성장하고  스러져 가며 생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이 마지막 울음이라는 듯이 목청  울어대는 매미도, 쉬지 않고 뛰어다니는 솜털 같은 강아지도 그렇다. 생명을 가진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별, 지구는 계속해서 자전하고 있으며 저 멀리 우주의 은하도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


이렇듯 움직이는 행위는 생명과 직결된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깨닫고 에너지와 생명력까지 느낄  있다.


사람의 몸과 마음도 자연과 닮아있다.  태어난 아기는 위로 쭉쭉 뻗어가는 동시에 노인은 아래로 굽어간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우울했다가 유쾌했다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이렇게 어떤 욕구나 감정 또는 기운이 일어나는 일을 '동하다'고 한다. 움직일  한자를 써서 마음도 움직인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문명을 이륙함과 동시에 움직임의 주체가 되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인간이 시동을 걸거나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멈추고 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움직임을 통제하는 힘을 갖춘 인간은 자연에서 자유를 느낀다. 통제할  없는 움직임을 보고 느끼며 몸과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다.


자연 앞에서 겸손해진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아등바등하며 모두 손에 쥐려 하지만 그것을 놓아 버리고 차분히 관망하는 순간 우리에게 더 큰 자유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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