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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Sep 10. 2021

등가교환이 아니라 농사짓기였어

[멘탈잡기] 인간관계는 수확을 예측하기 어렵다

세상 모든 것이 등가교환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잃는 것이 마땅하다고. 무언가를 원하면 또 그에 맞는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고. 렇다면 내가 선하게 살면 합당한 무언가를 얻는 것도 마땅해야 등가교환이다.


하지만 좋게 좋게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잘 대하려 애쓰다가도 허탈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나의 친절함이 무례함으로 돌아올 때가 그러하고, 배려심을 이용당할 때가 그러하다. 불공평하게만 느껴지는 많은 장면에서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 노력들이 배신당한 기분도 들곤 했다. 등가교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무수한 상처를 남긴다. 교환 과정에 인간관계의 배신과 마음에 대한 사기가 흉흉하기 때문이다.


아직 반백년도 살지 못했지만 인생 전체의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아무리 셈해봐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등가교환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한탄하다 문득 의심이 들었다. 인생과 세상의 공식 등가교환이 정말 맞을까? 교환이 공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교환 과정이 아니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온 세상은 거래나 교환보다는 정체불명의 작물로 농사를 짓는 것과 더 가까웠다. 어떤 땅이 좋은 밭일지, 물을 많이 줘야 될지 볕을 가려줘야 되는지, 열매는 언제 맺을지, 맺긴 맺을지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작물로 짓는 그런 이상한 농사. 그럼 어떡하냐고? 할 수 있는 걸 하고 해볼만 한 일을 시도하 거다.


땅에 돌을 골라내고 갈아엎어 보드랍게 만들어주어야지. 씨앗도 골고루 뿌려야지. 흙이 마르면 물을 줘야지. 싹이 트고 자라나면 잡초도 골라주고 벌레도 잡아야지. 햇살에 잎이 타들어가거든 그늘도 만들어줘야지. 열매를 맺거든 맛을 보고 맛이 잘 들었나 확인해야지. 아니다 싶으면 밭을 갈아엎고 다시 처음부터 가꾸기도 해야지.


농사 잘 짓던 분 말씀이, 농사 잘하는 농부는 밭 갈기를 게을리하는 법이 없고 한 해 농사 그르쳤다고 포기하는 법도 없다고 하셨다. 손에 흙 묻히고 상처 나는 거 무서워하면 잡초와 벌레 가득한 돌밭이 되어버리니 농부의 손은 거칠어야 좋은 손이란다. 나머지는 하늘이 해주는 거란다.


어쩌면 사람이 살아가는 게 결국 나 자신을 농사짓는 일인 것 같다. 내가 뿌리내릴 밭을 갈고 잡초를 뽑으며 생채기가 난다고 겁내 안된다. 열매가 좋지 않다고 너무 실망하지도 말고.  땅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날씨가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정말 잘 키워내서 풍년인데 남들도 풍년이라 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


내 손에 흙 묻고 상처 난만큼 양 맞추어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게 아니란 거다. 할 일이니 하는 거고, 결과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운에 달린 일이다. 다만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결과가 나쁠 것이 확정될 뿐.


선하게 살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정의로운 실천을 하는 건 스스로 그리 살아야겠으니 하는 거다. 그 결과로 내 세상이 정의롭고 좋은 세상이면 참 좋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  결실은 오랜 시간이 흐르고서야, 어쩌면 밭을 몇 번이나 갈아엎고 나서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냥 내 할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새 순의 연한 연둣빛에 취하고 촉촉한 흙내음에 젖어들며 보내자. 열매 얻을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필요 없다. 매일 새로 솟는 야들야들한 새순과 꽃망울과 이슬 맺혀 반짝이는 잎사귀에서 그날 그날의 기쁨과 행복은 충분히 찾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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