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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Apr 09. 2019

일의 짜임새

365명의 직원에게 분담하기

일하기 싫다. 숙제하기 싫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조금만 더 있다가 하자. 조금 있다가 펼쳐도 재미없는건 여전하다. 마감일이 코앞이니 하기는 해야 하는데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협업을 하면 각자 맡은 역할이나 업무에 책임을 져야 팀에 피해가 되지 않는다. 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면 내 평판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책임감 때문에 억지로 하기는 하지만, 재미있어서 하는건 아니다.


하기 싫은 일은 뒤로 미루게 되는게 인지상정이다. 당장의 고통은 피하는게 상책이기 때문이다. 싫은 일을 대면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애초에 왜 싫을까. 

일이 하기 싫은 이유는 거기서 관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종이로 된 영어사전을 펼쳐서 순서대로 단어를 외운다고 생각해보자. 그것을 재미있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단어들이 어떤 관계도 없이 그저 나열되어있다면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어떤 현실적인 이유로 연관성이 전혀 없는 개념들을 외워야 한다면 기억의 궁전 (mind palce) 방법을 사용한다. 가상의 공간을 떠올리고 그 공간 내부에 배치된 가상의 물건들의 관계를 차용해 원래는 서로 무관한 개념들을 관계짓는 기억술이다. 아무 의미 없는 암기보다는 낫지만, 기억술은 원래는 무관한 개념들을 억지로 관계짓는 것이므로 해내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노력이 필요하다.


잘 짜여진 이야기는 재미를 준다. 이야기 안의 많은 요소들이 서로 긴밀하게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좋은 이야기일수록 등장인물과 사건의 짜임새가 거시적으로도 미시적으로도 짜임새있다. 재미있는 영화나 소설이 그렇다. 친구와 카페에 앉아서 몇 시간동안 수다를 떨고, 이후 몇 달 후에 그 친구를 다시 만나면 예전에 수다를 떨었던 내용이 그대로 떠오른다. 처음부터 잘 짜여진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짜임새를 일부러 구축하는 노력 없이도 장기적으로 기억되기 쉽다. 머리에 정보를 저장한다는 결과는 같다고 치더라도, 짜임새에 따라서 일의 효율이 다르다.


싸구려 영화는 내용이 궁금하지도 않고 결말이 뻔히 예측된다. 스토리에 짜임새가 없고 단선적이다. 옷감으로 치자면 실밥이 풀어진 싸구려 옷과 같다. 공부가 보통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어떤 개념이 다른 개념들과 이리저리 관계된 것인데 무시하고 해당 개념만 효율적으로 도려내어 배우겠다고 들면 오히려 잘 이해되지 않는 비효율을 감당하게 된다. 


소설에도 짜임새가 있고 음악에도 짜임새가 있고 수학에도 짜임새가 있다. 사람이 손대어 만드는 모든 작품활동의 결과물은 그 짜임새가 높을수록 고급의 좋은 것으로 친다. 단선적인 짜임새보다는 이리저리 엮인 짜임새가 재미를 일으킨다.

관계의 짜임새가 재미를 일으키고, 재미가 있는 일은 높은 효율로 할 수 있다.


이번에는 회사의 관점으로 생각해보자. 글을 적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경영도 일종의 작품활동이다. 회사라는 작품을 짜임새있게 만드는 일이다. 직원을 고용해서 지시하는 일에는 주기 (cycle)가 있다. 자본이 투입되고 일이 시작되고 진행되고 마감되어 부가가치를 회수하기까지가 한 회의 주기다. 이 주기의 각 부분마다 담당 직원이 배치된다. 하나의 주기가 길고 복잡할수록 그 안에 속한 직원은 전체 맥락을 알 수 없게 된다. 대기업의 제조공정이 그렇다. 전체 일을 한 사람이 다 알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하나의 부분만 도맡아 일한다. 사람이 인지할만한 짜임새가 없으므로 직원은 그 일에서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그러므로 일을 분담하면서 효율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일의 온전한 짜임새를 유지하는 선에서 분담해야 한다. 온전하다는게 무엇인지는 아래 글을 참조하자.


