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일 자주 만나는 가족 외의 타인은 집 앞 편의점 점원이다. 편의점에서 잠시 일해본 경력자의 입장에서 보건대, 이 사람이 일을 참 잘한다. 포스기 다루는 것도 능숙한 데다 선반도 틈틈이 정리되어 있고, 우왕좌왕대는 손님을 맞아도 눈치껏 차분하게 잘 처리한다. 관록이 느껴지는 점원이다.
그럼에도 일이란 게 쉽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인지, 간혹 실수했다고 시비를 걸거나 트집 잡는 손님도 보인다. 호통을 쳐서 세상의 엄격함을 몸소 보여주고 싶은 손님도 있고 받을 서비스를 제대로 못 받은 것이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분풀이를 쏟아내고야 말겠다는 손님도 있다. 한바탕 지나가고 나면 점원은 편의점 밖에서 담배를 한 대 피고 한숨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들어가곤 한다.
빨리 계산해주지 않으면 느려터졌다고 욕부터 내뱉던 사람, 손님한테 왜 인사를 제대로 안하냐며 삿대질하던 사람, 내가 만났던 과거 손님들의 기억이 스쳐갔다. 그런가하면 복잡한 결제수단 때문에 당황하던 나에게 자기가 안다며 친절하게 알려주던 사람도 있었고, 너무 힘들어 도저히 표정이 풀어지지 않던 날 두유 하나를 선물해주면서 격려해준 사람도 있었다.
한 번도 실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실수를 겪으며 마음에 남기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래서 다시 실수를 만날 때, 타인의 실수를 대할 때 보이는 모습도 사람마다 다르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 결과의 가혹함에 매여버리면 완벽함에 집착하고 혹독해진다. 실수한 후에 호되게 겪은 자신의 공포감이나 불이익 혹은 억울함이 크게 각인되곤 한다. 그만큼 다시 실수할까 봐 겁먹고 완벽해지려 무리하거나 스스로 위축되거나 괴로운 것이 제일 문제이긴 한데, 다른 실수들에 대해서도 같은 응징이 있어야 한다는 감정이 들기도 하는 게 또 문제가 된다. '내가 실수했을 때 겪은 만큼 너도 당해봐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공정함이라고까지 생각하기도 한다. 세상의 엄격함을 가르쳐주는 인생 선배이자 몸소 처벌하는 재판장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헌데 사람이라는 게, 자신이 당했던 괴로움과 억울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게 느껴지면서도 타인이 당하고 있는 괴로움과 억울함은 공감이 작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 가해지는 응징은 자신이 과거에 받은 그것보다 더 커지기 쉽다. 군기잡기 문화가 있는 집단에서 내리갈굼이 대를 거듭하면서 점점 더 잔혹해지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사회의 엄격함과 무서움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그 괴물이 되어 '직접 가해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하지만 실수를 반성하면서 깊은 성찰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았을지 생각하고 완벽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어야 그다음이 보인다. 실수가 해결되는 방식, 그 과정에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인의 배려가 보이면, 스스로도 겁먹지 않고 용기 낼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나에게 실수했을 때도 다르게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실수가 나에 대한 무례함이나 불공정 때문이 아닌 '저 사람도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화가 나지 않는다. 응징해야겠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유쾌하지야 않겠지만 내 불편함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수한 사람의 곤란함도 보이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찾게 된다. 보통은 이렇게되면 수습과 해결은 훨씬 빠르고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유리하다.
실수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른 사람의 실수로 조금 불편하거나 약간 손해 보는 일 없는 세상은 또 어디 있을까. 무인도에나 있을까.
실수 하나를 더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고 생각하면 스스로의 실수에도 조금 더 관대할 수 있을까? 나는 실수투성이니 적어도 이해심과 관대함은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도 있겠다.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일 찾기가 참 힘들지만, 나 자신이 어떤 어른이 될지 정도는 마음대로 정하려고 늘 애쓰고 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어른보다는 따스한 관대함을 지닌 어른이 되고 싶다.
정말로 일에 불성실하고 대충대충이라 잘못한 것이더라도, 못된 인간이라 나에게 무례하게 군 것이라도, 그것이 내 감정을 오염시키게 둘 필요는 없지 않을까. 도저히 가만히 두면 안될 사람이라면 괜한 감정 소모를 하기보다는 조금 더 공식적인 절차로 접근하는 편이 낫다. 진짜 사회와 법의 무서움 말이다.