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기 Jul 20. 2021

괜찮아, 별일 아니야

[멘탈잡기_6] 완벽함에서 벗어나는 주문

남편은 아이 돌보는 데 소질이 있는 편이다. 조카아이와 몇 시간씩 같이 있을 때면 까르르 자지러지게 재미나게 놀아주기도 하고 피곤하면 피곤한대로 적당히 곁에서 쉬어가면서 잘 지낸다.


조카는 사내아이라 그런 조그만데도 힘이 좋고 몸을 쓰면서 노는 걸 좋아한다. 아파트에서 조심히만 지내던 아이 시골 할머니 집에서는 원 없이 뛰어다닌다. 그날도 역시나 힘껏 내달리다 그만 철덕 넘어져버렸다.


깜짝 놀라 뛰어가려는 나를 남편이 잡고는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쉿, 어른이 놀라면 애가 더 놀랄 거야.' 아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데 피는 안 나지만 무릎이 살짝 쓸렸다. 일어서서는 무릎을 한번 보고 울까 말까 하는 얼굴로 우리를 한 번씩 보는데 남편이 말했다.

"괜찮네. 괜찮아.  아프지?"

아이는 끄덕끄덕 했다.

"별로 안 아프다 그치? 씩씩하다. "

조카는 무릎을 다시 한번 보더니 툭툭 털고 고개를 들어 씩 웃었다. 남편도 같이 웃었다. 곧 언제 넘어졌냐는 듯 폴짝폴짝 뛰어다니다 남편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하며 논다. 발랄한 녀석 같으니라고.


나중에 물어보니 남편은 본인도 그렇게 컸고, 조카도 자기네 핏줄이니 이게 맞을 거란다. 안 아프다고 해주면 정말 아프지 않다고. 넘어지거나 다쳤다고 호들갑 떨지 않고 '괜찮아. 별일 아니야. 툴툴 털어버리자'하 대하는 게 더 좋았단다. 그래야 큰 잘못을 해버렸나 겁먹지도 않고 넘어져 부끄러운 마음도 덜어진다고. 진짜 별일 아니게 되는 거라고.

정말 아팠다면 우리를 볼 새도 없이 울음부터 터졌을텐데, 그러고보니 이걸 어쩌나하는 표정으로 우리의 반응부터 살폈던거였다. 걱정하고 놀라면 아픈 김에 응석 부릴테고, 그러게 왜 뛰어다니냐 혼내면 기죽어 눈치를 봤을테고, 넘어졌다고 놀려댔다간 자존심 상했겠지.


남편이나 나나 자식이 없기는 마찬가지라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한번 넘어져놓고도 또 넘어질까 겁내지 않고 잘 뛰노는 조카아이를 보면 맞나 싶기도 하고.




'괜찮아'하고 넘기는 것이 생소하고 어색했던 지난 시간이었다. 사고가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책의 소리를 던져댔다.


왜 그런거야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하니

대체 생각이 있는거니

또 이래 또 꼴 좋다

넌 정말 문제야


무어라도 잘못했다 싶으면 자신을 질책하고 자책에 빠져야 될 것만 같은, 아픔은 더 절실하고 크게 느껴 당연하다는 듯이, 어쩌면 나는 호되게 혼나야 마땅한 인것처럼 굴었다. 문제의 경중을 떠나서 괜찮다며 넘겨버리기는 어딘지 무책임한 것만 같기도 했고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나 철저하게 처리하고 싶었고 그래서 인쇄한 서류에 오타를 발견하거나, 교통카드를 두고 와서 지각을 하거나, 보일러를 끄지 않고 외출하거나 하는 일 따위로도 과할 정도로 진지하게 반성하고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방도를 궁리하곤 했다. 당연하게도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조심하고 철저함을 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그 모든 일들에 완벽을 기하는 건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것이다.


나는 신이 아니며

완벽한 드라마속 캐릭터도 아니다.

애석하게도, 나는 실수를 피할 수 없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어쩌면 곧 잘못할 것이다.


아마 살아가면서 계속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겠지만 어떤 일들은 너무 사소해서 고민하는 시간이 더 아깝기도 하다. 또 어떤 일들은 너무 자주 일어나는 일이어서 아무리 조심해도 또 실수할 일이기도 하다. 정말로 일이 벌어져버렸지만 실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조금 번거로울 뿐인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지레 '큰일이다, 이런 큰 잘못을 하다니'하고 마음먹으면 정말로 크게 힘들고 자괴감이 들곤 한다.


내 실수와 내 잘못으로 조금 더 힘들거나 귀찮은 상황이 올 수는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한은 너무 질책하지 말자. 조금 아플 수도 있지만 견딜만 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넘어졌다고 바라보고 기댈 어른은 없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말해주어야지.


괜찮아. 별일 아니야.
아프니? 생각보다 견딜만하지?

괜찮아. 지나갈 거야.

사고를 어떻게 수습할지는 그 후에 생각하기로.



매거진의 이전글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불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