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괴롭히는 자잘한 몸의 문제 중에서도 나의 일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허리 문제이다. 공황장애를 겪었지만 허리가 아니었다면 원래의 일에 복귀했을 것이다. 비염 따위 달고 있어도 허리가 아니었다면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재채기해가면서 지내면 그만이었다. 과민성 대장의 문제가 있어도 허리가 아니었다면 화장실 가릴 필요 없이 어디든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디스크가 처음 삐져나온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갑작스러운 통증과 함께 꼼짝도 못 한 채로 자취방에 3일을 누워있었다. 돌아눕지도 못하고 화장실을 기어서 가면서도 119 부를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병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대비도 없을 때였다. 어찌어찌 병원까지 가고 정체모를 주사들(아마도 스테로이드 주사)을 맞으면서 한 달이 지나서야 절뚝이면서라도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처음 허리디스크를 겪으면 허리가 아픈 게 문제가 아니다. 하반신을 마음대로 쓸 수도 없고 재채기만 나와도 비명이 절로 나오고 화장실 변기에 앉는 게 비극이 되는 몸 전체가 문제가 된다. 이렇게 영영 장애인이 되는 걸까,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평생 변기에 앉지 못하게 되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가장 큰 문제다.
급성으로 찾아온 디스크라 누워서 가만히 쉬어주니 낫긴 했다. 허리디스크 환자는 통증이 있는 동안은 침상안정- 즉 가만히 누워서 쉬어주어야 하고, 통증이 없을 때는 통증이 오지 않을 만큼씩 운동을 해주어야 한다. 6개월쯤 되자 이전만큼은 못되지만 움직이는데 큰 지장을 못 느낄 정도는 되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통증이 없으니 다시 구부정하게 앉고 앉은 채로 몇 시간씩 공부하고 일하고 피곤하니까 운동은 거르는 생활이 반복됐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다시 한번 쓰러졌다.
후회라는 감정을 지우는 연습을 많이 해왔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 단 하나의 후회가 바로 이 때다. 두 번째 통증이 오기 전에, 조금 더 젊었을 때 나는 진지하게 운동을 했어야 했다.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찍은 사진에서 디스크는 예전만큼 심하게 나와있지는 않았다. 문제는 퇴행이 진행 중이었다는 건데, 이미 60~70대 허리 수준이라고 했다. 삐져나온 디스크 자체보다 허리 전체가 불안정한 게 문제라는 거다. 이런 경우에는 이런저런 시술은 별다른 효과도 없고, 수술을 하려면 척추 유합술이라고 부르는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한 군데만 해서 잡힐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일을 줄였다. 통증이 조금 잡히기 시작했고, 다시 일했다. 조심해야겠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집중하다 보면 다시 구부정하게 앉은 자세로 서너시간은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몇 년이 지나자 다시 통증이 왔고, 짧은 시간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직장을 옮겼고, 다시 구부정하게 일을 했고, 1년 만에 통증이 왔고, 일을 그만두고 쉬다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6개월 만에 통증이 왔고, 3개월 만에 통증이 왔고, 늦었지만 운동을 시작했다.
근육의 힘이 너무 약해져 있어서 조금만 무리해도 통증이 오히려 심해진다. 약한 정도의 운동을 계속하면서 천천히 근력을 키워야 하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조금만 더 욕심을 내면 통증이 다시 와서 드러누워야 하니 근력이 다시 약해진다. 남들이 보기에 이게 운동이 맞나 싶을 정도의 운동들을 매일 꾸준히 절대 과하지 않게 계속해주어야 한다.
이제는 일을 그만두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이제는 포기했다. 대한민국 어떤 일터에서도 업무 중에 수시로 누울 수 있는 곳은 없다. 사실 누울 장소를 배려해 준 곳이 있긴 했는데, 대한민국 어떤 일터에서도 일 맡긴 사람이 자기 일을 처리해주다 말고 쉬어야 된다고 서있다가 앉을 곳을 찾거나, 앉아있다가 갑자기 일어서거나, 자리 깔고 눕는 걸 곱게 봐주고 넘어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직업의식이 없거나, 고객 또는 내담자에게 불성실한 것이거나, 근성이 없고 게으르거나,일할 자격이 없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꼴을 보면 멀쩡한 사람이 일도 안하고 돈도 안버는 문제인간이 된다. 일 할 수 있는 멀쩡한 인간인데 막상 일할 자격이 없는 인간이다. 차별이라곤 별로 못 느끼고 살아왔던 나지만 신체적 약자에 대한 차별은 끔찍하게 느끼게 되었다.
얼마 전에 찾은 병원에서 10년 전 보다 조금 더 퇴행하긴 했지만 크게 나빠지지는 않은 척추 사진을 확인하고 왔다. 역시나 응급상황(마미총증후군이나 하지 마비 등)이 오지 않는 한 수술은 권하지 않는다. 수술하기에는 아직도 너무 젊다고 하니, 젊은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또 한 번 우울감이 몰려왔다. 남보기엔 멀쩡한, 실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인간으로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다.
글 한 편만 쓰고 나면 통증이 오니까 글 쓰는 도중에도 허리 펴는 운동을 해준다. 그래도 써야 한다. 나에게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겨우 찾아낸 할 수 있는 일, 해도 지장 없는 일. 짧은 글을 쓰고, 간단한 그림을 그린다. 내가 가진 몸뚱이의 무쓸모성에서 오는 지독한 우울감을 이렇게 이겨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