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라는 말 앞에서

그날의 식탁

by 이서


저녁 식탁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왜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냐는 말.


아빠는 말했다.

“정신력이 약해서 그래.”


나는 숟가락을 들고 있다가 잠시 멈췄다.

밥 위로 김이 오르고 있었고,

그 말은 그 김보다 더 빠르게 식탁 위를 식혀 버렸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아빠, 나 학생 때 왕따 당했을 때

자살하고 싶었어.”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숟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빠는 회사 이야기를 꺼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동료.

“그럴 용기로 한 번만 더 따지지.

아니면 회사를 그만두면 되잖아.”


그 말이 틀렸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정말 강한 사람들이 있다.

끝까지 버티고, 맞서고, 떠날 줄 아는 사람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다.


용기란 게

마음속에서 자동으로 생성되는 물질은 아니니까.


누군가 한 사람쯤은

내 편이 되어 주어야 겨우 생기는 것 아닐까.




그때의 나는 학생이었다.


한국에서 학생은 쉽게 도망칠 수 없는 신분이다.

학교는 ‘그만두면 되는 곳’이 아니라

‘버텨야 하는 곳’에 더 가까웠다.


만약 내가 그때

“학교 그만둘래”라고 말했다면

엄마 아빠는 정말 그렇게 하라고 했을까.


나도 안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했다.

엄마는 전업주부였고, 우리에게 모든 시간을 쏟았다.


하지만 사랑과 알아차림은

항상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신호를 보냈지만

소리는 아주 작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더 크게 말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교실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으니까.




아빠가 말한 “그 용기로 살지”라는 문장.


그때의 나에게는

그 용기가 없었다.


온 사방에서

내 이름이 비난으로 불릴 때

어디서 힘을 끌어와야 했을까.


용기란

고립된 사람에게는 사치일 때도 있다.




나는 오늘

아빠의 말을 반박했다.


“아빠,

그 사람이 나약해서 그랬다고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해줘.”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말이 이제는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요즘

이렇게 오래된 상처를 꺼내어 말하는 연습을 한다.


말하면

조금은 덜 부끄럽고,

조금은 덜 아프다.


예전의 나는

사라지는 연습을 했지만,


지금의 나는

남아 있는 연습을 한다.


조금 더 덤덤하게,

조금 더 솔직하게.


그때의 나를

이제는 내가 편들어 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