어느날 일이 몰리면 직원을 더 고용하거나 내가 분신술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미래의 자기 자신을 현재 나의 분신이라고 생각해보자. 하루 뒤의 나, 이틀 뒤의 나, 일주일 뒤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 협업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일년간 365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경영자다. 어떻게 일을 분담해주어야 직원들이 지겨워하지 않을까를 경영자 및 직원의 입장에서 동시에 고려해보자.


아래 그림에서 아래쪽은 전형적인 작업처리 방식이다. 시간을 따라서 컨베이어벨트의 각 부분을 담당하는 직원이 전체 일의 특정 부분만을 처리한다. 재미가 없음 (-_-)은 물론이다. 사장의 편한대로만 생각하자면 이 방식을 선호하게 된다. 


아래 그림에서 윗 부분은 시간을 따라서 늘어선 여러 직원이 하나의 스토리를 공유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전체 맥락의 어느 짜임새를 이루는지 이해하고, 전체 스토리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하여 당장의 자기 눈앞의 일을 한다. 일이 재미있기 위해서는 전체 짜임새가 손상을 입지 않도록 분담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년간 고용하는 직원이 365명이라고 생각해보자. 하루에 한 명씩 고용하고 해고하기를 반복한다. 자기 자신이다. 일을 병렬로 시킬 수 없다는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365명의 직원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업무지시를 잘만 해준다면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인력이다. 


정해진 일을 공평한 양 기준으로만 쪼개어 365명의 직원에게 분담한다면 직원 한 명 한 명의 일에 대한 의욕이 하락한다. 전체 일의 짜임새를 해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어책 한 권을 떼는데 오늘은 열페이지, 내일은 또 열 페이지 하는 식으로 분담하는 식이다. 일을 시키는 사장 입장에서는 편한 계산이지만 일하는 직원 입장에서 일할 맛이 날 리 없다. 


일을 분담하더라도 이야기의 완결성이 여전히 유지된다면 어떨까. 예를 들면 잘 써진 책 한권 분량의 소설은 각각의 챕터로 나누어도 여전히 완결된 이야기다. 하나의 챕터는 각각의 문단으로 나누어도 여전히 완결된 이야기다. 쪼개진 일을 부여받은 직원은 자기 일만 두고서도 여전히 한 덩어리의 온전한 짜임새를 가져야 한다.


사장 편한대로 맥락을 쪼개어 업무지시를 하면 직원은 직원대로 지치고 결과도 좋게 나오지 않는다. 어느 회사이든지 직원들이 재미있게 일해야 결과의 효율이 높다. 자기가 자기에게 일을 지시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의 재미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분담하려면 아래 두 문장을 기억하자.

전체 짜임새가 손상을 입지 않도록 분담하고
쪼개진 일이 그것만으로도 여전히 한 덩어리의 온전한 짜임새를 갖도록 분담한다.


진짜 문제는 아무도 이들에게 어떤 말도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은 전국에서 특수기술부대로 이들을 선발했고 여기에 뽑힌 사람들은 기술적 능력이 있는 영리한 고교 졸업생이었다. 군은 이들을 로스앨러모스로 보냈고, 막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IBM 기계로 하는 것인데, 카드에 펀칭을 하면서도 여기에 쓰인 숫자가 무엇인지 몰랐다. 아무도 그게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았고 일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 이들 기술 인력에게 해야 할 것은 제일 먼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해 주는 것이라고 내가 주장했다. 오펜하이머가 보안부서에 가서 특별 승낙을 받았고, 우리가 하는 일에 관해 내가 강의를 했다. 그들은 모두 흥분했다.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는 거야! 이게 무엇인지 이제 알았어!."

그들은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알았다. 압력이 높게 나오면 에너지가 많이 방출된다는 뜻이고, 또 이렇고, 저렇고. 그들은 자기들이 무얼 하는지 알았다. 

그 다음부터는 상황이 정반대로 되었다! 그들은 일을 잘 할 수 있는 개선책을 스스로 만들었다. 그들은 조직을 개선했고, 밤중에도 일했다. 그들은 밤에도 감독할 필요가 없았다.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필요가 없었다. 그들 자신이 모든 것을 이해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몇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내 어린 동료들은 완전히 일에 몰두했고, 내가 할 일은 그들에게 설명을 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홉 달 걸려 세 문제를 풀던 것이 나중에는 석달에 아홉 문제를 풀게 되었다. 거의 열 배나 빨라진 것이다. 
                                                                                                              -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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